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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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붉고 빨간 것들이 자주 언급된다. 이서아의 소설은 이처럼 강렬하다.

이야기에는 과감하다 못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 일명 통제 불가능의 소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살인을 상상하기도 하고 직접 저지르기도 하며 파괴적인 모습을 보인다. 학교를 불태울 계획을 세우거나 선생님의 관을 훔치거나 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와 전개에 처음에는 혼란했지만 이윽고 그 혼란함을 즐기게 되었는데, 어린 소녀에게서 이런 욕망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 충격과 희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주저할 틈도 없게 이야기 속으로 끌고 갔다.

어쩌면 나는 ’어리다‘를 순수하고도 유약하기만 한 존재로 정의했던 것 같다. 이것을 어린 심장 훈련을 읽으면서 고쳐 적게 되었다. 어리다는 것은 미숙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래서 용감하기도 하다. 과감하고, 대담하고, 거침없다.

인상 깊었던 첫 번째 단편은 초록 땅의 수혜자들. 선한 의지로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꺾이고 말았던 존재들의 이야기라고 요약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은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공통된 존재의 연대를 통해 가해자를 응징한다. 폭력을 행사하던 공장장을 죽이고, 성적으로 그들을 희롱하던 예술가를 죽이면서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벗어던진다. 우리는 죽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게 아니다. (139) 라는 구절이 우리는 당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로 읽혔다.

그러다 푸른 생을 위한 경이로운 규칙들을 읽고 나서는 마음이 축축해졌다. 투쟁하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꼭 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계속해 말해 주는 마지막 단편은 정말...... 사실 이 소설집은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도 괜찮아, 조금 달라도 괜찮아,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뭐든 괜찮다고, 부디 살아남아서 어린 심장을 훈련하자고.

뛰어내려야 할 때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온다면 뛰어들라. 결코 물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날에 입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면 수치심을 무릅쓰고 그곳에서 도망치라. 겉옷을 벗어던지고, 명령을 거역하고, 삶을 모욕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수가 있더라도 일단 살아남으라. 일단 살아남아 돌아오라. (333) 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세상은 어린 존재에게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단편을 읽었다.

어린 심장 훈련을 읽으며 나를 살아남게 했던 이들을 떠올렸다. 대단한 이야기꾼이라 생각되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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