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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 -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
이저벨 윌커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평점 :
인간 중 키가 작은 부족과 키가 큰 부족인 만났다. 첨단 무기를 가진 키가 작은 부족이 우세해 키 큰 부족을 포획하여 250년 동안 노예로 삼았다. 그들은 키 큰 부족을 교양이 없고 낙후했으며 열등해서 정복자를 섬길 운명을 갖고 태어난 인간으로 취급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은가? 이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류를 분류하고 인종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키를 택한 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p. 92)'
피부색으로 인종을 결정하는 것 역시 키만큼이나 말이 안 되지만, 가장 민주주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250년 동안 아니 지금까지 어느 정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열등하고 백인을 섬길 운명을 갖고 태어난 인종으로 결정하고 노예로 삼았다.
저자 이저벨 윌커슨은 미국 언론 역사상 퓰리처상을 받은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으로 <카스트>를 통해 미국의 유구한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적나라하나 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실제로 지배 카스트가 피지배 카스트에게 자행된 역사적 사실들은 끔찍하다. 20세기에 들어선 뒤에도 40년 동안 흑인을 상대로 린치가 행해졌다는 사실은 충격에 충격을 더했다.
인종에 기반한 미국의 카스트, 이 카스트 체제 속의 지배 카스트는 종교와 자연법칙까지 끌어들여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화하며 대대로 전승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대통령까지도 흑인이란 이유로 분수에 맞지 않고 백인들의 지위를 손상시켰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죽음으로 항변했다.
'경찰에 따르면 키웨스트에서 태닝 살롱을 운영하던 헨리 해밀턴 Henry Hamilton은 선거가 가까워 지자 친구들에게 "버락이 재선되면, 나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 약속을 실천했다. (p. 398)'
결국 2016년 백인주의를 호소한 정치적으로 검증도 되지 않을 사람을 대통령으로 내세우며 지배 카스트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본색을 계속 드러냈다.
'인류의 역사에서 카스트 체제는 크게 3개가 있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어 비극으로 치닫다 진압된 나치 독일의 카스트 체제. 좀처럼 사라질 기색 없이 수백 년을 이어온 인도의 카스트 체제. 마지막으로 드러나거나 언급되지는 않지만 형체를 바꿔가며 존속해 온, 인종에 기반을 둔 미국의 카스트 피라미드 (p. 36)'
미국의 카스트는 나치와 마찬가지로 흑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으며, 인종을 구분할 때는 나치보다도 더한 잣대를 피지배 카스트에게 들이댔다. 유대인을 판별하려 기준보다 더한 기준(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을 흑인들에게 적용했다.
독일은 나치에 가담한 자들을 지금도 처벌하지만, 노예로 삼을 권리를 위해 전쟁을 벌인 미국의 남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재판도 받지 않았다. 독일에서 스와스티카를 드러내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지만,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다시 터지면 남부 연합 편에서 싸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더 많다. 독일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합당한 배상금을 지불했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배상받은 쪽은 생명과 임금을 탈취당한 사람들이 아니라 노예를 소유한 자들이었다.
노예제 기간 중에 수백만 명을 포획하여 볼모로 삼아 서서히 죽인 미국 지배 카스트들을 처리하는 미국의 방식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편에 섰던 자들을 처리하는 우리나라의 방식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또한 백인들이 미국의 기득권을 누리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기득권의 상당수가 일본 앞잡이였던 자들이라는 것에서도...
'이 책은 수천 년 묵은 문제를 모두 해결해 보려는 의도로 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그것의 발단과 그 역사와 결과와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든 그것의 존재에 불을 비추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다. (p. 460)'
저자는 카스트가 없는, 모두를 자유롭게 할 세상을, 희망을 위해 미몽에서 깨어나 지배하지도 지배당하지도 않는 선택을 하라고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받는 것을 볼 때 나서서 행동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음을 알려준다. 인류 공동체에 도움이 되질 않는 힘자랑 대신 모두가 모든 인류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