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가 놓인 방 소설, 향
이승우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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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한 편의 연애 소설을 쓰려고 한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한 편의 연애소설이 되기를 바란다. 혹은 그렇게 읽히기를. (p. 11)'

소설 내내 이승우는 '당신은...'이라고 계속 지칭한다. 나? 나를 말하나? '당신'을 '나'로 치환하며 읽게 된다. 뜨끔하다. 사람의 심리를, 사랑의 심리를 이리도 잘 뜯어보며 객관적으로 글을 써나간다는 게... 놀랄 뿐이다.

정확하고 냉혹한 시선, 작품 해설에서 박혜진이 말하듯 '사랑이 한 모든 일들에 대한 이승우의 오랜 탐색, 그 서문에 해당하는 작품 (p. 128)' 이승우의 <욕조가 놓인 방>이다.


'이 소설은 사랑이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되어 사랑이 시작된 자리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사랑이 끝난 자리로 돌아온다. (정여울의 작품 해설, p. 158)'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자기 합리화가 없이는 여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서 자신을 설득시키고 난 후에야 행동한다. (p. 17)'

소설 속 당신이라는 인물을 자기 합리화를 매우 중요시한다. 액자와 면도기를 가져가라는 여자의 말을 명분 삼아 보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기만하며 고대 마야 문명 유적지에서 만난 여자의 집을 향하면서 소설을 시작된다. 당신은 자기 기만에 속아 넘어가 줄 만큼 교활함도 갖췄다.

당신은 명분을 찾을 동안 머뭇거린다. 그 행위를 이성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용기 없음이며, 사랑에 그리 열정적이지 않음이기도 하다.


'당신과 당신의 아내는 언젠가부터 상대가 예상하고 있는 반응만을 보임으로써 서로를 당황시키지 않는다. (p. 50)'

소설 속 당신은 아내가 만나는 남자가 있는 줄 알면서도 드러내지 않는다. 가정이라는 집을 헐어버릴 용기가 없다. 헐어버리고 다시 어떤 집을 지을지 또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 위를 걷고 싶은 남자와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여자는 수면에서만 만날 수 있다. 의식의 바닥과 무의식의 천장이 만나는 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의식은 솟아오르려 하고 무의식은 가라앉으려 하므로 두 사람의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p. 135)'

소설 속 당신이 유적지에서 만난 그 여자는 가족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한다. 완벽한 죽음인 수장을 꿈꾸며 매일 밤, 방안에 놓인 욕조의 물에 몸을 담그고 죄책감을 속죄하며 죽음을 연습하는 여자다.

당신은 무의식보다는 의식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이라서, 생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라서 죽음에 가까이 가려 하는 여자와는 끝내 사랑을 도모하기 어려운 남자다. 그녀의 상처와 섞여 그 상처를 나눠가져야 하는데 당신은 여전히 명분을 찾으며 욕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소설에서 두 장면이 반복된다. 유적지의 밤에 둘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p.40, p.95). 그리고 당신이 그녀를 다시 찾았을 때 그녀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p.83, p.103). 작가가 반복한 의도가 있을진대... 짐작하기 어렵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나 나름 실마리라 여긴 글인데...

'사랑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해서 가는가. 그러나 그 희망은 헛되거나 잘못된 것이다. 당신은, 사랑이 있기나 했던가? 하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 (p. 120)'

'사랑이 있기나 했던가?'

당신은 유적지에서 밤에 나눈 사랑을 사랑이라 여기고 회상을 반복하는 건가. 당신이 회상하는 장면을 그녀는 기억을 못 하는데, 그녀도 사랑이라 여겼다면 그날 밤을 잊을 리가 없다. 사랑이라고 그녀도 생각하데 그녀가 당신을 속이는 건가. 당신이 사랑이라고 여기는지 확신이 없어서?

당신은 그녀를 다시 찾았을 때 그녀가 기억을 못 해 당황한 나머지 그 생각을 반복하는 건가. 그녀가 기억 못 해 사랑이었는지 아닌지 확신이 없어졌나? 그래서 자기합리화를 위해 명분을 찾고 있나? 명분을 찾았을 때...

'말하자면 사랑이든, 소설이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p. 120)'

다시 시작할 때 그 이야기는 사랑 이야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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