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경복궁 - 궁궐의 전각 뒤에 숨은 이야기
정표채 지음 / 리얼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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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표채는 단국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공주대학교 문화유산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고적답사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고, 2000년부터 나의 문화유산 답사(Daum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궁궐 지킴이'로서 15년간 경복궁에서 해설 활동 중이다. 그는 15년간 해설 활동을 하며 얻은 경험을 토대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경복궁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 권으로 읽는 경복궁』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

일반적인 경복궁 책들처럼 공간적으로 외조와 치조, 연조로 구분하고 그에 관련된 전각과 용도 등을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생각과 사상을 이해하면서 구현한 경복궁에 담긴 원론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하였다. 이는 경복궁이 삼재의 원리에 의해 지어진 궁궐로 하늘, 땅, 사람의 조화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작가는 이 책을 쓸 때 다른 책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삼재의 원리(하늘, 땅, 사람)를 이야기했고, 동양 사상에 대해 언급했다. 동양 사상은 지금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해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 우리 선조와 역사 속에 깊이 묻어있는 사상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며, 경복궁 역시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부분까지는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 장을 넘겼다.

'경복궁의 조성 원리와 전각 배치, 음양오행과 삼재, 문과 전각에 담긴 생성의 원리, 광화문 8괘와 64괘 문양의 의미' 처음부터 약 30 page까지를 읽으며, 왜 작가가 동양 사상을 강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의 처음 부분은 삼재를 비롯해 음양, 오행, 8괘, 64괘, 36궁 주역, 28수, 홍범구주, 지천태 등 동양 사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들어보기 힘들었을 용어가 나온다. 작가는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기본과 기초'를 무시하고 손을 놓아서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며, 생소한 용어는 모두 별개처럼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하나로 통합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또 하나를 이해하면 다른 하나는 덤으로 알게 된다고 강조한다.

30쪽까지 읽는 동안 집중하기가 힘들었고, 여러 번 읽으며 그 의미를 되짚어보려 했다. 세 번 정도 반복하며 읽었는데도 이해가 쉽지 않아 그냥 쭉 읽어나갔다. 다행히 31쪽부터는 내가 궁금했던 경복궁 궁궐의 전각 뒤에 숨은 이야기가 펼쳐졌다. 앞부분에 나가지 않던 진도가 31쪽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쭉쭉 읽히기 시작했다.

오복과 황극을 세우는 곳

강녕전은 5동의 전각이기도 하지만 전각의 앞면과 옆면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서 강녕전의 칸수를 세어보면(1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 앞면은 11칸이고 옆면은 5칸으로 총 55칸이다. '55'는 '1'에서부터 '10'까지 숫자의 합이다. 하늘과 당의 모든 '수'의 이치와 원리를 담고 있다고 본다. 강녕전이 '55칸'인 이유는 전각이 크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천지의 이치를 담고 있는 전각이기 때문이다. 또 강녕전에서 '5'는 오복으로 해석하므로 5가 연속으로 있는 '55'도 오복과 관련이 있는 숫자라 하겠다. p.115

세종과 구종직의 깜짝 만남

구종직은 세종에서 성정까지 다섯 왕을 거치면서 관직을 지냈으며 벼슬은 종 1품인 좌찬성까지 이르렀다.

- 중략-

이에 임금은 경회루에 몰래 숨어 들어온 종직을 혼내는 대신에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임금은 이 노래에 대해 칭찬하고 다시 한 곡을 들은 후 다시 물었다.

"그대는 경전을 외울 줄 아느냐?"라고 하니 종직은 "<춘추>를 외워 보겠습니다."라고 거침없이 <춘추> 한 권을 술술 다 외웠다.

이튿날 왕은 승지에게 명하여 종직은 교서관 부교리에 제수하였다. 정 9품 교서관 정자였던 그가 하룻밤 사이에 경회루에서 왕과 만난 후 '종 6품 부교리'로 초대박 승진을 이루자 조정은 난리가 났다. p.279~281

동양 사상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세종과 구종직의 만남처럼 이야깃거리도 중간중간 섞여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쉽게 풀어쓴 스토리텔링 위주의 책보다 『한 권으로 읽는 경복궁』은 조금 난이도가 있게 느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경복궁을 처음 갔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안내 책자만 들고 다녔다. 그 당시 경복궁은 내게 산책코스였다. 다음번에 갔을 땐 해설 시간에 맞춰 해설사를 따라다니며 들었다. 기억이 남는 건 많이 없었지만,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후로도 몇 번을 가보며 여러 해설사를 만났다. 정말 하나라도 더 이야기해 주고 싶어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해설사도 있었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해설해 주는 사람도 만나봤다.

