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인간혐오자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5
몰리에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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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활동했던 장 라신, 피에르 코르네유, 몰리에르 이 세 명은 프랑스 3대 고전 극작가다. 그중 몰리에르는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표현할 만큼 프랑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극작가이며, 그는 프랑스 고전 희곡의 완성자라 불린다.

당시 희극은 오락거리로 취급되던 하위 장르였지만, 몰리에르는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냄으로써 희극의 위치를 끌어올렸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파격과 논란을 몰고 다니는 문제적 작가로 찍히기도 했었다. 『인간혐오자』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희극이라 느껴진다.

1966년에 초연 된 『인간혐오자』는 인간 본성에 대해 지나친 불신과 혐오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절대로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알세스트가 주인공이다.

알세스트 내가 바라는 거? 나는 이성과 정당성 그리고 공정을 원한다니까! p.20

알세스트 생각하는 걸 숨기지 못하는 사람은 궁정에서 견딜 재간이 없어요. p.90

알세스트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진짜 늑대로 살아야 하거든. p.120

셀러멘 도움이 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굳이 불이익을 받을 필요는 없잖아요. 도움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받을 수 있지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지면 문제가 생겨요. p.47

필랭트 모두가 정직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모두가 정직하고 정의롭고 온순하다면 대부분의 미덕은 쓸데없겠지. 왜냐하면 미덕이라는 건 타인의 불의가 우리의 권리를 파고들 때 우리가 꼿꼿하게 감내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거거든. p.122

알세스트는 이성과 정당성, 공정을 외치며 마음에 없는 소리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알세스트의 대사를 읽으면 어떤 면에서 불편한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요즘 말하는 사이다 같은 표현을 쓰지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교만함이 느껴진다.

셀러멘은 자신에게 구애를 하는 남자에게 친절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사랑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는 알세스트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상이다. 셀러멘은 자기 앞에 없는 사람에 대해선 거침없이 험담을 한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에 대해 험담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녀의 캐릭터가 참 놀랍다.

알세스트는 그런 셀러멘을 사랑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가장 싫어하는 인물상을 사랑하는 자신에게 사랑은 그럴 수 있다는 모순된 잣대를 들이댄다.

알세스트의 친구 필랭트는 상황에 따라 하얀 거짓말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둥글게 살려고 하는 입장이다. 필랭트는 지금 태어났어도 사회생활을 참 잘 해나갈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혐오자』는 대사에서 인물의 성격을 굉장히 세심하게 묘사했다.

이 희곡을 극장에 올렸을 때 장소의 변화는 거의 없이 인물의 대사만으로도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7세기 프랑스 사회는 귀족 계급의 사교계가 '살롱'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던 시기다. '살롱'에 모인 귀족이 모두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교계에 모인 사람은 없는 다른 사람을 헐뜯으며, 공감을 한다. 몰리에르는 사교계 모임에 오는 귀족들을 풍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참 재미있게 읽은 희곡이다.

읽으며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다. 이 책으로 독서 토론을 한다면 참 재미있는 토론이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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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스 - 욕망의 세계
단요 지음 / 마카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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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스』의 작가 단요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람 한 명과 함께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 사람이 사람이라서 생기는 이야기들을 즐겨 쓴다. 청소년 성장소설 『다이브』를 썼다.

인버스(inverse)의 사전적 의미는 논리학의 '이', 함수에서의 역원 또는 역함수의 뜻을 갖는다.

뭔가 반대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 책의 제목에 쓰인 인버스는 무엇일까?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이 된다면 내 행복은 나쁜 걸까?"

인버스 ETF

주식 관련 장내 외 파생상품 투자 및 증권차입매도 등을 통해 기초지수(KOSPI 200지수)의 일일 변동률(일별 수익률)을 음의 1배수 즉, 역방향으로 추적하는 ETF를 말한다. 예를 들어, KOSPI 200지수가 1% 상승할 경우 인버스 ETF는 마이너스 1% 수익률, 반대로 KOSPI 200 지수가 1% 하락 시 인버스 ETF는 플러스 1%의 수익률을 목표로 운영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버스 ETF (매일경제, 매경닷컴)

소설 『인버스』의 주인공은 스물세 살의 여자다.

넉넉지 못한 형편의 주인공은 수능을 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첫 월급으로 130만 원을 받는다. 부모님께 10만 원씩을 드리고 나자 남은 돈은 110만 원. 3월까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대학 등록금과 원룸 보증금을 충당하기엔 빠듯하다. 돈이 필요했던 그녀는 고액 알바 게시글을 보고 면접을 보러 갔지만 그곳은 성매매 업소였다.

면접 장소를 돌아 나오며, 스무 살짜리 여자애가 큰돈을 벌려면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는 새삼스러운 진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감당하기에 벅찬 위험이 필요한 일 말고, 합법적이면서 객관적인 지표와 흐름이 있어 보이는 그것, 주식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해외선물 계좌를 만들었다. 선물은 초고위험 파생상품이었지만, 주식과는 달리 오르든 내리든 돈 나올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고, 처음에는 꽤 잘 벌었다.

