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 그리고 그 속에 거주하는 ‘친구들’의 삶과 감정들로 창조되는 수많은 세계에 우리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인지적 인내심을 서서히 잃어간다면 결국 많은 것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영화와 영상으로도 그런 몰입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글로 명료하게 표현된 타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갔을 때만큼의 몰입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젊은 독자들이 다른 누군가의 생각과 느낌을 접하거나 이해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평소에 자신이 알고 지내는 무리나 가족 외의 사람들과는 공감의 느낌이 단절되기 시작한 나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럴 경우에는 십중팔구 자신도 모르게 무지와 공포, 오해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호전적인 형태의 불관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면 다양한 문화의 시민들을 위한 나라라는 미국의 본래 이상은 변질될 것입니다.

가장 깊은 형식의 읽기 능력을 개발한다고 해서 그런 비극을 모두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위험한 공해空海를 건너는 무고한 무슬림 어린이가 됐든, 보스턴 마이모니데스 스쿨 출신의 무고한 유대인 소년이 됐든, 나와 다른 이들을 상대하는 대안적인 공감의 방식을 모색해야만 할 다양한 이유들을 깨닫게 됩니다.

MIT의 셰리 터클 교수28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새라 콘래스Sara Konrath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은 40퍼센트 감소했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10년 사이에 말입니다. 터클 교수는 젊은이들이 온라인 세상을 항해하느라 현실 속의 대면 관계를 희생시킨 것이 공감 능력을 급감29시켰다고 해석합니다. 기술이 사람들 간에 거리를 만든다는 거지요. 그 결과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인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생각까지 바뀌고 있습니다.

공감은 타인을 동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훨씬 더 중요하게는 타인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관계합니다. 문화가 점점 세분화되고 연결성은 증가하는 세계에서는 필수적인 기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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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답례품이 영국에서 수입한 좋은 홍차(트와이닝 오브 런던TWININGS of London)여서 요즘 매일 마시고 있다. 그 홍차 중에서도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라는 짙은 회색과 노란빛 도는 갈색 봉투에 든 차가 가장 좋아서 매일 아침 무당연유를 넣어 마신다. 덕분에 요즘 나는 프린세스의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살구나 사과가 끈적끈적하게 광택을 띠고 있고 바깥쪽은 노릇노릇하게 익었으며 안쪽은 말캉말캉한, 밀가루를 구운 껍질 사이로 소가 비어져 나올 듯한 그 맛있게 구운 과자는 역시 파이가 아니라 타르틀레트다. 영화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에서 빵집 주인 라그노가 "달걀 서너 개를 집어 들고 노릇노릇 구우면 금방 옅은 갈색이 되지, 살구를 넣은 타르틀레트……"라고 근처에 있던 종이에 즉흥시를 휘갈겨 쓰고는 그 종이로 포장해서 건넨 타르틀레트야말로 내가 가장 탐내는 살구타르틀레트다.

프랑스 빵집 주인이 만든 살구가 든 타르틀레트 다브리코tartelette d’abricot를 입에 넣고 싶다. 사과가 든 타르틀레트 드 폼tartelette de pomme도 좋다.

아사쿠사의 아파트로 이사 가서 처음으로 산 잔은 수수한 엷은 갈색 바탕에 잎은 검은 빨간 동백꽃 무늬가 그려진, 모양도 좀 다도에서 쓰는 찻잔 같은 것이었다. 그다음은 짙은 남색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그려진 잔인데 이쪽은 왠지 하이칼라 느낌이었다.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딱히 내 전용 찻잔에 공을 들이는 일도 없었지만, 아파트에서 혼자만의 방을 가지게 된 무렵부터는 방 전체에 자기주장 같은 것이 생겨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만 두게 되었다.

내 몸을 둘러싼 물건 전체에 고루 퍼져 있는 자기주장은 조금 무서울 지경으로 거세졌다. 무엇보다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나 자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 나 혼자만의 방에서 얼마든지 자신을 구석구석 드러내도 불만을 말할 사람은 없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맘껏 늘어놓고 기뻐할 따름이다. 요즘은 ‘보티첼리의 장미 찻잔’이라 부르는 예쁜 홍차 찻잔이 두 개 있어서 일본의 푸르스름한 차도 그 잔에 담아 마신다.

보티첼리의 장미 찻잔은 연홍색 꽃잎에 푸른빛이 감도는 연두색 잎사귀가 달린 장미가 흩뿌려진 홍차 찻잔인데, 그 꽃이 옛날 이탈리아 미술관에서 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하늘과 바다 위로 흩날리는 장미를 빼닮은 데다 잎사귀 색 역시 그 그림의 하늘이나 바다색처럼 푸르스름해서 그렇게 이름 붙인 찻잔이다. 침대 곁에 그 찻잔과 두꺼운 유리로 된 밀크 용기, 네슬레의 무당연유 캔, 은(진짜 은이다)으로 된 숟가락이 놓여 있는데, 소설을 쓰는 것이나 써지지 않는다는 괴로움에 지치면 물을 끓여서 립턴 티백으로 홍차를 만든다. 프리먼 크로프츠 같은 영국인의 추리소설을 읽다가 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또 마시고 싶어져서 물을 끓인다.

