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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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지만 근 2주 전까지만 해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기점으로 강릉, 아산 등지에서의 학교폭력 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또한 얼마 전에도 천안에서 중학생들이 같은 학급 학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보수언론에서는 '학생들이' 했다고는 볼 수 없을 만큼 그 폭력의 정도가 잔학하다는 데 포커스를 뒀으며, 이에 많은 이들이 경악하고 분노했다.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불거지고 있는 와중에 급기야는 소년법 폐지 청원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른들 못지 않게 잔인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을 굳이 보호해 줄 필요가 없다'는 이유인데, 과연 그 말마따나 소년법을 폐지하면 학교폭력이라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미성년자들을 보호해야 할 법적, 인도적인 이유는 정말 없는 걸까.

  페이스북을 끊은 지 이제 일주일 정도가 되었지만 월 초에 타임라인에서 부산 kbs라디오 제연화 기자가 쓴 글을 하나 본 적이 있다.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는 천종호 판사님을 취재했던 일화를 바탕으로 작금의 학교폭력 의제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쓴 글이었다. 그녀는 소년법 폐지를 외치는 이들에게 소년법의 필요성과 청소년에 대한 인도주의를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었는데, 떠들썩한 시국 때문에 대중들에게 자칫 가해자를 두둔하냐는 식으로 오도될 가능성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참 멋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그가 권했던 책이 바로 천종호 판사의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이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창원가정지법에서 비행을 저질러 재판을 받거나, 부산 경남 등지의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청소년들의 일화를 다룬 사례집이다. 저자 천종호 판사는 비행청소년들에게 10호 처분(2년 간 소년원 송치. 소년법에서 가장 처벌수위가 높음)을 많이 내린다는 이유로, 냉정하고 엄격한 판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사실 그는 굉장히 인도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졌으며, 청소년들의 재사회화와 전인적인 재활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소년들을 사회화하는 데 있어 가족, 가정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고, 관련 법과 제도에서도 가족주의적인 가치관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대대적인 '가정의 해체'를 겪고 있고, 이에 비행에 빠지는 청소년들 역시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가정불화, 생활고 등의 이유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청소년들은 2013년 기준으로 약 6만 여명에 이르지만, 그렇게 코너에 내몰린 이들의 사회적인 완충재는 사실상 없다. 책에 나온 내용을 조금 인용하자면 좋은 사회의 척도는 그 사회의 가장 낮은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따라 달려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암울한 유년을 보내고 있는 소년들의 아픔은 좀처럼 조명되지 못하고, 우리는 애써 그들을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청소년들이 '인정'이나 '인도주의'에 대해 희박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가, 그 사회의 어른들이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논리로 겉잡을 수 없이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교폭력 문제를 말하려면 청소년 문제를 얘기해야 하고, 청소년 문제는 곧 사회 전반의 거시적인 해결과제로 논의되어야 하는데, 작금의 여론은 그러한 논의는 덮어놓고 애들을 처벌하기만 하자는 꼴이다. 또한 대중들이 주장하는 '엄벌'의 실효성도 논란의 소지가 많다. 실제로 소년원에 입소했던 청소년들의 재범률은 무려 60%에 가깝다.
 

  청소년들을 돌보는 것은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지성과 반지성의 대립도 될 수 없다. 예전보다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지만, 누군가는 미래를, 희망을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양심이라는 게, 애정과 사랑이라는 게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천종호 판사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사법형그룹홈(대안가정)을 도입하고 소년들의 재활을 도우며, 그들이 좌절 대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의 노력 때문인지 대안가정에 입소한 소년들의 재범률은 소년들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들이 생의 희망을 보고 건실한 사회인으로 자라는 것은 덤이다. 그는 현직 판사이지만 청소년들로부터 '판사 같지 않고 다정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우리 사회에서 판사에 대한 이미지가 소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는 데서 '판사 같지 않다'는 말에 담긴 함의는 막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청소년지도사를 지망했었고, 지금도 여건이 된다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사람이다. 교육은 백년대계고, 청소년들은 나라의 기둥이라는 나의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이 막막하다는 핑계로 미래를 바라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그 현실이야말로 바로 수 년 뒤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안 돼, 안 바꿔 줘, 바꿔 줄 생각 없어, 돌아 가.'로 유명한 타칭 '무자비한 판관' 천종호 판사가 대단히 소신있는 법조인이자 책임있는 어른이라는 게 무척 감사하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비관하거든, 고개를 들어 천종호 판사를 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크나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책에 수록된 시를 한 편 인용하며, 나 또한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을 소년들에게 말한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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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네가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비결> 샘 레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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