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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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의 안티테제. 이 한 권의 책은 이후 '투명사회', '권력이란 무엇인가', '에로스의 종말' 등에서 개진되는 한병철의 여타 주요 개념과 사상의 전초가 된다.


소설가 장정일은 이 책을 두고 패스티시(특정한 작품으로부터 내용이나 양식을 빌려온 작품)라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그처럼 사회 문제의 철학적 진단을 이토록 직관적인 도식에서 간명히 쓴 책은 (내가 알기로) 여태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겠지...


피로사회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 근대의 면역학적 구도(부정성의 사회)와 후기 근대의 신경증적 구도(긍정성의 사회)를 비교하며 현대 사회가 '긍정성 과잉', 이른바 '같은 것의 범람'으로 자아의 위기를 고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성과사회'는 다른 누구(타자)도 아닌 자기자신이 스스로의 경영자가 되어 혹사하는 시대이고, 우울증, 주의력행동결핍장애, 소진증후군은 바로 이 자아의 혹사로 비롯하는 질병이라는 것이다.



"세계의 긍정화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낳는다. 새로운 폭력은 면역학적 타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내재적 성격으로 인해 면역 저항을 유발하지 않는 것이다. 심리적 경색으로 이어지는 신경적 폭력은 내재성의 테러이다." 한병철은 말한다.



긍정성 과잉의 시대에서 발견되는 현대인의 내적 폐해에 관한 서술을 보고 싶다면, 3장 '깊은 심심함' (p.30 ~ p.36)과 5장 '보는 법의 교육' (p.47 ~ p. 54)이 제격이다. 첫 문장부터 팩트폭력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에 정리해본다.



"긍정성의 과잉은 자극, 정보, 충동의 과잉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주의 구조와 경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지각은 파편화되고 분산된다."


"최근의 사회적 발전과 주의구조의 변화는 인간 사회를 점점 수렵자유구역과 유사한 곳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는 사이 예컨대 직장 내 집단 따돌림은 큰 규모의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다."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오늘날은 분노 대신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만이 점점 더 확산되어 간다."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부정적 힘 없이 오직 무언가를 지각할 수 있는 긍정적 힘만 있다면 우리의 지각은 밀려드는 모든 자극과 충동에 무기력하게 내맡겨진 처지가 될 것이고, 거기서 어떤 "정신성"도 생겨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지금은 페이스북을 멈춰야 할 때'리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페이스북은 '타인의 의견'을 표방한 '같은 지형적 담론'의 소비가 만연한 플랫폼이라는 내용이었는데, '피로사회'에 따르면 페이스북이 말 그대로 자극, 정보, 충동의 과잉으로 동일자의 나르시스트 경향을 강화한다는 거 아닌가. (...) 예리한 지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논리를 따라 성과사회의 근저에서 사회문제전반을 파악하는 것은 자칫 맹아적인 이해로 귀결될 소지가 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우울사회'를 보론으로 엮은 듯 하다. 내가 보기엔 주장의 중언부언에 가까웠지만) 그래서 한병철이 이후의 저작들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견지하는 것이겠지만... 확실히 이 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이 책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경영학적 메커니즘'을 기술하는 데는 적절하지만, 여전히 국가 단위로 자행되고 있는 감시와 검열은 설명하지 못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그렇듯 헤겔을 위시한 변증법은 반증할 수 없는 개념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긍정성의 과잉'은 어느 측면에서 어디까지 유효한지 판단하고,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결론부에 '이상적인 피로'에 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전에 읽었던 '에로스의 종말'에서는 데이터 풍요의 시대에 이론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독자에게 사유와 에로스를 촉구하는, 상당히 '뚝심있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피로사회'는 '근본적 피로'라는, 거의 전근대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개념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그것은 피로라기 보다는 '쉼'이다. 주 5일, 필요하다면 주말에까지 나가서 하루 평균 9시간 이상을 일하는 현대 직장인들에게 '오순절 막간의 시간'과 '커피 브레이크'는 양립할 수 있을까. 장정일의 지적대로 단순한 '힐링'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역자 후기에 '분단국으로서의 한국 현대사의 독특한 이념적 지형'에 대해 언급하는데, 근대의 면역학적 도식(이데올로기적, 민족적 타자와의 대립)에서 벗어나 '긍정성의 확대'로 이어지는 사회는 기존의 '진보 vs 보수' 구도를 재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얘기한 바 있다. 반은 동의하지만 반은 글쎄다. 이념을 잃어버린 사회는 표류하고 있고, 오히려 '우경화'되어가고 있다. 진보는 '불편한 것', '성가신 것'이 되어간다. 거기에 자리잡는 것은 이기적이고 협소한, 파쇼적 군상이다. 또한 아직도 태극기를 들고 왕당정치를 옹호하는 세력이 잔존하고 있다. 이른바 총체적 난국이다. 그렇게 쉽게 타개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래도 생각보다 읽는 데 얼마 안 걸렸다. 이전에 '에로스의 종말'을 읽어서 그런가 꽤 나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한 달 넘게 질질 끌었을 텐데. 이제 나도 독서인이 되어가나 보다. (주변사람들도 대개 그렇더라. 젊은이들을 다독가로 내모는 세상... 독서의 시대정신....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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