차를 마시는 내 눈에 침대 헤드보드 위 빈 베르무트 병에 꽂아둔 빨간 장미, 파르스름한 코카콜라병, 짙은 파랑색 병에 꽂아둔 진홍색 장미와 하얀 꽃, 연홍색 꽃 등이 비쳐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배로 늘려준다. 영화 제목을 빌리면, 〈술과 장미의 나날Days of Wine and Roses〉이 아니라 ‘홍차와 장미의 나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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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파파는 삼대절(정월 초하룻날, 건국 기념일, 국왕의 생일을 가리킨다) 행사에 궁으로 초대되어, 디저트로 나오는 은색 종이에 포장된 마롱글라세(밤을 설탕으로 조려서 만드는 과자)나, 연두색으로 물들인 설탕 꽃받침이 달려 있고 빨갛고 자잘한 싸라기설탕으로 감싼 딸기 모양의 과자 같은 것을 몰래 군복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돌아왔다.

국화꽃 모양 은상자에 든 봉봉(겉은 설탕으로 굳히고 속에 과즙이나 위스키 등을 넣은 과자)을 선물로 따로 하사받았기 때문에, 디저트로 나온 과자까지 몰래 호주머니에 숨겨오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파파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하사받은 선물 말고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과자를 가져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설날에는 정사각형의 네 모서리를 잘라낸 팔각형 나무상자에 든 과자 세 개를 받아왔다. 표면이 갈분 앙금으로 감싸여 있고 그 아래로 하얀 학이 세 마리 비쳐 보이는 커다란 양갱, 국화꽃 모양의 진빨강 네리키리찹쌀과 팥앙금으로 모양을 내어 만드는 화과자, 하얗고 커다란 만주 등 세 가지였다.

또 파파는 삼대절(정월 초하룻날, 건국 기념일, 국왕의 생일을 가리킨다) 행사에 궁으로 초대되어, 디저트로 나오는 은색 종이에 포장된 마롱글라세(밤을 설탕으로 조려서 만드는 과자)나, 연두색으로 물들인 설탕 꽃받침이 달려 있고 빨갛고 자잘한 싸라기설탕으로 감싼 딸기 모양의 과자 같은 것을 몰래 군복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돌아왔다.

국화꽃 모양 은상자에 든 봉봉(겉은 설탕으로 굳히고 속에 과즙이나 위스키 등을 넣은 과자)을 선물로 따로 하사받았기 때문에, 디저트로 나온 과자까지 몰래 호주머니에 숨겨오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파파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하사받은 선물 말고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과자를 가져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설날에는 정사각형의 네 모서리를 잘라낸 팔각형 나무상자에 든 과자 세 개를 받아왔다. 표면이 갈분 앙금으로 감싸여 있고 그 아래로 하얀 학이 세 마리 비쳐 보이는 커다란 양갱, 국화꽃 모양의 진빨강 네리키리찹쌀과 팥앙금으로 모양을 내어 만드는 화과자, 하얗고 커다란 만주 등 세 가지였다.

가장 고급스러운 가게인 투르 다르장에도 여성용 투피스인 타이외르tailleur 차림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는 파리에서 데콜테decollete(가슴과 어깨, 등이 조금씩 드러나는 소매 없는 옷의 양식)를 만들지 않았다. 2층 정면에서 연극을 보면 여행자이기 때문에 타이외르로도 괜찮았고, 아무래도 옆에서 보고 싶을 때는 조금 느슨한 보트네크라인 옷깃에 소매 없는 스와레soiree, 이브닝드레스를 입었다. 그 스와레는 짙은 장미색이었고, 반쯤 연갈색으로 물들인 장미에 가느다란 연두색 줄기와 잎이 붙어 있는 한랭사(아주 얇은 무명) 생튀르ceinture(허리띠)가 달려 있었으며, 옷자락이 살짝 터키풍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거기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진 소고기회를 양파와 함께 빵에 끼운 샌드위치를 먹었다.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이다.

어린 시절 먹었던 동글동글하고 싱싱하고 빨갛고 조그맣고, 꼭지도 연두색이었던 작은 딸기는 대체 어느 시골에서 났던 걸까? 아오키도의 수입 건과자 가운데 소금 맛이 나는 캐러멜을 붉게 물들인 싸라기설탕 껍질로 감싸고 연두색 설탕 꼭지를 붙인 것이 있었는데, 그 과자 역시 동그랬던 것을 보면 그 무렵은 서양 딸기도 동글동글했음이 틀림없다. 뱀딸기를 크게 만든 모양이다. 요즘 딸기 중 좋아하는 것은 순박한 생김새에 옛날 딸기의 단맛과 신맛을 지닌 이시가키 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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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가 생각하는, 시 비슷한 것들을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느끼는 게 그저 즐겁다. 그 즐거움이 마음속에서 넘쳐흘러 생활을 어쩐지 재미있게 만들어주니까. 이를테면 은색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물속의 흰 달걀을 보고 있으면, 나는 문득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물코처럼 엇갈린 벚나무 길의 나뭇가지 끝이 옅은 보랏빛으로 스며드는 해질녘 거리를 걸을 때도.

내가 하루 중 대부분을 보내는 방 안에는 유리로 된 물건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아니제트, 빈 포도주병. 파르스름한 윈콜라병도 있다. 윈콜라병의 색깔은 콜롬보나 페낭 근처의 바다색과 매우 닮았다. 또 보티첼리 그림의 바다색과도 닮았다. 그 병을 보고 있으면 푸르고 투명한 바다나 선원들이 힘차게 노를 젓는 범선, 이탈리아 화랑에서 본 보티첼리의 바다가 떠오른다. 유리라는 물건이 지닌 투명함. 또 반투명한 초록, 버건디, 아지랑이 색 등이 내 마음에 든다. 유리가 지닌 연약함. 서늘함. 그리고 적당한 무게. 얇은 컵이 맞닿는 소리도 좋다.

병 속에서 울리는 라무네 사이다 구슬. 초록, 하늘색, 버건디, 우윳빛 등의 공깃돌. 유리구슬을 이은 얼음 가게의 포렴. 두꺼운 받침이 달린 컵.

