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코로나야, 이제 그만 좀 지구를 떠나려무나. 저녁으로 봉피양 방이점에서 평양냉면 든든하게 때리고, 올림픽공원 경기장에 공연 보러 가고싶다.

평양냉면 순수주의를 고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평양냉면 가게들 중 이곳만 진짜!"라고 강요하듯 단언하는 평양냉면러가 혹시 있다면 이 글을 바친다. 아니, 평양에서도 집집마다 냉면 만드는 스타일이 다 달랐을 테고, 그것이 서울까지 내려와서 수십 년 세월 변주의 과정을 거쳤는데, 어떻게 오직 하나의 집만이 정도(定道)일 수 있느냐는 반문이다.
한국만 아니라 중국, 일본의 냉면집까지 다 둘러보고, 심지어 평양냉면집을 직접 경영하고 있는박찬일 셰프의 결론도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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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문학동네 시인선 97
권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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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한권씩 더 읽어나갈 때마다 완독이라고 내가 판정(?) 하는 시간대가 점점 늦어진다. 시인의 스타일이나 시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특히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는 시선이 특이했을 뿐, 어휘들 자체는 우리네가 쓰는 일상적인 어휘들의 집합체였다. 그럼 뭘까. 뭐가 시집 읽기의 속도를 늦출까.

그건 바로 음미다. 한 문장마다, 연 마다 멈추어 그 단어가 다른 단어가 아니라 거기 들어간 것에 놀라워하고, 유추해 보고, 납득이 되는것도 아닌것 생각도 정리해보고, 소리도 내보고, 손글씨로도 써본다. 앞으로 나가는가 싶다가 공통된 주제나 시어가 보이면 다시 돌아가 이전에 읽은시를 또 음미한다.

이번 시집은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회고, 후회스런 마음이 뻔할 수 있는 철쭉꽃과 노을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사유하다가 표출된다. 때로는 잔치 라는 단어의 역설로서도, 허공을 살다 하는 말을 이리저리 뒤집어 깊게 생각하면서도.

불교와 불교유적지에 영감을 받은 시도 제법 보였는데 3 편에 걸쳐 표현된 벽화에 대한 상상력 (돌이 거쳐온 역사를 그야말로 의인화처럼 바라본 각도)이 꽤 신선해서 즐기며 읽었다)

시집 제목만 보면 여름이야기만 있을것 같지만 가을도, 겨울도 있다. 그리고 계절불문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고찰도 많다.

시집이니만큼 내가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몇개 나누겠다.

🔖📖 (66쪽)
투병을 하던 엄마가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세상에 들였던 자기 자리를 거두는데
어찌 안 아플 수가 있니
어떻게 흔적도 없이 갈 수가 있겠니저 노을처럼 말야
엄마의 눈가에 노을이 펄럭였다.

[노을] 중

🔖📖 (54쪽)
칠 년 만에 땅 속에서 나와 7일만 살면서오직 사랑을 찾기 위해 울던 매미. 당신은 그토록 간절하던당신을 만났는가.
등줄기에 후줄근하게 땀이 흘렀다. 나도 녹아가고 있었다. 여름의 눈사람처럼 있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 백일홍을 심었는데 백일홍도 그만 져버리고 말았다.

출근하는데 죽은 매미가 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화무십일홍] 중

🔖📖 (36쪽)

억만 톤의 돌바다를 헤엄치다.
억만 겁의 미련과 그리움을 안고
망부석이 되는 것

[벽화 2]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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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 조용히 처박혀 박선하의 사연을 기사로 정리했다. 200자 원고지 4.8매에 꾹꾹 눌러 담았다. 김성혁의 지시대로 5매를 넘기지 않기 위해 부사와 형용사는 모조리 뺐다.
기사 입력은 컴퓨터로 하는데 왜 늘 지시는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하는 걸까. 예전엔 실제 200자 원고지에 펜으로 기사를 써서 신문사로 들고 오거나 팩스를 넣었다는선배들의 설명에도 ‘5매‘ 8매‘ 식의 지시는 어색하기 짝이없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원고지 자체를 만져본 적이 없지않은가. 피라미 기자인 나에게 신문사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관행이 많았다. - P21

