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바바리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63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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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 '망했어요' 페이지에서 책의 목차만 캡쳐해서 대차게 까는 걸 보고 읽게 된 소설이다.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에 익숙한 오늘날의 인터넷 젊은이들에게 바바리맨이란, 지극히 '빻은' 소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문학이 세계와 삶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 준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라, 어떤 작품이 구태여 소재만을 두고 까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봤다. 더군다나 이 책은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소재와는 별개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봤고, 그래서 일단 읽게 됐다. (성장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건 덤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정치적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바바리맨이라는 소재를 비교적 성실하게, 나름대로 적절한 조망을 가지고 활용하고 있었다. 책 자체도 그렇게 가볍게만은 볼 수 없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헬로 바바리맨'의 배경은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뚝방촌 언덕이다. 언덕 위쪽에는 철거 위기에 놓인 주거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아래 쪽에는 아직 직접적으로 철거 위기에 놓여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를 가진 사람들이 산다. 아랫 동네 구멍가게에 사는 주인공 동현은 이른 나이에 현실의 논리를 학습한, 다소 조숙하면서도 시니컬한 13살 소년이다. 아버지는 두부공장 일을 하다가 사업을 말아먹고, 하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무협지를 읽는 데만 빠져 있으며, 어머니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일수쟁이다. 얹혀 살고 있는 삼촌은 경찰 공무원이 되겠다고 몇 년 째 허송하고 있는 만년 공시생이다. 이런 무료한 일상이 깨어지는 계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싸움 이후다.


 가구 구성원으로서의 무능함과 권태에 찌들어있던 아버지는 부부싸움을 한 그날부터 바바리 코트를 입고,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바바리맨으로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바깥에만 나갔다 들어오면 생기(라 쓰고 '변태 에너지'라 읽는다)를 얻는 아버지(그렇다고 완전 노출하지는 않고 언더웨어까지는 입는다.), 동현은 그런 아버지가 몹시 '쪽팔렸기' 때문에 그를 미행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연음란과 일탈행위의 상징 '바바리맨'은 언제부터인가 '동네의 영웅'으로 통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바바리맨은 여고생을 불량배들로부터 구해주고, 발을 다쳐 거동이 어려운 학생들의 등교를 도와주고, 윗 동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몰래 쌀을 가져다 주는 등 선행을 일삼았던 것이다. 급기야는 동네에서 바바리맨의 팬클럽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르고, 한편으로 이를 심상치 않게 본 파출소 측에서는 바바리맨을 체포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인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 과연 '어떻게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이 작품의 문제의식을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졌다. 문학의 기능이라는 '다양한 삶의 조망' 이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하는 회의를 거듭하는 가운데, 그래도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글로 남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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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가짜'와 '진짜' 간 구분의 '무용성'이다. 프롤로그에서 동현의 학교 담임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웅은 누구냐고 묻는다. 배트맨, 슈퍼맨, 아이언맨 등의 평범한 대답들이 오가는 가운데 동현은 가장 '이상적인' 영웅으로 '우리 동네 바바리맨'을 언급한다. 그리고 바바리맨에 대한 일화와 그의 영웅적 면모, 그가 영웅으로서 갖는 위치성에 대한 논의가 사실상 이후의 줄거리다.


 작중에서는 철거민과 용역업체 간의 갈등이 계속해서 언급된다. 원주민의 주거권을 빼앗고 무책임하게 일관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비판이다. 이런 성장중심주의의 폐해는 현실의, 그리고 현재진행형의 아젠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돌아 보지 않으면 내일 당장 '살 곳'을 잃는 쪽은 우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헬로 바바리맨'의 용두동 철거민들은 불의한 시장권력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조금이나마 더 연명하는 처지에 불과한 입장인 것이다. 영웅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선행을 일삼는 '바바리맨'은 민중의 영웅으로 급부상하지만, 그가 현실의 모든 사태를 끝장낼 수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기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용역업체로부터 철거민들의 주거권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우선 주목할 점은 바바리맨의 '기호'와 '상징'이다.