커피포트 주둥이에서 빛나며 샘솟는, 컵 가득 담긴 아침 호텔의 커피. 럼주에 물을 살짝 탄 그로그의 갈색, 홍차의 진빨강 반짝임. 옅은 갈색으로 굽힌 머핀 등에 매혹당하면서도 그 영화들 속 레슬리 캐론의 춤, 사랑스러움, 프레드 아스테어의 소탈한 춤. 또는 히치콕 감독의 걸작 영화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을 품고 있는 가벼운 재미를 나는 즐긴다.

자두나 딸기, 복숭아 잼을 만들거나 빵과 달걀과 우유에 바닐라를 넣은 따끈한 과자, 얼음사탕을 뜨거울 때 녹인 차가운 홍차 등은 자주 즐긴다. 매년 7월에는 솔덤 자두의 껍질을 벗기고 씨를 뺀 뒤 체에 걸러서 적포도주에 섞은 음료를 만든다. 위스키만 마시는 술고래 아들도 감탄하며 칭찬할 정도로 어른스러운 리큐어다.

소설을 읽다가도 근사한 요리가 나오면 기억에 남는다. 셜록 홈즈의 차가운 도요새 요리. 리큐어를 넣은 커피. 파일로 밴스S. S. 밴 다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귀족적 취향의 탐정의 농어와 달걀로 만든 따뜻한 요리.

버터를 넉넉히 넣고 생표고버섯을 볶아서 파슬리를 뿌린 보르도풍 버섯 요리. 프렌치소스를 뿌린 양상추에 얇게 썬 토마토와 양파를 장식한 로마풍 샐러드도 자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 씻을 더운물" 하고 어머니나 마리 본인이 말씀하시면 하녀가 가져다준다. 하녀가 뒤에 서서 머리를 빗기고 고무줄로 묶어서 리본을 달아주는 사이에 다시 한 번 시험 복습을 하거나 프랑스어 레슨을 복습한다.

파리에서는 일요일이 되면 코미디 프랑세즈로 여배우가 여러 명 와서 시를 낭독했다. 중학생들에게 올바르고 아름다운 프랑스어 발음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젊고 예쁜 여배우가 교대로 등장하며 아름답고 순수한 파리지앵의 발음으로 시를 낭독한다. 위층 관람석이나 무대 바로 아래쪽 자리는 어머니가 데려온 하얀 옷깃의 중학생으로 가득 차있다.

나는 야마다가로 들어오자마자 오요시 님을 숭배하게 되어서, 오요시 님이 보라색 바탕에 조릿대 잎사귀 무늬가 홀치기염색된 긴 주반을 짓고 있으면 그것과 같은 옷감으로 내 주야오비겉과 안을 다른 천으로 만든 전통 여자 허리띠도 지어달라고 하곤 했다.

오요시 님이 여름에 가느다란 세로줄 무늬 유카타에 나들이용으로 맞춘 듯한 물살과 갈대 무늬, 또는 물에서 자잘한 물고기가 헤엄치는 무늬 등의 사紗로 만든 기모노 허리띠를 낮게 매고 복도를 걸어가는 뒷모습도 좋았지만, 겨울에 요네자와 명주로 만든 기모노에 그와 비슷한 하오리를 걸친 모습도 좋았다. 어깨가 부드럽게 처져 있어서 자태가 좋았던지라 하오리에 얇게 풀솜을 넣어도, 하오리 아래에 풀솜옷을 받쳐 입어도 멋졌다. 자태가 좋다는 건 이득이어서 그 위로 시아버지와 함께 맞춘 소맷부리가 네모난 외투를 입어도 전혀 둔해 보이지 않았다.

또 세련되었지만 기품 있는 생김새여서 틀어 올린 머리를 장식하는 끈에 산호가 아니라 작은 진주를 쓰는 것도 어울렸다. 오요시 님이 평소에도 진주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던 이유는 나카무라 아저씨라는 시아버지의 먼 친척이 어떤 연줄을 통해 손에 넣었는지 알이 작긴 했지만 진짜 진주와 호리병 모양으로 생긴 진주(품질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를 쟁반에 넘치게 담아서 모두에게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한 적이 있어서다. 그래서 오요시 님은 머리장식도 두 개 만들고 호리병 모양 진주를 나란히 세 개 놓고 은으로 잎사귀 모양을 만들어 붙인 기모노 허리띠 장식 등도 만들었던 것이다.

오요시 님의 요리 가운데 내가 보고 흉내 냈던 것은 유자 무절임과 니나마스채소, 어패류, 유부 등의 재료를 가열해 식초 등으로 조미한 요리, 그리고 굴초절임이었다. 유자무절임은 단맛이 적은 삼배초식초에 간장과 설탕 또는 미림을 섞은 혼합초를 그릇에 가득 채우고, 거기에 아주 얇게 썬 무와 둥글게 썬 유자를 담가서 잠시 재워둔다. 굴초절임은 굴을 식초에 절인 음식으로 누구든 만들 수 있지만, 오요시 님은 거기다 잘게 깍둑썰기한 생강을 뿌리는데 그런 사소한 정성으로 모양도 맛도 세련되어졌다. 무 간 것을 버무린 해삼초절임도 맛있었다. 니나마스는 어슷썰기 한 무를 삶아서 부드러워지면 세 포로 뜬 정어리를 넣고 맑은 장국처럼 간을 한 뒤 식초를 조금 넣는다.

