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랑어와 넙치, 땃두릅, 미역, 파를 넣은 백된장 초무침을 만들어 특대형 양은 도시락 통에 담아서 가져가 먹였다.
내 요리는 부엌일을 하는 말단 스님이 된장을 으깬 것을 요리 솜씨 좋은 스님이 은행이나 다시마를 다져서 으깬 두부에 섞어 튀긴 뒤 담백하게 조리거나, 물겨자를 넣은 순나물 산슈된장국을 만드는 절의 후차요리에도 시대 초기 중국에서 일본으로 유입된 사찰 음식처럼 본격적인 요리법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세련된 된장 초무침이라 해도 콩 알갱이가 남아 있는 된장을 막자사발로 으깨는 짓 같은 건 안 한다.
도요코에서 파는 교토의 백된장을 그대로 식초와 약간의 물에 살짝 풀어서(채소에서 수분이 나오므로 조금 뻑뻑하게 푼다) 조미료와 겨자를 조금씩 넣고, 삶아서 물기를 뺀 파, 물에 불려서 소쿠리에 건져둔 미역, 직사각형으로 얇게 썰어서 물에 불려둔 땃두릅, 회보다 두툼하게 어슷썰기한 다랑어나 도미 등을 버무리면 끝이다.
두툼한 당근을 약불에 올리고, 담백한 맛을 살리기 위해 간장과 청주를 조금씩 넣어 가다랑어포와 함께 푹 익힌 다음, 들고 가서 단골 요릿집에서 밥그릇 위에 올려줬다.
우선 소고기 가운데 비프스테이크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부위를 잘게 다진 양배추와 함께 고기 결이 다 풀어질 때까지 삶아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요리(이건 아버지가 베를린의 하숙집에서 자주 먹었던 모양이다). 이 요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맛있다.
하기와라 요코에게 먹인 것같이 백된장을 쓴 된장 초무침은 매년 초봄만 되면 먹고 싶어진다. 청주와 물을 조금씩 넣어서 푼 백된장을 옥돔 도막에 묻힌 뒤 하룻밤 재워두고 굽는 요리인데, 한펜과 순무와 두부를 적당히 썬 다음 맛국물(가다랑어포로 낸 국물도 괜찮다)을 내어 소금을 살짝 넣고, 건더기를 넣어 한소끔 끓인 뒤 불을 끌 때 조미료와 요리술을 넣기만 하면 된다. 순무 같은 채소의 열매를 맛국물로 삶는 건 산뜻하지 않아서 싫다. 백된장으로 끓이는 바지락국도 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이때 조개 입이 벌어지면 불을 끄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바지락국을 손님한테 낼 때는 나무순을 띄워 향미를 더하고 그릇 뚜껑의 실굽에도 나무순을 올려서 낸다. 시금치를 푸릇푸릇 삶은 다음 간장과 요리술을 조금씩 넣어 무치고 소량의 나무순을 잘게 다져 버무린 것도 근사한 봄의 덮밥용 요리다.
파리에서 살 때 살라다 뤼스라는 메뉴가 있었는데, 러시아요리처럼 보이지만 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배운 건 빌헬름 2세가 전투식량으로 직접 만들어 병사들을 먹였다는 음식으로 독일의 요리 잡지에도 실려 있다. 빌헬름 2세가 러시아요리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흰살 생선을 식초와 물로 삶는데, 봄이라면 도미겠지만 가을에는 고등어가 좋다. 식초는 물의 3분의 1 비율로 넣고 뼈가 있다면 발라낸다. 내게 생선살을 발라내거나 삶은 밤 껍질을 까는 건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이므로 언제나 생선 도막을 삶아서 껍질과 거무스름한 부분만 떼어내는데, 그것마저 싫을 때는 횟감용 도막 하나를 산다. 감자와 당근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서 삶는데 이때 소금은 안 넣고, 양파는 잘게 썬다. 양파는 물에 헹구지 않는데 그 편이 더 독일답고 야성적이며, 독일의 초원에서 빵에라도 끼워서 덥석 베어 무는 데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좋아하던 옛날 일고생이나 그 야생미를 그대로 간직한 어른 남자 같기 때문이다. 달걀을 단단히 삶아서 흰자와 노른자를 모두 굵게 다지고, 강낭콩을 꼬투리째 짧게 썰어서 삶는다. 이때 색이 바래지 않도록 소금을 한 자밤 넣는다. 그 외에는 파슬리를 가루처럼 잘게 다진다. 생선과 채소, 파슬리를 섞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식초에 물을 조금 탄 것으로 버무리면 달걀노른자는 반쯤 풀어져 섞여서 색 배합이 훨씬 예쁘다.
이 요리는 맥주랑 어울려서 흑빵이나 껍질이 단단한 바게트를 따로 굽지 않고 그대로 버터를 곁들여 맥주와 함께 먹는다. 독일의 혈색 좋고 활기찬 청년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맛이다. 가을이라면 여기다 달달한 배와 말린 자두를 조린 콩포트compote, 과일을 설탕에 조려 만든 프랑스 디저트를 곁들이면 만점이다. 이때 설탕은 아주 조금만 넣어도 된다. 자두에서 나오는 단맛을 죽이지 않을 정도만.