아, 자기 건강 비결도 얘기해줬어요."
"건강 비결요? 뭐랍니까?"
민위록 얘기가 시작된 뒤 내가 처음으로 뱉은 질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그가 대체 어떤 건강 비결을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인지 도무지 묻지 않을수 없었다.
"토끼 고기, 토끼 고기를 좋아해서 많이 잡아먹었대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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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람들이 ‘국가‘나 ‘국익‘이라는 큰 이야기‘로 회수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큰 이야기 (오른쪽이든 왼쪽이든)에 맞서 그 이야기를 상대화할 다양한 작은 이야기‘를 계속 내놓는 것이며, 그것이 결과적으로그 나라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 P25

왜일까요어려운 질문이네요. 다들 무책임하고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특별히 제가 남들보다 사회성이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주변 사람들이 사회성이 적다는 생각은들어요 (....) 영화를 만들면서 깨닫게 되는 건 슬퍼하는 것보다 분노하는게더 강할 수 있고, 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훨씬 더 넓어질수 있다, 확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 P237

아주 본질적인  이야기이므로 비판을 각오하고 굳이 쓰겠습니다만, 이 작품을 본 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감상을 가질지에 대해 저는 일절 책임질 생각이 없습니다. ‘책임질 수 있다‘고 하는 창작자가 있다면 그쪽이 훨씬 위험하며 오만하겠지요. 표현이란 그런 것입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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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 : 내가 사랑하는 빨강 띵 시리즈 8
허윤선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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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훠궈 이야기만 하는, 지인들에게 ‘훠선생‘ 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한 훠궈 찐덕후의 에세이. 이렇게 제목과 소재에 충실한 에세이,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그래서 매우 더위를 많이 타는데도 불구하고 불타오르는 냄비 속 홍탕백탕이 아른거리는 이 책을 거의 집자마자 한자리에서 다 읽었다.

저자의 훠궈사랑이 ˝찐˝ 이라고 느껴졌던건, 그 사랑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훠궈나 마라탕이 유행하기 훨씬 전에, 이런 요리집의 이름에 ˝샤브샤브˝ 가 붙어있을때부터 함께먹을 파티원을 구해서 원정을 다녔다면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 작고 얇은 책은 훠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폭풍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단순 공감말고도 꽤 유익한 정보도 많다. 유명 훠궈 프랜차이즈 하이디라오 (페이커 선수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이라고 말하는!) 의 2020년도 다이어리에 50만원어치의 가치를 하는 쿠폰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친절한 저자는 무려 그 쿠폰의 모든 종류와 tpo 혹은 동행인원법 활용법까지 장장 5-6쪽을 할애해서 알려준다. 단골 하이디라오 와 불이아 지점의 끌팁전수해주는 직원들 얘기하며, 건대앞에 있는 천러마트 (NCT 멤버가 장을봐서 그 멤버 이름딴 명칭으로 자주 불린다는) 에서 훠궈자재 쇼핑 꿀팁 얘기까지. 뭐하나 쓸모없는게 없다. 잡지 에디터라는 직업이 살아나는 필력과 기획력에 가독성좋고 정보도 충실해서 어떤 에세이보다도 주제에 충실한 책이 탄생했다.

단, 부작용이 하나 있다. 해외출장을 자주다니며 훠궈의 고장 홍콩에서 백종원 아저씨처럼 ˝스트리트 푸드 파이팅˝ 을 해온 저자의 맛깔나는 이야기를 읽고있다가 홍콩이 무척 가고싶어질거라는 점이다. 친절하게 홍콩과 마카오의 맛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적혀있어 갈증이 더 난다. 여행가고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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