오요시 님이 만든 것 가운데 또 하나 근사한 요리가 있다. 봄이 되면 만들었던 죽순초밥이다. 먼저 도미를 얇게 회 뜨고 그 껍질을 따로 뒀다가 식초 속에서 비벼 씻듯 잘 문지른다. 그 살짝 탁해진 식초로 초밥용 밥을 짓고 네모난 초밥틀에 초밥용 밥을 담은 뒤 도미를 넣고, 다시 밥을 넣은 다음 그 위에 달지 않게 담백하게 조린 죽순과 나무순을 올려서 꼭꼭 누른다. 삼각형 죽순과 푸릇푸릇한 나무순이 산뜻해서 매우 담백한 초밥이다. 시아버지의 고향인 히로시마의 음식일지도 모른다.

오요시 님의 유일한 ‘연애담’은 그가 어린 게이샤였던 무렵 하코네의 산 위에서 피서를 즐기던 이치카와 사단지(단?, 기쿠菊, 사左라고 불렸던 초대 사단지가부키에서 메이지 시대 도쿄 극단의 3대 명배우인 9대 이치카와 단주로, 5대 오노에 기쿠고로, 초대 이치카와 사단지를 아울러 일컫는 말)를 만나러 가마를 타고 산을 올랐다는 이야기다. 오요시 님은 신바시의 ‘요시미마스’라는 기생집 게이샤였고, 기적에 올라 있을 때의 이름은 고모모라고 했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시 비슷한 것들을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느끼는 게 그저 즐겁다. 그 즐거움이 마음속에서 넘쳐흘러 생활을 어쩐지 재미있게 만들어주니까. 이를테면 은색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물속의 흰 달걀을 보고 있으면, 나는 문득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물코처럼 엇갈린 벚나무 길의 나뭇가지 끝이 옅은 보랏빛으로 스며드는 해질녘 거리를 걸을 때도.

내가 하루 중 대부분을 보내는 방 안에는 유리로 된 물건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아니제트, 빈 포도주병. 파르스름한 윈콜라병도 있다. 윈콜라병의 색깔은 콜롬보나 페낭 근처의 바다색과 매우 닮았다. 또 보티첼리 그림의 바다색과도 닮았다. 그 병을 보고 있으면 푸르고 투명한 바다나 선원들이 힘차게 노를 젓는 범선, 이탈리아 화랑에서 본 보티첼리의 바다가 떠오른다. 유리라는 물건이 지닌 투명함. 또 반투명한 초록, 버건디, 아지랑이 색 등이 내 마음에 든다. 유리가 지닌 연약함. 서늘함. 그리고 적당한 무게. 얇은 컵이 맞닿는 소리도 좋다.

병 속에서 울리는 라무네 사이다 구슬. 초록, 하늘색, 버건디, 우윳빛 등의 공깃돌. 유리구슬을 이은 얼음 가게의 포렴. 두꺼운 받침이 달린 컵.

커피포트 주둥이에서 빛나며 샘솟는, 컵 가득 담긴 아침 호텔의 커피. 럼주에 물을 살짝 탄 그로그의 갈색, 홍차의 진빨강 반짝임. 옅은 갈색으로 굽힌 머핀 등에 매혹당하면서도 그 영화들 속 레슬리 캐론의 춤, 사랑스러움, 프레드 아스테어의 소탈한 춤. 또는 히치콕 감독의 걸작 영화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을 품고 있는 가벼운 재미를 나는 즐긴다.

자두나 딸기, 복숭아 잼을 만들거나 빵과 달걀과 우유에 바닐라를 넣은 따끈한 과자, 얼음사탕을 뜨거울 때 녹인 차가운 홍차 등은 자주 즐긴다. 매년 7월에는 솔덤 자두의 껍질을 벗기고 씨를 뺀 뒤 체에 걸러서 적포도주에 섞은 음료를 만든다. 위스키만 마시는 술고래 아들도 감탄하며 칭찬할 정도로 어른스러운 리큐어다.

소설을 읽다가도 근사한 요리가 나오면 기억에 남는다. 셜록 홈즈의 차가운 도요새 요리. 리큐어를 넣은 커피. 파일로 밴스S. S. 밴 다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귀족적 취향의 탐정의 농어와 달걀로 만든 따뜻한 요리.

버터를 넉넉히 넣고 생표고버섯을 볶아서 파슬리를 뿌린 보르도풍 버섯 요리. 프렌치소스를 뿌린 양상추에 얇게 썬 토마토와 양파를 장식한 로마풍 샐러드도 자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 씻을 더운물" 하고 어머니나 마리 본인이 말씀하시면 하녀가 가져다준다. 하녀가 뒤에 서서 머리를 빗기고 고무줄로 묶어서 리본을 달아주는 사이에 다시 한 번 시험 복습을 하거나 프랑스어 레슨을 복습한다.

파리에서는 일요일이 되면 코미디 프랑세즈로 여배우가 여러 명 와서 시를 낭독했다. 중학생들에게 올바르고 아름다운 프랑스어 발음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젊고 예쁜 여배우가 교대로 등장하며 아름답고 순수한 파리지앵의 발음으로 시를 낭독한다. 위층 관람석이나 무대 바로 아래쪽 자리는 어머니가 데려온 하얀 옷깃의 중학생으로 가득 차있다.

나는 야마다가로 들어오자마자 오요시 님을 숭배하게 되어서, 오요시 님이 보라색 바탕에 조릿대 잎사귀 무늬가 홀치기염색된 긴 주반을 짓고 있으면 그것과 같은 옷감으로 내 주야오비겉과 안을 다른 천으로 만든 전통 여자 허리띠도 지어달라고 하곤 했다.

