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 - 김치호 한국미술 에세이
김치호 지음 / 한길아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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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재능이 없는 나는 항상 예술을 짝사랑하기만 한다. 한 발짝 물러나 예술을 지켜볼 뿐이다. 예술가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들을 표현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나를 열광시킨다. 나 역시 언어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써 나를 표현하고 싶은 열망을 항상 갖고 있다. 예술은 언어가 보여주지 못하는 세상을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표현하기 위해선 자신을 알아야 한다. 예술은 개인이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을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모두를 다채롭게 할 것이다.

예술엔 수많은 분야가 있지만, 나는 그중 특히 미술을 흠모한다. 미술은 어떠한 예술보다 작가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농축된 언어로써 표현된다. 공간의 예술이라고 해야 할까? 미술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이 같다. 하지만 춤, 노래 등과 같은 시간의 예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되는 방식이나 내용이 달라진다. 공간의 예술인 미술 작품은 예술가가 시간의 흐름을 결정할 수 없다. 주어진 공간에 충실히 자신을 표현하면, 작가의 역할을 끝나게 된다. 그 후 감상 시간을 포함한 모든 것은 감상자가 결정한다.

작가가 작품에 자신을 얼마나 농축했는지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대가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기준이지 않을까?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을 떠올리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예술가가 있다. 하지만 자신을 충실히 반영하는 예술가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의 작품은 다른 누군가의 작품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는 그들만이 갖고 있는 고유성이다. 작품의 색채, 형태, 배치 등만 봐도 떠오르는 작가들이 자신의 고유성을 충실히 반영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감상자들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감상은 예술 작품 너머에 있는 작가의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을 충실히 반영하는 예술을 지향한다. 감상자로 수많은 작품을 만나면서, 예술가와의 만남을 이끄는 작품들이 몇몇 있었다. “작가는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작가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등 작품 너머의 것들이 떠오르는 작품 말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느낌을 준다. 더 나아가 작품 감상이 끝나고도 잔잔한 여운을 준다.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쇼 앞에서>는 감상자로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집은 책이다. 내가 지금껏 즐겨 감상한 미술 작품의 종류는 아니지만 작가의 감상 세계가 궁금했다.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쇼 앞에서>를 읽으니, 내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단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주로 여행 중에 찾는 비일상적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찾지 않는다. 또한 한국의 문화는 역사 시험을 준비할 때만 잠깐 암기하고 까먹어버리는 대상이었다. 그것들의 우수성, 독창성, 아름다움을 느껴본 경험이 전혀 없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 문화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만난 예술 작품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게 묘사됐다. 역사 시간에 겉절이로 배웠던 우리나라의 문화사를 진지하게 배우는 느낌이다. 문화사를 주로써 역사를 알아가는 느낌이랄까?


이 책엔 우리 문화재에 대한 묘사와 감상을 넘어 경제학자로서의 시선이 담겨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미술계의 세상을 알 수 있었다. 문화재의 외국 방출과 환수 문제, 미술품 수집과 감정, 미술품 시장에서의 짝퉁 문제, 경매 시장 상황 등 기존에 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작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한다.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탓인지 나 역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듯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선 영화 <테넷>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토르의 아내 캐서린은 미술품 감정사다. 그는 유명한 작가의 가품을 진품으로 잘못 감정하게 된다. 그로 인해 사토르에게 약점이 잡히고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가정을 유지하고 있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다. 미술품을 진품이라고 믿고 구매했는데 그것이 가품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진품을 가품으로 대체하는 것은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덫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미디어의 영향인지 미술품 거래하면 진위 여부 판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나라에도 미술품 진위 여부 논란이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30년째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911년에 미인도를 대중에 공개했는데 천경자 화백 본인이 직접 위작 의혹을 제기했다. 미인도는 자신의 작품이 아니란 것이다. 처음엔 ‘작가가 아니라면 아닌 거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미인도의 경제적 가치를 생각해 봤을 때, 소유자의 경제적 손실이 막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작가의 말만을 믿고 판단해선 안 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국내 기관의 감정 결과는 천경자 화백의 그림이 맞는다는 것이다. 감정은 진품인데, 작가는 가품이라고 주장하다니.

감정의 어려움에 대해 조선 후기 서화의 대감식안이었던 추사 김정희 "진정한 감정은 금강역사의 부릅뜬 눈과 혹독한 세무관리의 손으로 한 치 빈틈없이 무섭고 가혹하게 나아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라고 했다. 온 정신과 오감을 집중하여 눈에는 다이아몬드의 강기를 담아 작가의 손놀림은 물론이고 필획이 일으킨 바람의 흔들림까지 감지하는 섬세함을 갖추어야 하고, 판단의 엄격함은 세무관리의 냉혹한 손을 닮아야 한다는 뜻 일 것이다.

