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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평점 :
'소양리 북스 키친은 책을 팔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 북 카페와 책을 읽을 수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북 스테이를 결합한 복합 공간으로 총 4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p. 9)'
직장 생활에 부대낄 때마다 그리던 이미지가 있다. 한 달 동안 한적한 곳에서 차 한잔 마시며 비스듬히 의자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다가 간혹 산책하는 나. 실제로 해보지 않아서 진짜로 힐링이 될지 아니면 사는 걱정에 반나절만에 접고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인공 유진은 원했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 맞는 이름을 고민하던 중, 책마다 감도는 문장의 맛이 있고 그 맛 또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생각났다. 각각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듯 책을 추천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이 되듯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p. 12, 13)'을...
아~ 생각만 해도 꿈같고 힐링이 된다. 소설 속이 아니고 내가 사는 현실에 이런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지혜의 힐링 소설이다.
각자 처한 속 사정이 있고, 저마다의 말 못 할 사연을 품은 채 젊은이들이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아온다. 유진을 비롯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슬쩍 건네주는 책을 읽고, 소양리의 사계절에서 위로를 받는다. 각자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맛보듯 마음을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삶의 여정 가운데에서 잠시 정차하여 쉼을 갖는 건, 그것도 이삼십 대라면 행운이다. 평평하게 드러누운 바위에 앉아다가 엉덩이의 흙을 툭툭 털어내며 겉옷을 챙겨 입고 심호흡을 깊게 하고는 다시 산을 오르듯... 행복한 일이다.
<책들의 부엌>에 담긴 김지혜 작가의 자연을 묘사하는 서정적인 글에서도 힐링을 얻는다.
'산등성이는 까만 그림자가 되어 있었고 산등성이 앞으로는 구름이 수묵화를 그리듯 소복하게 깔려 있었다. (...) 잊힌 기억들이 고요한 한줄기 바람이 되어 이따금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p. 46)'
'오늘은 3월이 반으로 접힌 15일 저녁 어스름에 부드러운 봄바람이 매화의 은은한 향기를 담고 몽글거리듯 북스 키친으로 들어왔다. (p. 57)'
'호수 수평선 너머의 산맥 사이로, 해가 슬며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호숫가의 잔물결에 햇빛이 반짝이며 녹아내렸고,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햇살이 춤을 추듯 일렁였다. (p. 81)'
'빗소리와 바람 소리에도 색깔과 모양이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p. 108)'
'올해 첫눈이었다. 눈송이는 바람이 슬쩍 불기만 해도 하늘 위로 다시 올라가며 춤추듯 날아다니다가 내려앉았다. 살짝만 밟아도 검은색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의 얇은 두께로 쌓이는 중이었다. (...)
첫눈이 내린 세상은 보드라운 외투를 얇게 껴입은 듯 추위가 누그러져 있었다. (p. 215)'
소양리 북스 키친을 다녀갔던 이들은 각자의 치유된 삶을 서로 확인이라도 하듯 계절의 끝자락인 눈 내리는 겨울에 다시 모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밥을 먹고 같이 음악을 듣고 책 이야기를 하고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도 그 옆에 둘러앉아 같이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었다.(p. 292)'
소설 속에서 추천하는 책과 음악이 있다. 그 음악을 들으며 그 책들의 글들을 음미하며 친구들과 와인 한잔하며 밤새 수다 떨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하는 하는 책이었다. 그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힐링 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