오요시 님이 여름에 가느다란 세로줄 무늬 유카타에 나들이용으로 맞춘 듯한 물살과 갈대 무늬, 또는 물에서 자잘한 물고기가 헤엄치는 무늬 등의 사紗로 만든 기모노 허리띠를 낮게 매고 복도를 걸어가는 뒷모습도 좋았지만, 겨울에 요네자와 명주로 만든 기모노에 그와 비슷한 하오리를 걸친 모습도 좋았다. 어깨가 부드럽게 처져 있어서 자태가 좋았던지라 하오리에 얇게 풀솜을 넣어도, 하오리 아래에 풀솜옷을 받쳐 입어도 멋졌다. 자태가 좋다는 건 이득이어서 그 위로 시아버지와 함께 맞춘 소맷부리가 네모난 외투를 입어도 전혀 둔해 보이지 않았다.

또 세련되었지만 기품 있는 생김새여서 틀어 올린 머리를 장식하는 끈에 산호가 아니라 작은 진주를 쓰는 것도 어울렸다. 오요시 님이 평소에도 진주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던 이유는 나카무라 아저씨라는 시아버지의 먼 친척이 어떤 연줄을 통해 손에 넣었는지 알이 작긴 했지만 진짜 진주와 호리병 모양으로 생긴 진주(품질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를 쟁반에 넘치게 담아서 모두에게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한 적이 있어서다. 그래서 오요시 님은 머리장식도 두 개 만들고 호리병 모양 진주를 나란히 세 개 놓고 은으로 잎사귀 모양을 만들어 붙인 기모노 허리띠 장식 등도 만들었던 것이다.

오요시 님의 요리 가운데 내가 보고 흉내 냈던 것은 유자 무절임과 니나마스채소, 어패류, 유부 등의 재료를 가열해 식초 등으로 조미한 요리, 그리고 굴초절임이었다. 유자무절임은 단맛이 적은 삼배초식초에 간장과 설탕 또는 미림을 섞은 혼합초를 그릇에 가득 채우고, 거기에 아주 얇게 썬 무와 둥글게 썬 유자를 담가서 잠시 재워둔다. 굴초절임은 굴을 식초에 절인 음식으로 누구든 만들 수 있지만, 오요시 님은 거기다 잘게 깍둑썰기한 생강을 뿌리는데 그런 사소한 정성으로 모양도 맛도 세련되어졌다. 무 간 것을 버무린 해삼초절임도 맛있었다. 니나마스는 어슷썰기 한 무를 삶아서 부드러워지면 세 포로 뜬 정어리를 넣고 맑은 장국처럼 간을 한 뒤 식초를 조금 넣는다.

오요시 님이 만든 것 가운데 또 하나 근사한 요리가 있다. 봄이 되면 만들었던 죽순초밥이다. 먼저 도미를 얇게 회 뜨고 그 껍질을 따로 뒀다가 식초 속에서 비벼 씻듯 잘 문지른다. 그 살짝 탁해진 식초로 초밥용 밥을 짓고 네모난 초밥틀에 초밥용 밥을 담은 뒤 도미를 넣고, 다시 밥을 넣은 다음 그 위에 달지 않게 담백하게 조린 죽순과 나무순을 올려서 꼭꼭 누른다. 삼각형 죽순과 푸릇푸릇한 나무순이 산뜻해서 매우 담백한 초밥이다. 시아버지의 고향인 히로시마의 음식일지도 모른다.

오요시 님의 유일한 ‘연애담’은 그가 어린 게이샤였던 무렵 하코네의 산 위에서 피서를 즐기던 이치카와 사단지(단?, 기쿠菊, 사左라고 불렸던 초대 사단지가부키에서 메이지 시대 도쿄 극단의 3대 명배우인 9대 이치카와 단주로, 5대 오노에 기쿠고로, 초대 이치카와 사단지를 아울러 일컫는 말)를 만나러 가마를 타고 산을 올랐다는 이야기다. 오요시 님은 신바시의 ‘요시미마스’라는 기생집 게이샤였고, 기적에 올라 있을 때의 이름은 고모모라고 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미네의 방 앞뜰에 수유나무와 나무딸기가 있었다. 수유열매는 타원형이었고 새빨갛게 익으면 조금 시큼하지만 맛있었다. 하지만 온통 자잘한 씨앗 같은 알갱이가 붙어 있어서 나는 그 열매를 기모노 소맷부리에 문질러 알갱이를 떼어낸 다음 입에 넣었다. 소맷부리가 더러워져서 어머니가 화를 냈다. 또 할머니도 내게 그렇게 수유열매를 잔뜩 따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 방에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들어갔더니 할머니가 수유열매를 가득 담은 찬합 뚜껑을 열어서 먹고 있었다.

나무딸기는 옅은 오렌지색 알갱이가 비교적 크고 하얗고 뾰족한 꽃술 위에 덧씌워져 있었다. 딸기처럼 시지 않고 그저 달기만 한 맛이어서 그리 맛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할머니의 눈을 피해 되도록 잎사귀 그늘에 있는 것을 비틀어 따먹었다. 마치 살짝 올려둔 것처럼 꽃술 위에 붙어 있어서 곧바로 쏙쏙 입에 들어갔다

어린 시절 살았던 센다기초의 집 뒤뜰에는 큰 백목련 나무가 있었다. 봄이 오면 새하얗고 커다란 목련꽃이 하늘을 뒤덮으며 피었다. 그 아래 서서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어두워질 정도로 새하얗고 커다란 꽃으로 가득했고, 맑은 물빛 하늘이 드문드문 유리조각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 옷이며 외투, 모자, 신발, 머프, 장갑까지 모두 베를린에서 보낸 것을 받았다. 옅은 갈색의 판지 상자 속에서 아버지가 마술처럼 꺼내곤 했다. 아버지가 위에 포개져 있는 얇은 종이를 팔락팔락 젖히면 내 작은 가슴은 기대와 기쁨으로 두근거렸다.

