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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평점 :
하루 중에 나는 자연을 얼마나 생각할까? 자연은 과연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할까?
자연의 색깔에 살던 나의 과거와 달리 현재 나는 잿빛 속에 살고 있다. 잿빛 속에서 자연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빠르게, 누구보다 부단히 움직이며 살아가느라 주변을 둘러볼 생각도 못한다.
주변엔 조그만 풀, 꽃, 나무가 있지만 나의 눈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이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햇빛이 나를 비출 때 잠깐 서서 따스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면 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냥 쉬고 싶다. 이렇게 잠깐 쉬는 것도 좋은데, 이들과 연결된 삶을 사는 건 어떨까?"
한병철은 정원에서 자연과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땅을 잊고 살았던, 땅을 알지 못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그는 자연을 느끼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식물이란 그가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체이다.
단순히 도구, 객체가 아닌 그들 나름대로의 삶도 있고 인간보다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표상을 볼 때, 그 겉모습만을 보고 지나칠 때가 많은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봄'이 아니다.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정보인 스투디움은 탐구와 관찰의 대상이지만 이는 외관에 그칠 뿐이다. 이에 반해 풍크툼은 외면의 정보를 주지 않고, '이를 통해' 생기는 관찰자의 마음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즉, 내면의 의미로서 보는 대상을 일컫는다. 우리가 여유 없이, 세상을 급급히 살아가는 이유는 내면의 의미인 풍크툼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멈춰 그들 속에 담긴 의미를 음미해보면 그들을 진정을 볼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을 텐데. 내가 그걸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질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함몰되는 것 같다.
조금 멈춰,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보고 주변의 세상을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닌 느껴보는 건 어떨까?
정원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다. 정원은 내가 멋대로 할 수 없는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모든 식물은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정원에서는 수많은 저만의 시간들이 교차한다. 가을 크로커스와 봄 크로커스는 모습은 비슷해도 시간감각이 전혀 다르다. 모든 식물이 매우 뚜렷한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 어쩌면 오늘날 어딘지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 부족한 인간보다 심지어 더욱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놀랍다 정원은 강렬한 시간체험을 가능케 한다.
정원에서 일하면 정원은 많은 것을 돌려준다. 내게는 존재와 시간을 준다. 불확실한 기다림, 꼭 필요한 참을성, 느린 성장이 특별한 시간감각을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