그 의미를 조금 확대하면, 감정은 진위의 차원을 넘어 작품에 생 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탄생의 비밀을 밝히고 살아온 이력을 살펴 잃어버린 존재의 가치를 복권하는 한편 위장된 생명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사형선고를 내려야 한다. 미술품의 복권 여부를 결정하는 감정은 마치 원인 모르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부검과 같다.

하지만 감정의 그 엄중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시대에 따라 많은 감정 결과가 가변적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적이 당혹스럽 게 한다. 새로운 자료와 감정 기법이 등장하고 인간의 지력이 진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변덕스러운 인간성 때문인지, 어제의 진품이’ 오늘은 가짜가 되고 어제의 가짜가 오늘은 진품으로 판정되지 표한다. 어쩌면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는 미술품 감정의 그런 무상함이 이 세계의 참모습이자 매력일지도 모른다.

감정에 얽힌 사변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감정 결과가 상거래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대단히 현실적이고 때로는 치명적이다. 정벌한 감정은 일차적으로 가짜의 범람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더불어 미술시장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함으로써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비효율과 사회적 비용나 줄인다. 즉 진위에 대한 정보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폭넓게 공유될수록 컬렉션이나 투자 목적의 거래에 수반되는 비용과 불확실성 더 최소화되고 나아가시자 구조의 안정화와 거래 규모의 확대는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확한 감정과 감정에 대한 신뢰는 시장을 안정시키는 닻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작품의 감정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경제 상품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가 없다면, 진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이 오로지 유희의 대상이면 진위 여부가 무엇인 중요한가? 어찌 됐건 그 작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 작품이 상품이 되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작품의 가격은 작품의 예술성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작가가 쌓아온 이력이 가격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즉, 예술 작품을 높은 가격에 사는 것은 그 작가의 이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다. 가품이 아무리 예술적으로 뛰어나도 그 작가의 이력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것처럼 미술품 시장에 가품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작가가 농담으로 던진 ‘가품의 존재가 감정 수준을 높이고 컬렉터들의 안목을 높이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이를 확인해 주는 말로 들렸다. 미술품 시장엔 가품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 감정의 수준과 안목을 높이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가품의 순기능을 존중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가품의 존재를 통해 이득을 얻는 것은 가품을 만들어낸 생산자밖에 없다. 도용된 작품의 작가, 컬렉터들을 어떻게든 피해를 보게 돼 있다. 이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이 책을 통해 컬렉션의 의미를 짚어 볼 수 있었다. 가수 탑이 생각난다. 가수 탑은 수익의 95%를 모두 미술품 구매에 사용한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비자금 수단으로 예술 작품을 활용하는 장면을 익히 봤기 때문에 탑 역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예술품은 투자재로서 효용 가치가 크지 않은 것 같다. 단순히 경제적 수익으로 컬렉션을 평가해선 안 된다. 그 예술작품이 주는 감성 역시 고려 대상이 돼야 한다. 그가 어떠한 이유로 컬렉션을 진행하는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오로지 세속적인 이유만으로 이를 바라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 작품의 가치는 작가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란 걸 절실히 느꼈다. 감상자들의 높은 평가도 중요하지만 누가 갖고 있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컬렉터들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작품을 소유한 사람이 예술에 대단한 안목을 갖고 우수한 작품을 수집해 온 사람이라면, 그것의 가치는 올라간다. 김치호 작가가 말한 것처럼 아름답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됐기 때문에 아름다운 작품이 존재한다는 말이 확 와닿는다. 탑이 소더비 경매에서 큐레이팅 한 작품들이 약 190억 원에 거래됐다고 하는데, 그는 높은 안목을 지닌 컬렉터로 평가받겠지?

아름다움으로 가는 여정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또 다른 길이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얼마간의 위험도 따르겠으나, 예상치 못한 행운과 보상이 함께한다. 그 여정은 포장되지 않고 안내판도 없는 거친 시골길을 가는 것이어서, 때로는 차가 전복되고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 대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아름다움이 발견되고 긴장감이 감돈다. 컬렉션을 컬렉션답게 하는 영감이 떠오르고 에너지가 솟 아나는 것이다 남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기존 관행을 변화시키는 컬렉션, 그것은 바로 ‘창작하는 컬렉션’이다.

창작하는 컬렉션은 작품의 가치를 직관하는 안목에서 시작된다. 안목은 컬렉터를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의 세계로 안내하는 무언의 힘이다. 창의적인 관점으로 된 잠재된 아름다움을 찾아 읽는 통찰력이다. 그 세계에서는 아름다운 작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작품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작품을 보는 관점이 열리고 통찰력이 더해지면 컬렉션은 물건의 단순한 집합체에서 유기적인 창작체가 된다. 아름다타 보는 새로운 가치체계가 열리고 묻혀 있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곳에는 조화와 통일감이 있고,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하는 질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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