예전에 혼고 산초메의 아오키도에서 팔던 성냥갑 정도 크기에 영국인지 스페인인지의 풍경이 그려진 감색 상자 속에 은색 종이로 포장된 초콜릿 여섯 개가 든, 맛도 모양도 고급스러운 초콜릿이 있었다. 그것은 내 주식 초콜릿이었다.

가지를 껍질째 숯불에 구워 껍질이 새까맣게 타서 부드러워진 것을 물에 담가 껍질을 벗기는데, 안쪽도 옅은 갈색으로 부분부분 굽혀 있다. 꼭지째 접시에 담아 가다랑어포와 간장을 뿌린다. 호박조림, 월과, 가지된장무침 등도 있다. 겨울에는 흐물흐물하게 삶은 무에 조린 된장을 얹어 먹었다. 또 특이하게도 삶은 감자를 둥글게 썰어 간장을 찍어서 자주 먹었다.

양배추말이, 감자, 당근, 양파를 삶고 소고기를 더해서 푹 익힌 것, 감자, 당근(감자와 당근은 깍둑썰기), 푸르대콩 등을 삶고 생양파를 잘게 다진 것, 단단히 삶은 달걀을 잘게 다져서 섞은 샐러드, 각종 채소에 소고기를 넣은 수프 등이다.

또 저민 고기에 잘게 다진 당근과 양파를 섞어 넣고 볶은 것을 삶아서 체에 거른 감자로 감싸 쌀섬 모양으로 빚은 뒤 튀긴 크로켓도 즐겨 먹었다.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만들어 먹인 요리 가운데에는 밤을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간장과 맛술 약간, 설탕 약간으로 조린 것, 소바가키메밀가루를 뜨거운 물로 빚어 덩어리째 먹는 음식 등도 좋아했다.

프랑스에서는 이것을 러시아 샐러드라는 뜻에서 살라다 뤼스salade russe라고 불렀는데 나도 매우 좋아하는 샐러드다. 넙치 같은 흰살 생선을 식초와 물 반반으로 삶아서 감자, 당근, 삶은 푸르대콩, 다진 생양파와 섞은 뒤 식초와 올리브유(올리브유는 식초의 절반 정도)를 섞은 프렌치드레싱으로 버무린다.

아버지는 내가 열한 살 때 진빨강, 흰색, 올리브색 등의 자잘한 사각형이 모여 삼각형을 이루고, 그 삼각형이 흰색과 빨간색, 검은색과 빨간색, 올리브색과 빨간색 등으로 다양하게 짝을 지어 대여섯 종류의 다른 색 조합을 이루는 재미있는 무늬의 후리소데기모노 가운데 가장 화려한 예복를 골라주셨다.

길이가 7.5센티미터 정도 되는, 녹말을 뿌린 물렁물렁한 조센아메라는 엿을 여동생과 세이요켄 창가에 나란히 앉아 양쪽에서 잡아당겨서 뜯어 먹었던 것을 기억한다

야마다가에 가서 좋았던 것은 설날 아침의 풍습으로(아마 히로시마식이겠지), 도소잡귀를 쫓고 장수를 기원하며 정월에 마시는 술를 다 마시면 곶감을 둥글게 썬 뒤 나와 있는 씨를 뺀 것을 네 곳 움패게 해 꽃잎이 다섯 장인 꽃 모양으로 만들어서 과자 접시에 담아내는데 각자 자신의 접시로 집어와 먹는다.

떡국도 친정에서 외가식으로 만드는 것에는 떡국과 시금치만 들어 있었던 반면 야마다가는 오리고기 떡국이었다. 오리고기, 무, 당근, 토란, 우엉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 있는 데다, 요리 마지막 무렵에 연어 알을 뿌려서 반쯤 색이 변하면 불을 끈다.

기노시가이치카와 엔노스케의 본명은 기노시 마사히코의 것은 배우의 집안답게 길흉을 따져서 "유명해진다"라고 하면 나물과 유부를 넣고‘유명해진다(名を?げる)’와 ‘나물을 올린다(菜をあげる)’는 발음이 같다 "손님을 들인다"라고 하면 닭을 넣는가부키에서의 ‘손님을 들인다(取り入れる)’와 ‘닭을 넣는다(?入れる)’는 발음이 같다 식이었다고 이야기해줬다.

오코토 님은 기모노 옷매무새가 또 뭐라 말할 수 없이 근사했다. 옷깃 언저리는 느슨하게 풀어놓고 허리띠도 아무렇게나 묶었지만 가슴 근처와 허리는 꽉 조여 있었다. ‘에리엔’에서 어머니와 내가 장식용 옷깃을 고르고 있을 때 들어오면 "아가씨, 이게 좋겠지요"라고 하며 직접 골라 내 옷깃에 대어주곤 했다.

구종goujon, 모래무지버터조림도 근사하다. 껍질에 든 날성게나, 정어리 같은 생선을 버터로 구운 것에 소금에 절인 성게를 곁들인 요리도 대단했다. 또 프뤼니에에서 생굴을 타로 주문한 뒤 "앙코르, 두젠encore douzaine(한 타 더)" 하고 다시 주문해서 후룩후룩 비우는 그 맛이란 두말 할 나위 없다(지중해의 굴이었는데 지금은 어째선지 더 이상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또 그 뒤에는 바지락이 든 필래프와 로마풍 샐러드(양상추 잎을 세로로 잘라서 그 절반을 절단면이 위로 향하도록 접시에 담고, 그 위에 얇게 썬 토마토와 양파를 파슬리와 함께 올린 뒤 프렌치드레싱을 뿌렸다)를 먹었다.