봄의 요리 가운데는 파리 하숙집에서 자주 나왔던 진주담치샐러드도 있다. 진주담치는 일본에 없어서, 나는 바지락으로 대체해 만든다. 소금을 살짝 넣은 끓는 물에 바지락을 넣고 입이 벌어지면 사발에 옮겨 담아 식힌 뒤, 올리브유와 식초로 만든 소스(식초는 귤식초로 임시변통하고 올리브유는 식초의 7, 8분의 1 정도)를 두르고 파슬리를 뿌린다.
소금으로만 간을 한 맑은 대합국도 3월 절구節句 때 쓸 정도니까 봄철 음식이겠지. 대합을 바지락과 마찬가지로 삶아서 보통의 맑은 국보다 소금 간을 세게 한 뒤, 청주와 조미료를 조금씩 넣고 그릇에 담아서 나무순을 곁들인다. 이때는 물론 물이 아니라 맛국물로 삶는다. 오믈레트 오 핀제르브omelette aux fines herbes는 푸릇푸릇해서 근사하다. 파슬리, 차이브, 골파 등 허브를 곁들인 오믈렛인데, 일본에 돌아온 뒤로는 파슬리를 녹색 즙이 나올 정도로 잘게 다져서 달걀에 섞어 굽는다.
또 봄에만 먹는 요리는 아니지만 내가 잘하는 것 가운데 토마토 버터구이와 양파 버터구이가 있다. 토마토는 커다란 것을 꽤 두툼하고 둥글게 썬 다음, 프라이나 크로켓을 뒤집는 도구로 버터를 듬뿍 넣어 바글바글 끓기 시작한 팬에 살짝 넣고, 소금과 후추 간을 해서 망가지지 않도록 양쪽 면을 구운 뒤 그대로 접시에 담아 파슬리를 뿌린다. 양파도 마찬가지로 큼직큼직 둥글게 썰어서 망가지지 않도록, 이번에는 버터를 토마토 때보다 조금 적게 넣고 살짝 노릇노릇해질 정도로 구워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접시에 담는다. 파슬리도 마찬가지로 뿌린다. 양파가 멋진 나선형을 이루기도 해서 이 두 요리는 손님용으로 낼 수 있는 게 자랑이다.
밤을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간장과 청주로 잽싸게 휙 조린 것도 맛이 좋고, 또 풋콩을 삶아서, 간장과 청주로 조리는 방식은 밤과 똑같지만 이번에는 좀 더 바짝 조린 것도 맛이 좋다. 달걀을 단단하게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둥글게 썬 뒤 역시 간장과 청주로 재빨리 조린 요리도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내가 자랑하는 반찬이다. 보르도식 버섯 요리인 샹피뇽 아 라 보르들레즈champignons a la bordelaise도 표고버섯으로 만들 수 있다. 버터를 넉넉히 두르고 버터와 거의 비슷한 양의 커다란 생표고버섯 양쪽 면을 굽는데, 여기에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파슬리를 뿌린다.
소고기전골은 오요시 님이 자랑하는 요리다. 우선 쇠 냄비에 하쿠쓰루 청주를 넣어서 불에 올리고, 뜨거워졌을 때 성냥을 그어 청주에 불을 붙이면 파르스름한 불꽃이 이글이글 일어나며 알코올 성분이 증발하는데 이것은 따로 놔둔다. 다음으로 소고기 비곗덩어리를 마찬가지로 쇠 냄비에 넣고 짙은 갈색의 바짝 마른 찌꺼기가 될 때까지 바닥을 닦듯이 구운 뒤, 기름이 다 빠져나오면 찌꺼기를 빼낸다. 그 기름에 소고기를 한꺼번에 넣는데 군데군데 색이 변하고 생고기 색깔도 남아 있을 때쯤 이것 역시 따로 빼둔다. 다음으로 실곤약을 충분히 볶고 대파는 반쯤 덜 익을 정도로 재빨리 볶는다. 이만큼 사전 준비를 한 다음 청주에 간장과 설탕을 아주 조금 넣고 소고기, 실곤약, 대파를 조금씩 조린다. 다음으로 두부도 넣는다.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넣는데 그야말로 최상의 미식이다.
따끈한 빵 간식은 우유 540밀리리터 정도에 잘 풀어둔 달걀 열 개(5인분)를 섞은 뒤 바닐라 에센스를 한 자밤 정도 넣어서 하룻밤을 재워두고, 조금 딱딱해진 빵을 껍질째 1.5센티미터 정도로 깍둑썰기해서 푹 담근다. 그대로 불에 올리고 위아래를 뒤집듯 서벅서벅 섞는다. 그런 다음 군데군데 노릇노릇해지고 달걀이 여기저기 달걀찜처럼 엉겨 붙어 섞일 때쯤 불을 끈다. 그러면 따끈하고 아이스크림 향이 나는 참으로 근사한 요리가 된다. 이것은 결혼 전 요리 선생님(오차노미즈 여대의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한테 배운 영어 이름 요리인데 브레드 버터푸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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