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그 답례품이 영국에서 수입한 좋은 홍차(트와이닝 오브 런던TWININGS of London)여서 요즘 매일 마시고 있다. 그 홍차 중에서도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라는 짙은 회색과 노란빛 도는 갈색 봉투에 든 차가 가장 좋아서 매일 아침 무당연유를 넣어 마신다. 덕분에 요즘 나는 프린세스의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살구나 사과가 끈적끈적하게 광택을 띠고 있고 바깥쪽은 노릇노릇하게 익었으며 안쪽은 말캉말캉한, 밀가루를 구운 껍질 사이로 소가 비어져 나올 듯한 그 맛있게 구운 과자는 역시 파이가 아니라 타르틀레트다. 영화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에서 빵집 주인 라그노가 "달걀 서너 개를 집어 들고 노릇노릇 구우면 금방 옅은 갈색이 되지, 살구를 넣은 타르틀레트……"라고 근처에 있던 종이에 즉흥시를 휘갈겨 쓰고는 그 종이로 포장해서 건넨 타르틀레트야말로 내가 가장 탐내는 살구타르틀레트다.
프랑스 빵집 주인이 만든 살구가 든 타르틀레트 다브리코tartelette d’abricot를 입에 넣고 싶다. 사과가 든 타르틀레트 드 폼tartelette de pomme도 좋다.
아사쿠사의 아파트로 이사 가서 처음으로 산 잔은 수수한 엷은 갈색 바탕에 잎은 검은 빨간 동백꽃 무늬가 그려진, 모양도 좀 다도에서 쓰는 찻잔 같은 것이었다. 그다음은 짙은 남색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그려진 잔인데 이쪽은 왠지 하이칼라 느낌이었다.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딱히 내 전용 찻잔에 공을 들이는 일도 없었지만, 아파트에서 혼자만의 방을 가지게 된 무렵부터는 방 전체에 자기주장 같은 것이 생겨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만 두게 되었다.
내 몸을 둘러싼 물건 전체에 고루 퍼져 있는 자기주장은 조금 무서울 지경으로 거세졌다. 무엇보다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나 자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 나 혼자만의 방에서 얼마든지 자신을 구석구석 드러내도 불만을 말할 사람은 없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맘껏 늘어놓고 기뻐할 따름이다. 요즘은 ‘보티첼리의 장미 찻잔’이라 부르는 예쁜 홍차 찻잔이 두 개 있어서 일본의 푸르스름한 차도 그 잔에 담아 마신다.
보티첼리의 장미 찻잔은 연홍색 꽃잎에 푸른빛이 감도는 연두색 잎사귀가 달린 장미가 흩뿌려진 홍차 찻잔인데, 그 꽃이 옛날 이탈리아 미술관에서 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하늘과 바다 위로 흩날리는 장미를 빼닮은 데다 잎사귀 색 역시 그 그림의 하늘이나 바다색처럼 푸르스름해서 그렇게 이름 붙인 찻잔이다. 침대 곁에 그 찻잔과 두꺼운 유리로 된 밀크 용기, 네슬레의 무당연유 캔, 은(진짜 은이다)으로 된 숟가락이 놓여 있는데, 소설을 쓰는 것이나 써지지 않는다는 괴로움에 지치면 물을 끓여서 립턴 티백으로 홍차를 만든다. 프리먼 크로프츠 같은 영국인의 추리소설을 읽다가 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또 마시고 싶어져서 물을 끓인다.
차를 마시는 내 눈에 침대 헤드보드 위 빈 베르무트 병에 꽂아둔 빨간 장미, 파르스름한 코카콜라병, 짙은 파랑색 병에 꽂아둔 진홍색 장미와 하얀 꽃, 연홍색 꽃 등이 비쳐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배로 늘려준다. 영화 제목을 빌리면, 〈술과 장미의 나날Days of Wine and Roses〉이 아니라 ‘홍차와 장미의 나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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