500만 원으로 적응 기간 동안 3000만 원을 만들었고, 일 학년 중간고사를 마치자마자 학교엔 가지고 않고, 원룸에서 해외선물 매매에 매달렸다.

경제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었지만,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기막히게 잘 맞췄고, 특유의 재치와 글솜씨를 통해 블로그를 운영하며 유명세를 끌기도 했다. 500만 원으로 시작한 계좌는 4억 8,000만 원까지 불어나 있었다. 하지만, 4억 8,000만 원이 1억 원이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다섯 시간.

사람은 환희에 매혹되는 만큼 분노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한껏 불타오른 뒤에 찾아오는 소강상태는 더없이 절망적이면서도 평안하기 때문이다. p.78

파멸이 내 머리 위를 스쳐 가서 다른 누군가를 겨누는 순간, 불안과 희열이 뒤섞이고 분노는 스릴의 다른 이름이 된다. p.79

그러니 셋이다.

불행을 천벌이라 믿고 함께 죄인을 벌하려는 부류, 그걸 가십으로만 대하는 부류, 남이야 어떻건 돈 생각만 앞세우는 부류, 그 셋 사이에 어떤 도덕적 우열이 있을지가 궁금했다. p.85

가리키는 대로 세계가 움직여 가는 상황은 효능감 이상의 전능감을 가져다줬다. 하늘에 떠올라 저 아래의 나라들을 조감하는 느낌. p.93

선물에서 나의 수익은 남의 손해라는 걸 알지만, 내가 수익을 내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자신과 사회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자신의 사이에 묘한 괴리감을 느낀다.

전능감을 느끼며 돈을 벌어보기도 했던 그녀는 돈을 다 잃고 집으로 들어와 생각한다. 스물셋의 나이에 퇴학을 당했고, 돈도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녀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먼 옛날 사람들이 천국에 닿는 탑을 지으려 하자 천벌이 내려와 탑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각각의 삶이 거기서 끝났을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폐허에 남은 벽돌을 주워 그럭저럭 안락한 집을 세웠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계속 탑을 쌓았을 것이다. 무너지고 무너지더라도, 혼자만 남아도, 얼간이 취급을 받아도, 계속.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처음에 바란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은 채 벽돌만을 옮기다 그만 죽어 버렸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삶을 잘 안다.

intro p.7

그녀는 생각했다. 처음에 바라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바라왔던 건 지방 신도시에 어머니를 모시고 살 아파트 하나였다.

250쪽이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을 만큼 몰입감이 좋아 언제 읽었는지도 모르게 끝이 나는 소설이다.

다만, 롤러코스터와 같은 주인공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니 마지막 부분이 너무 밋밋하게 느껴져 '정말 이게 끝인가?'라고 생각하며 남은 책장을 다시 보게 됐다. 끝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몰입감 만큼은 최고였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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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첫 유럽 미술관 여행 우리 아이 첫 유럽 미술관 여행
송지현 지음 / 리얼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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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메가스터디 초등교육부 담임교사를 교육하는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미술 비전공자인 작가 송지현은 미술을 좋아하는 두 딸아이와 함께 유럽 미술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는 만큼 보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여행 전 엄마표 유럽 미술여행 워크북을 제작했고, 두 딸과 38박 39일 동안 워크북에 수록된 워크지와 미션지를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서 체험 다운 체험을 만족도 높은 유럽 미술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아이 첫 유럽 미술관 여행』에는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한 워크북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책에는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이렇게 유럽 5개국의 미술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외에 아이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항공권과 숙소 예매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미술관 여행을 위해 나라별로 뮤지엄 패스는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여행에 꼭 필요한 아이템과 다운로드해가면 좋을 앱, 여행을 떠나기 전 참고하기 좋은 영화, 도서와 TV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장이 있다.

유럽 5개국에 있는 나라마다 꼭 가봐야 할 미술관과 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작품, 그 작품에 대한 설명과 감상 포인트, 비교해 보면 좋은 작품 등을 수록되어 있고, 각 미술관의 첫 장에는 관람 동선을 추천하는 페이지도 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면 지겨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우리 아이 첫 유럽 미술관 여행』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책이라 작품 하나당 한 페이지만을 할애하고 있다.

미술사를 전공했거나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는 책이지만, 미술을 잘 모르는 나와 같은 엄마가 아이와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미술관을 이렇게도 즐길 수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루브르 박물관 어떤 그림 앞에 털썩 주저 앉아 앞의 그림을 보며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문을 닫는 시간까지 그림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한 작품을 며칠씩 즐길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다녀왔다는 건 유명한 그림이나 유물을 보고 오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녀가 박물관을 즐기는 방법은 꽤나 신선했다. 그녀를 본 후 내가 박물관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책을 보며 아이와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을 하나 더 배웠다. 초등 2학년과 5학년, 딸아이 둘과 첫 유럽 미술관 여행을 준비하며 작가는 수많은 작품 중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핵심 내용을 정리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손수 만든 워크북으로 아이 둘과 건강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이렇게 책을 낸 그녀의 진심과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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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궁그미를 위한 수학 열두 살 궁그미를 위한 과학 시리즈 2
린 허긴스 쿠퍼 지음, 알렉스 포스터 그림, 이창희 옮김 / 니케주니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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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궁그미를 위한 수학』의 지은이 린 허긴스 쿠퍼는 학부모와 자녀를 위한 교육 출판물을 80권 넘게 저술한 여류 작가다. 그녀는 영국의 교육 주간 잡지인 TES를 포함해 유아교육 관련 잡지에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수학이란 과목을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열두 살을 위한 책이면 우리나라에선 중학교 입학하는 친구들이 볼 만한 책이라는 건데, 어떤 내용이 있을까?