해설사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다.

『한 권으로 읽는 경복궁』을 쓴 작가를 해설사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동양 사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다면 해설 시간이 지나서 나머지 공부를 시켜서라도 이해를 시키려 하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열정이 느껴졌다.

조금은 어렵지만, 경복궁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책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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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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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여행입니다』의 작가 유지안은 2011년 아동문학가로 등단했다. 그녀는 쉰이 조금 넘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냈고, 3일 만에 아버지마저 떠나보내야만 했다. 준비된 이별이었다고는 했지만 그 상실감의 무게는 상상조차 힘들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이 떠난 지 1년 만에 그녀는 큰 수술을 받았다.

'공부를 하다 보면 상실과 육체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투병 생활 중인 자신을 위해 그녀는 대학원에 입학했고, 창작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마친 그녀는 홀로서기를 위해 2017년 10월 인도를 시작으로 900일간의 세계 배낭여행을 떠났다.

코로나19로 인해 목표한 1000일의 여행은 하지 못했지만 900일이란 시간도 엄청난 시간임엔 틀림없다. 여행을 하고 돌아와 예순의 나이에 인생을 리셋 한 그녀는 여행하고 글을 쓰며 바람과 같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고 있다.

책에 실린 33명의 예술가들은 마치 나라를 구하고자 한 민족대표 33인처럼 생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순간 나를 구해준 예술인들로 선택했다. 어떤 이유로든 상실의 늪에서 희망을 다시 소환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 위에서 얻게 된 살아 있는 체험을 들려주고 싶다. '상실에 대한 복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진 후에야 가능하며 비로소 새로운 생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프롤로그

그녀는 900일의 시간 동안 31개 나라와 160개 도시를 다녀왔다. 인도, 이집트, 미국, 캐나다를 제외하면 27개는 모두 유럽에 속해있는 나라다. 유럽의 예술인들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직원이 찾고 싶은 묘가 있으면 말하란다. 나는 그의 친절 덕분에 대중의 지지를 얻어 러시아 초대 대통령이 된 보리스 옐친, 단편 소설 <외투>로 유명한 니콜라이 고골, 희곡 <<갈매기>>를 쓴 안톤 체호프, 혁명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의 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p.62

그녀의 여행은 과거 예술인의 흔적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공동묘지를 찾는 일이 많았다. 어떤 날은 묘지 문을 여는 시간부터 닫을 때까지 종일 공동묘지에 있는 날도 있었다.

그녀는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며 앉아있었을까?

그녀 덕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안톤 체호프가 잠들어 있는 곳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세계 여행을 했을 땐 공동묘지를 찾아간다는 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다음 번 여행을 갈 기회가 있다면 나도 꼭 한 번 내가 좋아했던 작가의 묘지를 찾아 헌화를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런던에서 소설가 찰스 디킨스, 루이스에서 버지니아 울프, 올턴에서 제인 오스틴 하우스를 방문하고 8월 25일, 글로스터에서 기차를 타고 스트랫퍼드 어폰에이번역에 도착했다.

- 중략 -

내가 사용할 룸은 2층 침대 3개가 놓여 있는 6인실이다. "Hello!" 보기에도 연세가 상당히 많으신 할머니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84세 실라 할머니다. 영국 요크셔에 사는 실라는 중국, 홍콩 등 세계 여러 나라를 혼자 7년째 여행 중이라고 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계획이 없다며 웃는 실라 할머니. p.203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많은 경험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84세의 실라 할머니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7년 동안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건 77세에 여행을 시작했다는 이야긴데….

내가 77세라면 그녀처럼 훌쩍 떠날 수 있을까? 실라 할머니와의 만남은 내게 이 책을 읽는 중 가장 충격적인 만남으로 기억된다.

『오늘이 여행입니다』를 읽으며 작가 유지안의 시선으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여행하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통해 작가와 음악가, 예술인을 만날 수 있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걸 느꼈다.

잔잔한 파도처럼 조용한 말투로 내 마음에 여행의 설렘을 속삭이는 그녀의 글을 보고 있으니 떠나고 싶은 욕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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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햄릿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영열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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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세계문학 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최고의 극작가이다. 그는 1564년 잉글랜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부유한 상인이자 유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자자한 명성과는 다르게 작품을 제외한 생애의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는 1589년 첫 작품 『헨리 6세』를 시작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592년 큰 인기를 끈 『베니스의 상인』을 계기로 1594년 <궁내 장관 극단>의 일원이 되었다.