콘수프와 닭고기가 든 그라탱은 굉장히 맛있다. 밥도 고슬고슬하고 채소도 신선하다. 엽차와 맑은 장국도 내주고, 햄에그를 주문하면 그라탱 접시를 통째로 구워서 나오는데, 뜨거운 것을 잘 못 먹는 나로서는 조금 곤란하지만 햄도 질이 좋고 맛있다.

차분한 녹차색과 베이지색의 털실 니삭스를 사줬다. 따뜻한 데다 도큐 백화점의 가나이 미요 씨 가게에서 지은 프랑스 울로 된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오버코트와 함께 신으면 옛날 영국 인형 같아서(내가 서양 인형 같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몹시 좋아하며 올해도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오버코트의 단추는 물소 뿔로 만들었는데 대모 등딱지의 반점 같은 점 색깔의 농담이 셋 다 다르다. 어느 정도 회색빛이 도는 베이지색의 그 오버코트는 입고 긴자를 걸어도 모든 여성이 힐끔힐끔 보시니 굉장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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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랑어와 넙치, 땃두릅, 미역, 파를 넣은 백된장 초무침을 만들어 특대형 양은 도시락 통에 담아서 가져가 먹였다.

내 요리는 부엌일을 하는 말단 스님이 된장을 으깬 것을 요리 솜씨 좋은 스님이 은행이나 다시마를 다져서 으깬 두부에 섞어 튀긴 뒤 담백하게 조리거나, 물겨자를 넣은 순나물 산슈된장국을 만드는 절의 후차요리에도 시대 초기 중국에서 일본으로 유입된 사찰 음식처럼 본격적인 요리법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세련된 된장 초무침이라 해도 콩 알갱이가 남아 있는 된장을 막자사발로 으깨는 짓 같은 건 안 한다.

도요코에서 파는 교토의 백된장을 그대로 식초와 약간의 물에 살짝 풀어서(채소에서 수분이 나오므로 조금 뻑뻑하게 푼다) 조미료와 겨자를 조금씩 넣고, 삶아서 물기를 뺀 파, 물에 불려서 소쿠리에 건져둔 미역, 직사각형으로 얇게 썰어서 물에 불려둔 땃두릅, 회보다 두툼하게 어슷썰기한 다랑어나 도미 등을 버무리면 끝이다.

두툼한 당근을 약불에 올리고, 담백한 맛을 살리기 위해 간장과 청주를 조금씩 넣어 가다랑어포와 함께 푹 익힌 다음, 들고 가서 단골 요릿집에서 밥그릇 위에 올려줬다.

우선 소고기 가운데 비프스테이크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부위를 잘게 다진 양배추와 함께 고기 결이 다 풀어질 때까지 삶아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요리(이건 아버지가 베를린의 하숙집에서 자주 먹었던 모양이다). 이 요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맛있다.

하기와라 요코에게 먹인 것같이 백된장을 쓴 된장 초무침은 매년 초봄만 되면 먹고 싶어진다. 청주와 물을 조금씩 넣어서 푼 백된장을 옥돔 도막에 묻힌 뒤 하룻밤 재워두고 굽는 요리인데, 한펜과 순무와 두부를 적당히 썬 다음 맛국물(가다랑어포로 낸 국물도 괜찮다)을 내어 소금을 살짝 넣고, 건더기를 넣어 한소끔 끓인 뒤 불을 끌 때 조미료와 요리술을 넣기만 하면 된다. 순무 같은 채소의 열매를 맛국물로 삶는 건 산뜻하지 않아서 싫다. 백된장으로 끓이는 바지락국도 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이때 조개 입이 벌어지면 불을 끄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바지락국을 손님한테 낼 때는 나무순을 띄워 향미를 더하고 그릇 뚜껑의 실굽에도 나무순을 올려서 낸다. 시금치를 푸릇푸릇 삶은 다음 간장과 요리술을 조금씩 넣어 무치고 소량의 나무순을 잘게 다져 버무린 것도 근사한 봄의 덮밥용 요리다.

파리에서 살 때 살라다 뤼스라는 메뉴가 있었는데, 러시아요리처럼 보이지만 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배운 건 빌헬름 2세가 전투식량으로 직접 만들어 병사들을 먹였다는 음식으로 독일의 요리 잡지에도 실려 있다. 빌헬름 2세가 러시아요리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흰살 생선을 식초와 물로 삶는데, 봄이라면 도미겠지만 가을에는 고등어가 좋다. 식초는 물의 3분의 1 비율로 넣고 뼈가 있다면 발라낸다. 내게 생선살을 발라내거나 삶은 밤 껍질을 까는 건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이므로 언제나 생선 도막을 삶아서 껍질과 거무스름한 부분만 떼어내는데, 그것마저 싫을 때는 횟감용 도막 하나를 산다. 감자와 당근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서 삶는데 이때 소금은 안 넣고, 양파는 잘게 썬다. 양파는 물에 헹구지 않는데 그 편이 더 독일답고 야성적이며, 독일의 초원에서 빵에라도 끼워서 덥석 베어 무는 데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좋아하던 옛날 일고생이나 그 야생미를 그대로 간직한 어른 남자 같기 때문이다. 달걀을 단단히 삶아서 흰자와 노른자를 모두 굵게 다지고, 강낭콩을 꼬투리째 짧게 썰어서 삶는다. 이때 색이 바래지 않도록 소금을 한 자밤 넣는다. 그 외에는 파슬리를 가루처럼 잘게 다진다. 생선과 채소, 파슬리를 섞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식초에 물을 조금 탄 것으로 버무리면 달걀노른자는 반쯤 풀어져 섞여서 색 배합이 훨씬 예쁘다.

