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선정적이다. 나도 사실상 낚였다고 봐야 한다. 이 책의 원제는 mortality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은) 반드시 죽는다는 '필사(必死)'의 명제, 즉 (생명의) '유한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을 마치 죽음과 투쟁하는 무신론자의 논변(책에서 히친스는 죽음에 관해 '투쟁'한다거나 '싸운다'는 수사를 거부한다.)처럼 장식했다는 사실은 책을 덮고 난 이후에 보면 꽤나 역겨운 대목이다. 후기에서 히친스의 아내가 '남편은 죽는 순간까지도 유쾌하고 열정이 있었다'는 걸 꾸준히 언급하지만, 유고집에 드러난 그의 병중생활은 기약 없는 고통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여타 시한부 환자들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mortality'라는 원제야말로 이 책을 장식하기 충분했다고 보지만... 그랬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슬픈 현실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특히 과학계와 무신론진영에서 저명한 이름이다. 나 역시 간단한 약력 정도만 알고 있었고. 예전에 도킨스는 몇 번 읽었던 거 같지만 이 사람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인데 유고에세이로 시작했다는 아이러니는 넘어 가자 ...) 


번역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옛날만큼 무신론이나 반종교진영에 그리 관심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 책쇼핑을 하다가 제목에 끌려서 샀을 거다. (골고루 읽는 편이 좋겠지...하는 마음에서) 모로 보나 사실상 제목에 낚였다고 봐야할 텐데, 그래도 얻어낸 부분이 없지는 않은 책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는 건 언제든 흥미로운 주제가 된다. 지금 이 삶이 전부 다 끝난다면, 다 끝이라면... 아직 젊고 건강한 나 조차도 아득해지곤 한다. 다만 이 나약함을 이용하는 장사치들을 욕하기는 하겠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사색으로 끝나곤 하지만, 막상 죽음을 선고받게 될 때면 그때도 태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히친스는 계속 아파하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뚝심을 밀어붙힌다. 내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결코 그럴 수 없을 거 같지만...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히친스는 자신의 병중생활을 통해 이 금언을 철저히 논파한다. 고통은 인간을 더 나약하게 할 뿐이라는 거고, 그건 이성과 열정을 흩뜨리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원래 이 표현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역시 죽음 앞에서 사람은 변한다.) 이와 동시에 니체의 나약함을 까기도 한다. 뭐, 이렇게 보면 히친스는 꽤나 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 삶을 통해 한 사상가의 위선을 까발린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예전에 이말년 만화를 보고 되게 감명 받았던 구절이 있었다. (되게 별 거 아닌 말이었는데, 무슨 말인지 기억이 안 나는 거 보면 역시 그다지 중요한 말은 아닌 거 같다.) 셀럽의 아포리즘은 그 신봉자들에게 감명을 준다. 아마 히친스를 보고 감동받았던 독자들이 이 책을 보면 나보다는 더 격한 반응을 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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