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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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어트랙션을 도입 설치했고 뮤지컬 극장도 지었다. 항상 막바지가 돼서야 일분일초가 소중했고 밤새워 일하곤 했다. 마무리하여 오픈하고 든 생각은 하루의 여유가 더 있었더라면 완벽했을 텐데...

'기자들 사이에서는 '마감이 원고를 쓴다'는 유의 농담도 있는데 ( p. 84)'

시험 일자가 코앞에 닥쳐야 마음을 잡고 책상에 앉는다. 책상에 먼지가 있네? 청소하고. 샤프가 잘 작동되지 않네? 분해해 조립하고. 살짝 배고픈 것 같네? 일단 뭐 좀 먹고. 갑자기 평상시 눈도 안 가던 소설이 당기네? 물도 갖다 놓아야 하고. 어떤 과목부터 해야 할지 순서도 정해야 하고. 시간도 과목별로 쪼개야 하고. 시험공부를 완벽한 환경에서 시작해야겠기에... 할 일이 마구마구...

'그때 나는 느꼈다. (...) 정말 지금 완벽하게 글을 쓰기 위한 상태가 된 것이 맞는 건지 집요하게 묻고 있다는걸. (...) 그동안 나는 쓰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게 아니라 오로지 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기만 했었다는걸. (p. 70)'


작가, 감독, 배우 9인의 각자 자리에서 '글 쓰는 마음'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이다. 쓰는 일을 하는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쓸까? 사적인 이야기다. 솔직하게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 고독, 치열함, 행복, 고통, 모순, 낭만, 단호한 결심, 불안, 마음가짐, 대화 등등 온갖 게 교차한다. 글 쓰기에 이토록 많은 감정이 담겼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전고은은 글과 나 사이에 차가운 강을 맨몸으로 건너 글쓰기에 이른다. 인생이 그렇듯 이석원 작가의 글쓰기는 오락가락이다. 어느 날은 한 글자도 못 쓰고 어느 날은 책 한 권 분량을 너끈히 써내고. 기자 이다혜는 뭐든 써야겠기에 글을 쓴다. 만만하지 않지만 그래도 글을 쓴다.

아티스트 이랑은 글쓰기 과정에서 희로애락 모두를 느낀다. 배우 박정민은 쓰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서른두 가지나 나열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쓴다. 영화도 만들고 글도 쓰는 김종관은 쓰고 싶은 순간을 만들기 위해 허구 속으로 달려간다.

백세희 작가는 무리하게 에너지를 소진하는 과정에서 그 불안함을 에너지로 글을 마무리 해낸다. 소설가 한은형의 글쓰기는 마음가짐이다. 무엇에도 흔들림 없고, 지지 않는 부드러운 마음. 영화감독 임태형의 글쓰기는 타인과의 대화다. 나를 내비치고 표현하는 대화.


쓰는 행위는 일기처럼 자신에게 솔직함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힘겹지만 글쓰기에서 행복도 느끼고. 하지만 글쓰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부담감이다. 답답해 도망치고 싶은 마음. 매번 도망치고 싶어 하며 다시 글과 마주하게 되는 모순. 이게 글쓰기만의 매력이다.

쓰고 싶은 마음과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을 오가며 글을 완성하는 진솔한 고민은 꼴랑 네댓 자 쓰는 나의 갈등만은 아니었다. 글 쓰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들과 나의 차이가 있다면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근육이 있고 없고...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천재적인 영감보다는 성실함과 꾸준함이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의외로 당연하지 않다. 작가에게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없는 근육을 만들어 유지하는 일과 같다. (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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