 '우리 동네 바바리맨'을 상징하는 것은 '가이 포크스 가면'과 '바바리 코트' 크게 두 가지다. 가이 포크스는 17세기 초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처형된 인물로, 후일 그의 얼굴을 따서 만들어진 가면은 자유와 혁명을 상징하게 되었다. 바바리 코트는 공연음란과 변태성에 대한 기호로 잘 알려져 있다. 정부 기득권이 보기에 양자는 불의함, 일탈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가히 '치워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바로 이 '일탈'에의 상징이 바바리맨이 영웅으로 부상하게 되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은 그토록 위험하기 짝이없는 '바바리맨'이 가히 영웅으로 호명하기에 이른, 지극히 '위험한 사회'라는 역설이다. 그가 현 시점에서 이미 영웅이라는 것은 그의 '정치적 위험성'과 그 어떤 영웅으로서의 '진위'를 논하는 것이 무용하다는 귀결을 제공한다.

 

 소설의 막바지에서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개인들'이 나타나 용역업체를 저지하기에 이른다. 바바리맨의 활약상이 한 네티즌에 의해 알려져 철거민들을 위한 '연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영웅이 구태여 '총대를 매는 개인'의 형태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촛불혁명을 통해 광장에서 전제군주를 끌어내린 시민들처럼 우리는 충분히 불의한 권력에 맞서 연대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용기 있는 '시도'이다.



 우리는 저항의 수단을 논의함에 있어서 그 수단의 '합법성'을 말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13년 말, 철도 민영화 시위 노동자 파업 이후의 하 수상한 시국을 비판하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붙었었다. 혹자는 대학 측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판촉물' 운운하기 급했지만, 세월호가 가라앉고, 시민이 물대포를 맞아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러한 논리가 지극히 기득권 영합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뼈아프게 체득한 시민들에게 있어 표준, 준법, 평범을 의미하는 '진짜'의 개념은 지극히 사회에서 규정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불의에 눈 감는 온건한' 시민들을 양산하기 위한. 일례로 매스미디어는 '중산층'의 '평범'한 삶을 보여주며 개인에게 '삶'의 표준을 제시하는 데 급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표준을 따를 만큼 녹록지 않고, 그렇게 따라서도 안된다. 동현의 이웃들, '백부'라고 불리는 철물점 주인,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만년 파출소장, 나훈아 '모창가수' 나후나, 옥탑방에 사는 시인 아줌마 등 현실은 '진짜'를 따르지 않는 '가짜'들이 더 많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진짜'의 개념은 결코 본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사회구조적이라는 것이다. 대신 비(非)진짜가 인간에게 더 유익하게 기능하고 있다면, 그것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이 포크스의 반정부적 사상은 당시 도덕적으로 아주 위험했고, 바바리맨은 오늘날 탈선자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악역을 자처한' 다크나이트처럼, 바바리맨은 철거촌을 지켜냈고, 시민의 연대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바바리맨이라는 일탈자의 운명을 선택했고, 이를 통해 애벌레가 고치에서 빠져나오듯 '변태'했다. 코너에 내몰린 사업 실패자라는 하나의 '알'을 깨고, '우리동네의 영웅'이라는 신에게로 날아갔다. 안타깝게도 현행법 상 바바리맨은 경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바바리맨의 최후가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지난 일들을 생각하는 걸까. 아빠는 아득한 눈빛으로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큰숨을 내쉬고서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그런 아빠를 보며 나는 며칠 전 그가 바바리맨 팬카페에 올린 글을 떠올렸다.


안녕하세요. 바바리맨입니다.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네요. 한낱 치한에 지나지 않는 저를 위해 팬카페를 만들고, 게다가 경찰서에서 풀려나는데 도움까지 주시니, 정말이지 어떻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건 사과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통해 여러분이 저를 히어로라고 불러주지만, 분명 제 바바리맨 행각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은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 학생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드립니다. 그동안의 제 행동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반성합니다. 여러분들이 제게 보내준 따뜻한 관심과 응원은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빕니다.


(p.254)



 아버지는 바바리맨에서 다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왔다. 동현은 너무나 일찍이 세상의 혹독한 논리를 학습한 시니컬한 소년이지만, 끝내는 '우리동네 바바리맨'을 영웅으로 인정했다. 불의한 일을 겪고 의식의 반전을 겪은 다른 많은 시민들처럼 동현 역시도 세상을 보는 또다른 관점을 얻게 되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렇게 '변태'하고 더 성장할 모두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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