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는 우리 눈에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문화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연구를 담은 책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문화는 없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특히 책의 저자 마비 해리스는 문화가 형성된 원인을 정신 등과 같은 추상적 대상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형이상학적으로 문화 현상을 분석하는 것을 거부하며, 실재적 대상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분석한다.
문화의 원인을 찾기 위해선 끊임없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 문화의 외관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왜’와 ‘어떻게’를 꾸준히 물어야 한다. 이 책 역시 단순 현상으로 그칠 수 있는 문화 현상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마빈 해리스는 질문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 책에서 다루며 이를 문화의 수수께끼라고 부르고 있다.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숭배할까? 이슬람 민족은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까? 뉴기니 원주민들이 화물 숭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 차별이 생겨난 이유가 무엇일까? 중세 시대에 마녀사냥은 왜 성행했을까?’ 등과 같은 수수께끼가 이 책에서 풀어진다.
특히 암소 숭배와 마녀사냥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왜 인도인들은 굶어죽으면서까지 암소를 숭배하는가? 암소의 수가 필요에 비해 엄청 많고 많은 목초지를 파괴하는데도 이를 방치해두는 것은 외부인의 시선에선 비합리적이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지금 존재하는 소의 수를 줄인 후 그것들을 제대로 키우면 같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 환경파괴도 덜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 소유의 소를 가장 먼저 줄일까? 마빈 해리스는 부자들의 소가 아닌 빈자들의 소가 그 대상이 될 것이라 말한다. 현재처럼 소의 개체를 조절하지 않고 숭배하는 것은 부의 분배 기능을 하는 것이다. 또한 농경 사회에서 소는 노동력의 중요한 일부다. 기아로 인해 소를 잡아먹으면, 다음 농사는 소의 부재로 인해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기아로 굶주리면서 소를 잡아먹는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인도인들은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를 신성시하는 집단 문화를 만들어,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는 장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암소 숭배는 인간의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낭비나 나태가 들어설 여지가 전혀 없는 저 에너지 생태계 속에서 인간이 지속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현재 마르고 여윈 것들이지만, 조금은 쓸모가 있는 짐승들을 보존함으로써, 에너지 소비적인 쇠고기 산업을 억제함으로써, 공공 구역에서 혹은 주인의 비용으로 살찐 소를 보호함으로써, 한발이나 기근이 들 때에도 소가 지니고 있는 회복 능력을 보존함으로써, 암소 숭배는 인간 집단이 환경에 대한 탄력 있는 적응력을 지닐 수 있게 이바지하고 있다.
지금 보면 마녀 화형이 잔인하고 비정상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이 기독교를 견고히 하기 위해 마련된 수단이란 걸 아니 비정상적인 문화라고만 평가할 것이 아니다. 중세가 후반기로 나아가고 있을 때, 기독교의 부패는 지극히 심각했다. 많은 사제들이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부패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의 종교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무너진 신뢰를 쌓고, 공동체를 견고히 했어야 했다. 그래서 외부의 적을 만든 것이다. 악마와 계약을 하는 마녀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듦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더욱 의존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한 개인이 마녀로 잡혀 들어오면, 그들은 다른 마녀의 존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들은 고문을 통해 자신이 마녀임을 자백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마녀로 몰고 간다. 이는 백성들이 서로를 불신하도록 해 종교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방지했다. 즉, 백성들이 맹목적으로 종교에 의존하고 서로를 불신하게 하기 위해 마녀 화형이 활용된 것이다. 종교는 백성들에게 이러한 마녀들의 농간에서 벗어나게 해줄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란 확 심을 심어주기만 하면 됐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넘쳐났지만,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서 개인의 희생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마녀 광란은 ‘결함이 있는 제도의 구조적 반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반대로 그 제도적 구조를 방어하는 필수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이 점은 그 당시 마녀 광란의 안티 테제를 이루었던 전투적 메시아니즘과 마녀 광란을 비교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전투적 메시아니즘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들을 다 합 시켰다. 전투적 메시아니즘은 그들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집단 소명감을 주었고 서로 형제자매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사상은 유럽 전역의 대중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그들의 에 너지를 특정 시간과 특정 장소로 집중시켜 무산 영세 대중과 사회의 정상에 있는 자들의 대결을 유도했다.
이와 반대로 마녀 광란은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잠재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마녀 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들의 저항운동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이웃끼리 서로 싸우게 하며 모든 사람을 소외시 키고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불신을 고조시켰고 무기력하게 했다. 그 결과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했으며 단순한 지역적인 문제에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좌절하게 했다.
이 책을 통해 타문화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상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좋고, 나쁘다.’ 등의 평가는 당연히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껏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했다. ‘왜 내가 좋게 평가하는지. 그 대상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내가 나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묻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문화를 자연화했던 것 같다. 문화가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품어야겠다. 또한 그 속에서 그것의 토대가 된 합리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이 나라는 이러한 문화를 갖고 있대. 우리와 다르지.’와 같은 감상이나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을 샅샅이 탐구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마지막 장에 작가는 반문화 주의로 대변되는 히피 문화를 비판한다. 그들이 정신적이고 형이상적인 대상에서만 행위의 이유를 찾는다는 것이 주요 논지다. 난 마빈 해리스가 갑자기 왜 이러한 비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이는 어떠한 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히피들이 실재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대상에서 행위의 이유를 찾으려 하는 이유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그들이 이러한 문화를 갖게 됐는지, 지금껏 자신이 보여준 사례들처럼 유물론적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활 양 식의 배경에 감춰진 원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간과되었던 주된 이유는 모든 사람이 그 대답은 신밖에 모른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여러 관습과 제도가 그토록 신비스럽게 보였던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문화의 여러 현상을 철저하게 물질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정신화'해 설명하는 것에 더욱 큰 가치를 두도록 교육받아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면밀히 고찰한 각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들이 실제 주위 환경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