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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ㅣ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평점 :
헨리 제임스는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대가이자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선구자라 불린다.
1843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제네바, 런던, 파리, 볼로냐 등지에서 자랐다. 1862년 하버드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문학에 뜻을 두고 있던 그는 20대 중반에 이미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단편 소설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묘비에 '대서양 양편의 한 세대를 해석해 낸 사람'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을 만큼 헨리 제임스는 문학 인생 전반에 걸쳐 구세계 유럽과 신세계 미국의 충돌이라는 국제적 주제를 다루며, 신구 문화의 갈등을 극복하는 더 나은 삶과 문명을 모색했던 작가다.
『나사의 회전』은 크리스마스에 저택에 모여 괴담을 나누는 사람 중 하나가 서문을 이끈다. 그는 더글라스를 좌중에게 소개하고, 더글라스는 자기가 알고 있는 괴담이야말로 진짜 오싹한 이야기라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문이 끝날 때 즈음 더글라스는 이야기 원고를 좌중에게 읽어주기 시작한다.
원고 속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가정교사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가정교사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소설에서는 시점이 바뀌는 부분이 있지만,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이런 순간에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그건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내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짧았을 수도 있다. 테라스와 주변 전체, 잔디와 그 너머의 정원, 그리고 공원까지 내 눈이 닿는 모든 공간에 짙은 공허가 감돌았다. p.55
이야기의 주인공 가정교사가 유령을 처음 봤을 때를 묘사한 부분이다. 괴담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분위기에 따라 더 무섭게 느껴지는데, 작가 헨리 제임스는 이런 묘사를 기가 막히게 했다.
내가 바라는 것도 어떻게 해서든 유령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유령을 다시 만난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했다. 우리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유령과 맞닥뜨리는 상황에 점점 익숙해질 것이며, 결국은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점을 그녀에게 강조했다. p.87
하지만 내가 격앙된 감정을 터트리며 자신만만하게 그들의 방문을 아는 체하지 못했던 것은 그렇게 했을 때의 피해가 그 상황을 모른 척했을 때의 피해보다 클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p.130
원고 속 가정교사는 유령을 보고, 아이들도 당연히 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령을 직접 보거나 상대한 사람은 가정교사 한 명뿐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이 든다. '정말 유령이 있었을까?', '가정교사가 보고 느낀 것이 사실일까?', '혹시 정신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이야기의 초반엔 가정교사의 시점에서 따라갔지만, 이야기의 끝을 향할수록 의구심이 들었다. 책에는 끔찍한 장면을 묘사한 곳은 없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를 압도한다. 내가 알고 있고,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나에게만 열리는 다른 차원을 경험하는 듯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