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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평점 :
[우리는 인간을 '두발이엄지'로 분류한다.]
누 선생의 흥미로운 발언으로부터 환희의 책은 시작된다. 펼치는 순간부터 김멜라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졌다. 인간을 손아랫생명이라고 칭하고 진화적 오류라면서 손가락질하는 곤충들이라니! 일명 비생식 연구의 저술가와 교육생들이 들려주는 인간 관찰기라니.
버들과 호랑의 이름이 명명되고 그들의 기록을 통합해 관리함을 모필자가 알리며, 이 이야기는 두 레즈비언 관찰기로 포커스된다. 서두를 뗀 모필자는 어떤 이유로 왜곡된 정보들을 제외하고 오직 그들의 신체나 정신적인 접촉 순간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힌다. 이 대목은 마치 나이나 생김새, 직업, 사는 곳 등은 훼손될 수 있을 만큼 보잘것없다는 듯이 들렸다. 나아가 성별까지도. 그들의 접촉만이 유의미함을 시사하는 것 같아 좋았다.
나는 인간이 장애란 말로 가로막은 벽들을 무너뜨리고 싶지. 언제나 두발이엄지들은 이건 넘치고, 저건 부족하다며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잖아. 세상을 온통 거울과 렌즈로 뒤덮고서 끊임없이 자신이 어떻게 보이나 비춰보잖아? (75)
호랑은 버들이 일으키는 물거품에 휩쓸려 함께 허우적댔지만, 그렇더라도, 그런 너라도, 나는 너의 시선과 뒤척임을 장애란 말로 부르지 않을 거라고, 이름 붙여 손에 쥐기 쉽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호랑은 생각했다. (147)
극성정동장애를 비롯해 우울감이나 정신 질환을 다루는 시선도 좋았는데 이를 병명이나 증세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봄이 버들의 혓바닥을 잡아당겼다거나, 봄이 버들을 열어젖혔다든지 새로운 잎이 돋아나게 했다는 식으로 버들의 상태를 표현한 문장에서는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염려하고 조심하는 손길이 연상됐다.
연장선으로 버들과 호랑이 두꺼비를 구해주는 장면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버들이라서 때때로 힘듦을 겪는 거라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런 섬세함과 기민함을 가진 사람일 뿐이라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위험을 피한 두꺼비가 그들의 사랑을 널리 전하고, 자연은 순환하고, 그로 인해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지고.
같이 죽을 수 있으니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 버들은 대답했고 그들은 함께 뒤집혔지. 죽고 싶은 삶에서 사는 힘을 주는 죽음으로. (51)
세상엔 한시라도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돌이'가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라도, 세상은 버들을 만들어 호랑의 곁에 보내주었다. 그것이 호랑이 이 세상이 증오로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고 믿는 이유였다. (107)
김멜라 작가는 사랑으로 로맨스만이 아닌 삶을 말한다. 버들과 호랑은 서로 붙들어 주면서 함께 살아간다. 짐을 들어주고, 길을 찾아주고, 같이 걸어주면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억지로 깨우거나 재우지 않으면서 그렇게. 그 덕에 미움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도 버들과 호랑은, 나는 이따금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작가의 이야기 속 여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안전하지 않지만 함께 있을 때의 그들은 무엇보다 큰 안정과 행복을 느낀다. 그런 그들의 작은 세계를 지켜주고 싶었다. 마치 공모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그러니까 나한테 환희의 책은 사랑을 향한 헌사나 다름없다.
정말 너무 좋아서 어떤 감상을 적어야 할지 머뭇거리게 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