1590년대에는 『리처드 2세』,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헨리 4세』 등의 대표작을 남겼고, 1600~1606년 사이에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를 차례로 발표해 세계문학의 걸작을 남겼다. 그는 1616년 52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우리가 읽는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직접 쓴 완성된 대본으로 존재해 온 것이 아니라, 공연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기억을 더듬어 구성하기를 거듭해서 만들어진 대본이다. p.223

옮긴이의 글

미래와 사람 출판사에서 나온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햄릿을 옮긴이는 최영열이다. 그는 영문학과가 아닌 연극 영화학과 출신이다.

학교를 졸업 후 연극배우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희곡을 읽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햄릿』의 번역을 맡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술술 읽히는 책을 만들자'였다고 한다.

그의 의도가 통했을까? 희곡을 읽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 헷갈려 옆에 종이를 놓고, 인물들의 관계를 그려가며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맨 첫 장에 아래와 같은 햄릿 인물관계도를 직접 그려두어 책을 읽으며 누가 누군지 파악하는 데 수고를 덜어주었다.

연인(?), 친구(?), 각자의 입장에 따라 누구는 연인과 친구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를 쓴 것이 재미있다.

중의적 표현을 즐겨 쓰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다 보면 주석이 많이 달려있는데, 최영열이 옮긴 『햄릿』은 주석이 하나도 달려있지 않다. 그래서 읽기가 훨씬 편했나 보다.

이 책에는 단 한 개의 주석도 달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 중략 -

무엇보다 주석을 읽으려고 시선이 한번 이동할 때마다 애써 연출한 상상 속이 무대가 흐려지는 것은 뼈아픈 손실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주석에 달아야 할 내용은 최대한 본문에 녹여 넣으려고 했으나 그래도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대사에 숨겨진 의미나 배경지식을 더 알고 싶어졌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해설집이나 주석이 많이 달린 번역본을 읽어보실 추천한다. p.225

옮긴이의 글

옮긴이의 의도처럼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술술 넘겨가며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책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은 삶과 죽음에서의 인간의 실존 문제와 복수를 그리고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이 더 고귀한가?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참아야 하는가?

햄릿

위의 가장 유명한 대사 외에도 주옥같은 대사가 넘쳐난다.

엉터리 목사님처럼 내게는 천국에 이르는 험한 가시밭길을 가리켜놓고, 정작 본인은 방탕하게 환락의 꽃밭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되지는 마세요. p.34

습관이란 괴물 같아서 악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천사와 같은 면도 있어서 처음에는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도 어느새 몸에 잘 맞는 법입니다. 오늘 밤만 참으면 내일은 더 쉬워지고 모레는 더더욱 쉬워질 거예요. p.136

사랑이 불타오르면 그 심지가 점점 약해지듯, 세상 어느 것도 좋은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어. 아무리 좋은 것도 넘쳐나면 그 과함 때문에 오히려 한풀 꺾이고 마는 법이야. p.177

햄릿이 햄릿에게서 빠져나와 자기 자신이 아닐 때 레어티즈에게 그릇된 행동을 했다면 그건 햄릿이 한 짓이 아니야. 그럼 누가 그런 걸까? 햄릿의 광기가 한 짓이지. 그렇다면 햄릿 또한 피해자가 되는 걸세. 그 광기는 불쌍한 햄릿의 적이니까. p.211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은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외국 서적은 누가 어떻게 번역하는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질 수 있다. 이번 미래와 사람에서 출판한 『햄릿』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읽으면 훨씬 쉽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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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 어둠의 날 기묘한 이야기
애덤 크리스토퍼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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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의 작가 애덤 크리스토퍼는 2012년 데뷔 소설 『엠파이어스테이트』가 <사이파이나우>

와 <파이낸셜 타임스>에 올해의 책으로 선정이 되며 SF 판타지계의 주목받는 신예 작가로 떠올랐다.

이 소설은 호킨스 마을의 경찰서장 짐 호퍼의 과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잘 들어, 꼬마. 어떤 얘기들은 네가 아직 들을 준비가 안 됐고, 어떤 얘기들은 내가 아직 너한테 들려줄 준비가 안 됐어." P.20

이야기의 시작은 짐 호퍼의 새 가족이 된 엘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엘은 짐 호퍼에게 왜 경찰이 됐냐고 묻는다. 느닷없는 질문에 호퍼는 생각이 많아지며 위와 같은 말을 한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아직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들려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일까? 이야기는 시작부터 궁금증을 유발한다.

새 가족이 된 엘과 호퍼는 서로에 관해 잘 모르고 있었고, 엘은 호퍼가 왜 경찰이 됐는지 알고 싶어 끈질기게 질문한다. 하지만 엘에게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호퍼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가 된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당연해. 언젠가, 네가 좀 더 나이가 들면 그 시절 얘기를 해줄게."

