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 100세 철학자의 대표산문선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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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두 손으로 물을 밀어내면 밀려 나가는 물보다는 밀려들어오는 물이 더 많은 법이다. 외로움을 잊으려고 애쓰면 더 큰 외로움이 찾아들곤 한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어야 하나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수필집은 자주 읽는 것 같다. 사람은 다양한 결로 이뤄진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 하나로 평가하기 힘들다. 우린 인간을 호불호로 판단해 좋다, 안 좋다고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은 이렇게 단순한 존재가 절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절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우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이 우리를 알겠나?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을 평가할 땐 '쟤는 원래 저래. 어떻게 저러지? 이상하다' 등의 평가를 함부로 한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다양한 결의 존재인데 말이다. 수필이란 인간의 다양한 결을 보여주는 최고의 문학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의 엄청난 부분 중 일부분이라도 보여주는 문학이니깐. 수필이 없다면, 그 사람의 내면을 이렇게 알아보기란 아주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면 힘들 것이다.
그래서 수필이 나에겐 어려운 문학이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내면을 따라가기가 참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을 하나의 주제에 따라 순차적으로 말하기보단, 경험에 따른 생각을 흐름대로 적어가는 게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갈대와 같이 모든 꿈을 길 위에 뿌려놓았고, 앞으로 찾아올 삶의 파노라마를 무수히 그렸다가는 지우곤 했다. 그때부터 산길을 좋아했고 자연을 소요하는 습관을 떼어 놓을 수 없게 됐다.

이 책 역시 김형석 철학자의 생각이 듬뿍 담긴 그릇과 같은 책이다. 그가 약 100년을 살면서 경험한 후 느낀 삶, 죽음, 종교, 일상생활에 대한 생각을 적은 책이다.  갈대와 같이 모든 꿈을 길 위에 뿌려놓은 김형석 철학자. 그 꿈을 위해 걸으면서 어떤 삶은 살았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다. 철학자라는 생각에 엄청 딱딱한 문체의 글을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일상을 대화식으로, 이야기식으로 그가 경험을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으로 써 내려가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 사유의 깊이가 더욱 넓어지면,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내 생각의 책이 나오겠지. 이번 독일 여행은 글을 위한 여행이 될 듯싶다.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 생각을 담은 글로써. 아직 많이 부족하겠지만, 나 자신을 찾아보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책 중에서
성공에서 오는 행복과 즐거움은 인생을 끝낼 즈음의 노년기에 속하는 것이고,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는 무거운 짐을 진 고난의 역정이라고 곡해한다. 그러나 인생의 등산은 그렇지 않다. 한때 한때의 전진이 행복을 더해주며 계곡을 넘고 험준한 등성이들을 정복할 때의 즐거움은 더 값진 것이다. 기쁨에 기쁨을 더해가고 성취에서 오는 만족을 계속 쌓아가는 것이 인생의 길이다. 그 노력과 정진이 마침내 노년기의 영광과 명성도 얻게 해주는 것이다. 99의 고생 끝에 100의 만족과 영광이 오는 것이 아니라, 1에서 100까지 지속적인 기쁨과 행복을 차지하는 것이 인생의 등산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최후의 목표와 최고의 정상을 향하게 되며, 그 정상까지 즐겁게 등정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도중에 포기하거나 등산을 중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높이 올라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고 남보다 앞섰다고 자만할 바도 아니다.

진정한 자기발견은 자아의식에서 오며 그 자아의식은 문제의식에서 싹튼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어떤 문제를 갖고 사느냐가 어떤 인간이 되느냐이며, 어떤 문제를 해결 지었는가가 어떤 생애를 살았는가와 통한다. 우리가 젊은 지성인들에게 문제의 소유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생을 길게 반성해보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은 불행하며 보람도 적어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작더라도 선한 도움을 주면서 사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행복하며 감사한 인생을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정의의 표준이 어디에 있는가. 모스크바에 사는가, 워싱턴에 사는가에 있다. 평양에 사는가, 서울에 사는가에 있다. 자연은 아직 한 번도 지구에 줄을 그어준 일이 없다. 오히려 인간들이 만든 줄들을 거듭해서 지워주었을 뿐이다.
과연 나는 꼴찌인 어린이에게 상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자신 있는 교육자가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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