이 요리는 맥주랑 어울려서 흑빵이나 껍질이 단단한 바게트를 따로 굽지 않고 그대로 버터를 곁들여 맥주와 함께 먹는다. 독일의 혈색 좋고 활기찬 청년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맛이다. 가을이라면 여기다 달달한 배와 말린 자두를 조린 콩포트compote, 과일을 설탕에 조려 만든 프랑스 디저트를 곁들이면 만점이다. 이때 설탕은 아주 조금만 넣어도 된다. 자두에서 나오는 단맛을 죽이지 않을 정도만.

봄의 요리 가운데는 파리 하숙집에서 자주 나왔던 진주담치샐러드도 있다. 진주담치는 일본에 없어서, 나는 바지락으로 대체해 만든다. 소금을 살짝 넣은 끓는 물에 바지락을 넣고 입이 벌어지면 사발에 옮겨 담아 식힌 뒤, 올리브유와 식초로 만든 소스(식초는 귤식초로 임시변통하고 올리브유는 식초의 7, 8분의 1 정도)를 두르고 파슬리를 뿌린다.

소금으로만 간을 한 맑은 대합국도 3월 절구節句 때 쓸 정도니까 봄철 음식이겠지. 대합을 바지락과 마찬가지로 삶아서 보통의 맑은 국보다 소금 간을 세게 한 뒤, 청주와 조미료를 조금씩 넣고 그릇에 담아서 나무순을 곁들인다. 이때는 물론 물이 아니라 맛국물로 삶는다. 오믈레트 오 핀제르브omelette aux fines herbes는 푸릇푸릇해서 근사하다. 파슬리, 차이브, 골파 등 허브를 곁들인 오믈렛인데, 일본에 돌아온 뒤로는 파슬리를 녹색 즙이 나올 정도로 잘게 다져서 달걀에 섞어 굽는다.

또 봄에만 먹는 요리는 아니지만 내가 잘하는 것 가운데 토마토 버터구이와 양파 버터구이가 있다. 토마토는 커다란 것을 꽤 두툼하고 둥글게 썬 다음, 프라이나 크로켓을 뒤집는 도구로 버터를 듬뿍 넣어 바글바글 끓기 시작한 팬에 살짝 넣고, 소금과 후추 간을 해서 망가지지 않도록 양쪽 면을 구운 뒤 그대로 접시에 담아 파슬리를 뿌린다. 양파도 마찬가지로 큼직큼직 둥글게 썰어서 망가지지 않도록, 이번에는 버터를 토마토 때보다 조금 적게 넣고 살짝 노릇노릇해질 정도로 구워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접시에 담는다. 파슬리도 마찬가지로 뿌린다. 양파가 멋진 나선형을 이루기도 해서 이 두 요리는 손님용으로 낼 수 있는 게 자랑이다.

밤을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간장과 청주로 잽싸게 휙 조린 것도 맛이 좋고, 또 풋콩을 삶아서, 간장과 청주로 조리는 방식은 밤과 똑같지만 이번에는 좀 더 바짝 조린 것도 맛이 좋다. 달걀을 단단하게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둥글게 썬 뒤 역시 간장과 청주로 재빨리 조린 요리도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내가 자랑하는 반찬이다. 보르도식 버섯 요리인 샹피뇽 아 라 보르들레즈champignons a la bordelaise도 표고버섯으로 만들 수 있다. 버터를 넉넉히 두르고 버터와 거의 비슷한 양의 커다란 생표고버섯 양쪽 면을 굽는데, 여기에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파슬리를 뿌린다.

소고기전골은 오요시 님이 자랑하는 요리다. 우선 쇠 냄비에 하쿠쓰루 청주를 넣어서 불에 올리고, 뜨거워졌을 때 성냥을 그어 청주에 불을 붙이면 파르스름한 불꽃이 이글이글 일어나며 알코올 성분이 증발하는데 이것은 따로 놔둔다. 다음으로 소고기 비곗덩어리를 마찬가지로 쇠 냄비에 넣고 짙은 갈색의 바짝 마른 찌꺼기가 될 때까지 바닥을 닦듯이 구운 뒤, 기름이 다 빠져나오면 찌꺼기를 빼낸다. 그 기름에 소고기를 한꺼번에 넣는데 군데군데 색이 변하고 생고기 색깔도 남아 있을 때쯤 이것 역시 따로 빼둔다. 다음으로 실곤약을 충분히 볶고 대파는 반쯤 덜 익을 정도로 재빨리 볶는다. 이만큼 사전 준비를 한 다음 청주에 간장과 설탕을 아주 조금 넣고 소고기, 실곤약, 대파를 조금씩 조린다. 다음으로 두부도 넣는다.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넣는데 그야말로 최상의 미식이다.

따끈한 빵 간식은 우유 540밀리리터 정도에 잘 풀어둔 달걀 열 개(5인분)를 섞은 뒤 바닐라 에센스를 한 자밤 정도 넣어서 하룻밤을 재워두고, 조금 딱딱해진 빵을 껍질째 1.5센티미터 정도로 깍둑썰기해서 푹 담근다. 그대로 불에 올리고 위아래를 뒤집듯 서벅서벅 섞는다. 그런 다음 군데군데 노릇노릇해지고 달걀이 여기저기 달걀찜처럼 엉겨 붙어 섞일 때쯤 불을 끈다. 그러면 따끈하고 아이스크림 향이 나는 참으로 근사한 요리가 된다. 이것은 결혼 전 요리 선생님(오차노미즈 여대의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한테 배운 영어 이름 요리인데 브레드 버터푸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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