이렇게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했지만, 끈질긴 엘은 다른 얘깃거리로 '뉴욕'이라고 쓰여있는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꺼낸 엘은 호퍼에게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며 상자 뚜껑을 연다. 상자 안에는 카드와 서류철이 들어있었다. 카드 뒷면에는 속이 비어 있고 꼭짓점이 다섯 개인 별 그림이 상징이 그려져 있었고, 서류철 맨 위에는 뉴욕시 경찰청 수사과장이 호퍼에게 써준 추천서가 놓여 있었다.

1984년 현재.

호킨스 마을의 경찰서장인 짐 호퍼는 1977년 뉴욕시 강력팀 형사 시절을 회상하며 과거 이야기를 시작한다.

1977년 7월 4일. 호퍼는 딸 새라의 초등학교 반 친구와 부모까지 모두 초대받은 팔머 가족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의 파트너인 로사리오 델가도 형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는 쉬는 날이었지만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로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꼭짓점이 다섯 개인 별 그림 상징을 보고 그와 파트너는 연쇄살인임을 알게 된다.

"오각별이야. 꼭짓점이 다섯 개인별."

500쪽이 넘는 책이지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기묘한 이야기를 보지 못해 드라마와 책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고 나니 넷플릭스 드라마를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에 발간된 『기묘한 이야기 - 최초의 의심』 이란 책도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재미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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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니체전집 13
프리드리히 니체 / 책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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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19세기에 활동했던 독일 철학자, 문헌학자, 시인, 음악가.

니체는 1844년 작센 지방의 뢰켄이라는 마을에서 루터교 목사였던 아버지와 다른 지역 목사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나움부르크에서 성장했다. 그는 명문 기숙학교 슐포르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864년 본 대학교의 고전어문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1년 후 니체는 지도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고, 지도 교수의 추천으로 25세의 나이에 바젤대학교 원외 교수로 일하다 이듬해 정교수로 취임한다.

1879년 그는 건강 악화로 교수직을 사임하고, 스위스의 질스 마리아라는 작은 마을에서 영원회귀 사상을 구상하던 니체는 1885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부를 출간한다. 정신병이 있던 니체는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광장에서 쓰러졌고, 1900년 누이동생이 있는 바이마르에서 5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차라투스트라는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 호숫가의 고향 마을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정신을 수양하고 홀가분하게 고독을 즐겼는데,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서 전혀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그의 마음은 변하고 말았다. p.11

차라투스트라의 서문

책은 산속으로 들어가 10년의 삶을 살던 니체가 마음이 변해 세상으로 내려오는 걸로 시작한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머털도사라는 만화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머털이가 산으로 들어가 스승 밑에서 10년 동안 밥 짓고 빨래를 하는 동안 세상 이치와 무술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익혔다는 걸 아랫마을에 내려와서 알게 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게만 생각됐던 책이라 작정하고 펼쳤는데 처음은 생각보다 읽기 편했다.

산을 내려가던 도중 만난 노인은 그를 보고 10년 전과는 아주 딴 사람으로 변했다고 이야기하며 무엇 하러 잠든 사람들 곁으로 가려고 하냐고 묻는다. 차라투스트라는 노인에게 당신을 숲속에서 무엇을 하시나요?라고 묻자, 그는 신을 찬양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있어서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구나? '신이 죽었다'라는 소식을!" p.16

그 유명한 문구 "신은 죽었다."가 여기서 나온 말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며 과거엔 신만이 할 수 있던 일을 현대에선 인간이 대산하고 있으며, 『호모 데우스』를 읽으며 인간은 이미 신이 되어버렸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시작점이 니체였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즉,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고, 마지막으로 사자가 아이가 된다는 이 변화를 말하려고 한다. p.38

참을성이 강한 정신은 체념한 채 모든 무거운 짐을 싣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그렇게 자신의 사막을 달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정신은 자유를 쫓아 이를 잡으려 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자가 된다.

새로운 가치를 위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 자유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의무조차도 신성하게 부정하는 것. 이것이 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의 창조는 사자도 이루지 못한다.

가치의 창조를 이루기 위해서 사자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아이는 순진함이고 망각이다. 새로운 시작이자 유희인 것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고, 최초의 움직임인 것이다.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속세를 등진 정신은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어떻게 해서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고, 사자가 어떻게 아이가 되는가를 이렇게 풀어놓았다. 도서관 수업에서 사람은 낙타에서 사자,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땐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총 4부로 500쪽이 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그동안 왜 독서 수업에서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다. 자세히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으면 좋겠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꽤 있어 책장을 덮는 이 순간에도 다 읽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책이라 책장에 두고 가끔 꺼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고전의 매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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