책은 수, 놀라운 수, 도형, 측정, 수학과 과학, 수학의 스타들 이렇게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엔 부록으로 용어 풀이가 수록되어 있다.

수학이란 무엇인가요?

수학은 도형, 수량, 유형(패턴) 및 배열(정렬) 등을 다루는 학문이에요. 수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지요.

p.6

아이와 수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수학을 왜 공부해요?"이다. 어릴 적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잔돈을 거슬러 받는데만 필요할 것 같은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할까? 특히나 사춘기의 절정인 중등 아이들에게 수학이 왜 필요한지 이해시키는 건 쉽지 않다.

책은 1장에서 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2장에서 놀라운 수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실생활에 쓰이는 디자인이나 무늬를 수학과 연관시킨다. 3장 도형과 4장 측정은 초등학교 때 배웠던 것을 그냥 잘 정리해 두었다.

사실 1~4장에서는 책의 매력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5장과 6장을 보고 나니 왜 이 책의 제목이 『열두 살 궁그미를 위한 수학』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5장은 수학과 과학의 연결성에 대해 쓰여있고, 일상생활에서 수학은 어떻게 쓰이는지도 자세히 설명해 두었다. 전염병을 예측하는데, 수술을 하기 전, 일기 예보, 지진 등…. 수학은 우리 생활에서 여러 분야에 사용되고 있다는 걸 잘 설명해두었다.

6장은 수학의 스타들로 기원전 500년경에 활동했던 피타고라스부터 현재 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테렌스 타오, 펀 이벳 헌트까지 많은 수학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 수학과 우주 연구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겼던 캐서린 존슨, '세계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수학자'로 알려진 존 호턴 콘웨이, 혼돈이론의 선구자였던 여성 수학자 메리 카트라이트 등 모르던 수학자를 알 수 있어 좋았다.

5장에 나오는 직업에 관심이 있는 중학생이라면 이 책을 보며 수학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고, 6장은 '수학자 조사해오기'라는 수행평가가 있다면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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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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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는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대가이자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선구자라 불린다.


1843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제네바, 런던, 파리, 볼로냐 등지에서 자랐다. 1862년 하버드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문학에 뜻을 두고 있던 그는 20대 중반에 이미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단편 소설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묘비에 '대서양 양편의 한 세대를 해석해 낸 사람'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을 만큼 헨리 제임스는 문학 인생 전반에 걸쳐 구세계 유럽과 신세계 미국의 충돌이라는 국제적 주제를 다루며, 신구 문화의 갈등을 극복하는 더 나은 삶과 문명을 모색했던 작가다.


『나사의 회전』은 크리스마스에 저택에 모여 괴담을 나누는 사람 중 하나가 서문을 이끈다. 그는 더글라스를 좌중에게 소개하고, 더글라스는 자기가 알고 있는 괴담이야말로 진짜 오싹한 이야기라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문이 끝날 때 즈음 더글라스는 이야기 원고를 좌중에게 읽어주기 시작한다.


원고 속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가정교사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가정교사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소설에서는 시점이 바뀌는 부분이 있지만,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이런 순간에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그건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내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짧았을 수도 있다. 테라스와 주변 전체, 잔디와 그 너머의 정원, 그리고 공원까지 내 눈이 닿는 모든 공간에 짙은 공허가 감돌았다. p.55


이야기의 주인공 가정교사가 유령을 처음 봤을 때를 묘사한 부분이다. 괴담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분위기에 따라 더 무섭게 느껴지는데, 작가 헨리 제임스는 이런 묘사를 기가 막히게 했다.


내가 바라는 것도 어떻게 해서든 유령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유령을 다시 만난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했다. 우리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유령과 맞닥뜨리는 상황에 점점 익숙해질 것이며, 결국은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점을 그녀에게 강조했다. p.87


하지만 내가 격앙된 감정을 터트리며 자신만만하게 그들의 방문을 아는 체하지 못했던 것은 그렇게 했을 때의 피해가 그 상황을 모른 척했을 때의 피해보다 클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p.130


원고 속 가정교사는 유령을 보고, 아이들도 당연히 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령을 직접 보거나 상대한 사람은 가정교사 한 명뿐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이 든다. '정말 유령이 있었을까?', '가정교사가 보고 느낀 것이 사실일까?', '혹시 정신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이야기의 초반엔 가정교사의 시점에서 따라갔지만, 이야기의 끝을 향할수록 의구심이 들었다. 책에는 끔찍한 장면을 묘사한 곳은 없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를 압도한다. 내가 알고 있고,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나에게만 열리는 다른 차원을 경험하는 듯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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