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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축제 -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ㅣ 8020 이어령 명강
이어령 지음 / 사무사책방 / 2022년 4월
평점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사람을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으로 나누고 학문을 배울 때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숫자로 나누어 또다시 다르게 하며 구분 짓고 나누는 것에 익숙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과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잠재력을 깨우치고 발전시키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도서 생각의 축제의 저자는 편견과 고정관념이라는 잣대로 사람을 나누고 어느 한 쪽의 판단 기준으로 다른 한쪽을 소외시키는 행위는 창살 속에 살아가는 무기수와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을 숫자로 정의하는 사회
누군가를 알아가기 위해 하는 질문에는 언제나 숫자가 들어있다.
"너는 몇 살 먹었니?" , "형제는 몇이나 되지?" 이제는 "너희 집은 몇 평이야?"라는 물음이 자신의 소개하는 일부로 전락하기도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숫자로 이야기가 되는 세상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에 있어서는 숫자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하늘만큼 땅만큼, 혹은 땅과 모래알만큼 엄마도 널 사랑한단다.'라는 말과 같이 사랑과 그 감정에 있어서는 숫자로 표현하지 않는다. 꽃잎의 개수도 이파리의 수도 셀 수 있지만 사랑은 세어볼 수 없는 것이다.
별사탕
저자는 수를 세어보려는 버릇이 엉뚱한 싸움을 벌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형과 아우의 관계에 있어서도 숫자가 들어가면 그 양을 정확하게 구체적인 계산에 의해서 나눠져야 한다. 어머니의 마음은 별사탕을 한 움큼씩 잡아 똑같이 나눠준다 하여도 형제는 그 나눔 받은 한 움큼을 방바닥에 흩어놓고 제 몫을 세어버리고 마음을 셈하는 버릇이 싸움과 분쟁의 시작인 것이다.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몫이 정확하게 나눠지지 않으면 자신을 덜 사랑하는 것처럼 느끼는 자식의 마음에 덩달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형제의 주먹다짐 후로는 어머니는 편치 않은 마음을 쪼개듯 작은 별사탕을 하나하나 세고 나누어 똑같은 수로 쪼개 주셨다고 한다. 저자는 생각한다. 숫자는 정말 평화를 조정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별사탕을 똑같이 쪼개 나눠가졌다고 공평하게 사랑하느냐를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사랑을 별사탕의 숫자로 셈할 수 있냐는 말이다.
'~셈 치고'의 문명
어림잡아 ~셈 치고 하는 말이 있었다. 명확하게 떨어지는 것 없이 불분 명확한 말이지만 이 ~셈 치고의 문명에는 정이 있었다. 고추 한 됫박, 쌀 한 됫박, 깨 한 됫박을 사도 그 됫박 위를 자로 밀어내 그 셈을 치르는 것이 아닌 수북하게 올려진 그 한 됫박의 셈으로 계산을 하던 ~셈 치고의 시절 말이다. 저자가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을 때 고추를 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상인은 고추를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데 고추가 많이 올라갔는지 눈금이 조금 오르자 한 개를 뺏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금이 내려와 무게가 모자라게 되었다. 그때 상인은 가위를 들고 와 고추 한 개를 자르더니 반 개를 만들어 저울 위에 올려놔 정확하게 셈을 세어 고추를 팔았더랬다. 반 토막 난 한 개의 고추를 보며 '셈 치고'의 세상에서 살다 온 저자는 어딘지 야박하다는 인상과 섭섭함을 느꼈다. 한국의 시골길에서는 먼 길도 10리 밖에 안 남았다고 이야기하며 가찹다(가깝다)고 표현한다. 이는 길을 걷는 이의 기분을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한참 걸어야 한다는 말보다 거의 다 왔다는 말이 나그네에게 있어 조금 더 힘을 내고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저자는 세상에는 수많은 삶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는 저울로 달 수 없는 삶 또한 존재한다고 한다. 이들은 숫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숫자로 이뤄진 사회 속에서 숫자 없이 살아가기란 어려울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고 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삶을 순응하며 살아가기를 택하기보다는 숫자 속에서 아름다운 이름과 시를 발견하는 다른 생각, 다른 삶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삶이 저울로 달 수 없는 삶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울로 달 수 없는 삶을 생각할 때면 어딘지 삶을 향한 인간의 순수한 저항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