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뭐 더 말이 필요 없다. 책 말미의 추천사들은 독자 개인의 실존에 찬물을 끼얹는 엘리트적인 레토릭 군더더기일 뿐이다.


기실 <표백>을 읽기 전에 이 책이 담고 있는 사회의식 내지 시대정신, 이른바 '88만원 세대'의 불안과 좌절 등지에 접근한 글을 많이 보았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H그룹 인사부 선배에게 '청년들에게 도전정신 강요하지 말라'고 대들었던 후배 대학생 일화" 역시 유명하지 않나. 하지만 나는 <표백>을 두고 사회 얘기를 꺼내기 이전에 이 작품이 문학으로서 가지는 역할에 대해 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보다 보면 현실과 문학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지 의심하기 충분하다. 내 말은, 각종 통계 들먹이면서 사회문제 얘기 꺼내는 건 이 책이 진가를 발휘하기에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거다. 마찬가지로 사회문제를 논하기 위해 이 책이 여하한 부수적인 역할을 해야하는 것 역시 안타까운 지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기야 하지만)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이것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주제의식과 맞아떨어진다. 더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 천부적인 재능을 안고 태어난 젊은이들 조차 세상에 아무 것도 기여할 수 없다는 현실.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완전무결의 이데올로기로 구성원들을 옭아매는 세상. 따라서 자살을 귀결점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삶 전반, 세계 전반이 어떤 근본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역설이다. 이런 세상에 살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한다.'는 주체적인 의지 표명인 것이다. 과거 계몽 사상이나 공산주의 등 통상적으로 '이념'이라는 것은 삶의 의지 표명을 의미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삶의 의지를 추동하는 이념이 존재하는가? 자살을 진지하게 논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변화에의 희망은 있는가. 표백의 망령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건 구태여 논증하지 않아도 충분할 듯 하다. 다만 작은 촛불을 조심스레 감싸안듯, 우리는 가치를 가꾸어 내기 위해 힘겹게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논외로 대학시절이 묘사되는 초반부 장에서 좀 많이 아팠다. '세연'이 죽기 직전까지. 여전히 내게 피해망상 증세가 있고, 그때 추억이 결코 유쾌해질 수 없음을, 그때를 되새기려면 아직 10년은 이르다는 사실을 상기해주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학 시절과 내가 경험했던 대학 시절은 명백히 다르다. 꾸며진 청춘과 병들었던 과거를 비교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 내년에 복학하는데, 참 걱정이다. 학교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무섭다.


암튼 엄청나게 우울해지는 책이라는 건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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