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이반지하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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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지하라는 이름을 우연히 접했을 때 강렬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퀴어의 의미를 가진 이반과, 작가의 생활 공간이자 작업 공간인 반지하를 결합했다는 이 필명이 마치 어떤 선전 포고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정체성을 전면에 내걸고서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어떤 이야기를 해낼까 조그마한 궁금증이 있었다.


처음으로 읽어본 작가의 책은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난감했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맞는데, 그 공간이 집이 되기도 몸이 되기도, 어쩌면 일시적인 차 또는 옷장이 되기도 하고, 나는 노동 장소에 놓였다가도 휴식 장소에 놓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공간은 맞지만 공간만을 말하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단순히 장소를 관찰한다거나 감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엿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집집마다 키우던 집게를 ’정서도우미‘라고 표현한 점에 있어 그 시절 미비했던 동물권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돈을 벌다 삶이 끝나는(138) 노동 이야기가 나올 때는 노동 환경이랄지 사회 구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작가가 퀴어라는 이유만으로 강연 취소 통보를 받은 에피소드를 읽으면서는 덩달아 참담해졌다.


그런데 그렇게 딱딱 맞춰서 이 단추를 저 구멍에만 끼울 거라면 이 세상에 간지와 멋이랄지, 인간성 같은 건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53)


하지만 나는 딱 이만큼만 덥거나 추운 것이다. (55)


그러나 책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를 위로한 것 같다. 사회에서 말하는 ’일반적‘ 모습 외에도 다양함이 담겨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 다양한 모습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종종 슬펐지만 내내 슬프지만은 않았다. 작가는 다소 과격하게 묵은 감정을 해갈해주기도 하고, 특유의 유쾌하고 호방한 언어로 즐거움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영롱한 색채의 수입 페인트로 매끈하게 마감되어 틈 없이 이음새가 딱 맞는 문 같은 건 써본 적이 없다. 모든 문은 언뜻 멀쩡해 보일지언정 저마다의 땜질과 덜그럭거림으로 구질구질하게 닫히고 열린다. (60)


관계에 대한 챕터를 읽고서는 이 책을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적어 두고 싶어졌다. 사람이 으레 살아가며 거쳐 가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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