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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얼마 전에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미래는, 그러니까 20세기가 본 21세기는 오웰(1984)이 아니라 헉슬리(멋진 신세계)의 예견대로 맞아들어갔다는 것. 세상은 감시하기보다는 표현하는 식으로(sns의 등장), 규제하기보다는 방종하는 식으로(정보의 범람) 나아갔다는 것.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에 언급된 '미래상'은 그 전부가 오늘날에 통용된다고 봤다. 공유, 균등, 안정. 세계국가를 구성하는 세 표어다. 만인은 만인의 공유물이고, 문명의 이기는 모든 이들의 안락을 위해 극한까지 방종된다.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란 없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격정'이라는 걸 느낄 수도 없다. 이것은 현대인이 소비가능한 욕망만을 취한다는 한병철의 지적과 동일하다. 소비가능하지 않은 욕망, 즉 '동일자'와 대비되는 '타자성'에 해당하는 욕망, 격정과 정념들은 '지워진다.'
무스타파 몬드 총통과 존의 대화에서는 '신'을 주제로 한 대화가 오간다. 바로 인본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당위윤리와 현실논리의 대립이다. 사람들은 사유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 그로부터 반성하지도 않는다. 다만 당장 도피할 구석이 있고, 그것이 언제나 용인된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나 이 세계나 문명의 비인간성에 대립하는 인본적 가치가 있다. 바로 '책'이다. 얼마 전 봤던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됐었는데,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역시 그러한 견해가 확인된다. 신이 죽어버린 시대에서도 독서는 구원의 매개가 된다. 존이 인용하는 셰익스피어의 구절들 만큼 세계는 인간에게 폭넓은 사유와 숭고한 경험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술했듯 그런 인본적인 가치마저 '지워지고' 단순한 유희로 전락되는 세상이다. 중,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책따'라는 말이 유행이라는데 결말부에 존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조롱하던 군중들은 구조 속에 매몰되어 자아의식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바보들과 하등 다르지 않아 보인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고? 개인은 구원받을 수 없고, 타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끊일 줄 모른다.
또한 작중에서 '죽음'은 자연한 생리현상 중 하나로 언급되는데, 이 부분이 중요한 지점이다. 철학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죽음의 의식이다. 쉼 없이 다가오는 죽음으로부터 영원불멸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치열한 사유. 그런데 죽음의 의미가 '지워진' 사회에서 철학은 무용해진다. 사람들은 평생 젊고 생기 넘치는데, 어떻게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과 세계를 사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한 멋진 신세계에서 만인은 고독하지 않다. 고독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죽음의 가치 해체와 고독의 부재에서 일말 성찰은 불가능해 보인다. 얼마 전, 현대인이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봤다. 유치한 것은 현대인의 특징이고, 이것은 고독의 부재와 반성의 얕음에서 나타난다는 것, 과연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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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프랑스에서는 조지 오웰의 '1984'가 베스트셀러라는데,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역시 감히 현대인의 필독도서여야 한다고 주장해보는 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