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어려움에 대해 조선 후기 서화의 대감식안이었던 추사 김정희 "진정한 감정은 금강역사의 부릅뜬 눈과 혹독한 세무관리의 손으로 한 치 빈틈없이 무섭고 가혹하게 나아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라고 했다. 온 정신과 오감을 집중하여 눈에는 다이아몬드의 강기를 담아 작가의 손놀림은 물론이고 필획이 일으킨 바람의 흔들림까지 감지하는 섬세함을 갖추어야 하고, 판단의 엄격함은 세무관리의 냉혹한 손을 닮아야 한다는 뜻 일 것이다.
그 의미를 조금 확대하면, 감정은 진위의 차원을 넘어 작품에 생 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탄생의 비밀을 밝히고 살아온 이력을 살펴 잃어버린 존재의 가치를 복권하는 한편 위장된 생명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사형선고를 내려야 한다. 미술품의 복권 여부를 결정하는 감정은 마치 원인 모르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부검과 같다.
하지만 감정의 그 엄중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시대에 따라 많은 감정 결과가 가변적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적이 당혹스럽 게 한다. 새로운 자료와 감정 기법이 등장하고 인간의 지력이 진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변덕스러운 인간성 때문인지, 어제의 진품이’ 오늘은 가짜가 되고 어제의 가짜가 오늘은 진품으로 판정되지 표한다. 어쩌면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는 미술품 감정의 그런 무상함이 이 세계의 참모습이자 매력일지도 모른다.
감정에 얽힌 사변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감정 결과가 상거래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대단히 현실적이고 때로는 치명적이다. 정벌한 감정은 일차적으로 가짜의 범람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더불어 미술시장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함으로써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비효율과 사회적 비용나 줄인다. 즉 진위에 대한 정보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폭넓게 공유될수록 컬렉션이나 투자 목적의 거래에 수반되는 비용과 불확실성 더 최소화되고 나아가시자 구조의 안정화와 거래 규모의 확대는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확한 감정과 감정에 대한 신뢰는 시장을 안정시키는 닻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작품의 감정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경제 상품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가 없다면, 진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이 오로지 유희의 대상이면 진위 여부가 무엇인 중요한가? 어찌 됐건 그 작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 작품이 상품이 되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작품의 가격은 작품의 예술성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작가가 쌓아온 이력이 가격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즉, 예술 작품을 높은 가격에 사는 것은 그 작가의 이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다. 가품이 아무리 예술적으로 뛰어나도 그 작가의 이력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것처럼 미술품 시장에 가품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작가가 농담으로 던진 ‘가품의 존재가 감정 수준을 높이고 컬렉터들의 안목을 높이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이를 확인해 주는 말로 들렸다. 미술품 시장엔 가품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 감정의 수준과 안목을 높이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가품의 순기능을 존중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가품의 존재를 통해 이득을 얻는 것은 가품을 만들어낸 생산자밖에 없다. 도용된 작품의 작가, 컬렉터들을 어떻게든 피해를 보게 돼 있다. 이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이 책을 통해 컬렉션의 의미를 짚어 볼 수 있었다. 가수 탑이 생각난다. 가수 탑은 수익의 95%를 모두 미술품 구매에 사용한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비자금 수단으로 예술 작품을 활용하는 장면을 익히 봤기 때문에 탑 역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예술품은 투자재로서 효용 가치가 크지 않은 것 같다. 단순히 경제적 수익으로 컬렉션을 평가해선 안 된다. 그 예술작품이 주는 감성 역시 고려 대상이 돼야 한다. 그가 어떠한 이유로 컬렉션을 진행하는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오로지 세속적인 이유만으로 이를 바라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