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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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여행입니다』의 작가 유지안은 2011년 아동문학가로 등단했다. 그녀는 쉰이 조금 넘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냈고, 3일 만에 아버지마저 떠나보내야만 했다. 준비된 이별이었다고는 했지만 그 상실감의 무게는 상상조차 힘들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이 떠난 지 1년 만에 그녀는 큰 수술을 받았다.

'공부를 하다 보면 상실과 육체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투병 생활 중인 자신을 위해 그녀는 대학원에 입학했고, 창작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마친 그녀는 홀로서기를 위해 2017년 10월 인도를 시작으로 900일간의 세계 배낭여행을 떠났다.

코로나19로 인해 목표한 1000일의 여행은 하지 못했지만 900일이란 시간도 엄청난 시간임엔 틀림없다. 여행을 하고 돌아와 예순의 나이에 인생을 리셋 한 그녀는 여행하고 글을 쓰며 바람과 같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고 있다.

책에 실린 33명의 예술가들은 마치 나라를 구하고자 한 민족대표 33인처럼 생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순간 나를 구해준 예술인들로 선택했다. 어떤 이유로든 상실의 늪에서 희망을 다시 소환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 위에서 얻게 된 살아 있는 체험을 들려주고 싶다. '상실에 대한 복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진 후에야 가능하며 비로소 새로운 생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프롤로그

그녀는 900일의 시간 동안 31개 나라와 160개 도시를 다녀왔다. 인도, 이집트, 미국, 캐나다를 제외하면 27개는 모두 유럽에 속해있는 나라다. 유럽의 예술인들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직원이 찾고 싶은 묘가 있으면 말하란다. 나는 그의 친절 덕분에 대중의 지지를 얻어 러시아 초대 대통령이 된 보리스 옐친, 단편 소설 <외투>로 유명한 니콜라이 고골, 희곡 <<갈매기>>를 쓴 안톤 체호프, 혁명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의 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p.62

그녀의 여행은 과거 예술인의 흔적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공동묘지를 찾는 일이 많았다. 어떤 날은 묘지 문을 여는 시간부터 닫을 때까지 종일 공동묘지에 있는 날도 있었다.

그녀는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며 앉아있었을까?

그녀 덕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안톤 체호프가 잠들어 있는 곳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세계 여행을 했을 땐 공동묘지를 찾아간다는 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다음 번 여행을 갈 기회가 있다면 나도 꼭 한 번 내가 좋아했던 작가의 묘지를 찾아 헌화를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런던에서 소설가 찰스 디킨스, 루이스에서 버지니아 울프, 올턴에서 제인 오스틴 하우스를 방문하고 8월 25일, 글로스터에서 기차를 타고 스트랫퍼드 어폰에이번역에 도착했다.

- 중략 -

내가 사용할 룸은 2층 침대 3개가 놓여 있는 6인실이다. "Hello!" 보기에도 연세가 상당히 많으신 할머니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84세 실라 할머니다. 영국 요크셔에 사는 실라는 중국, 홍콩 등 세계 여러 나라를 혼자 7년째 여행 중이라고 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계획이 없다며 웃는 실라 할머니. p.203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많은 경험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84세의 실라 할머니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7년 동안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건 77세에 여행을 시작했다는 이야긴데….

내가 77세라면 그녀처럼 훌쩍 떠날 수 있을까? 실라 할머니와의 만남은 내게 이 책을 읽는 중 가장 충격적인 만남으로 기억된다.

『오늘이 여행입니다』를 읽으며 작가 유지안의 시선으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여행하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통해 작가와 음악가, 예술인을 만날 수 있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걸 느꼈다.

잔잔한 파도처럼 조용한 말투로 내 마음에 여행의 설렘을 속삭이는 그녀의 글을 보고 있으니 떠나고 싶은 욕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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