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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4년 만에 다시 읽었다. 세 달에 열 권이니까 통상적으로 40권 밖에 소화해내지 못 할 계획이었다는 소리 아닌가...
원래 컴퓨터로 롤리타 e북 읽으려고 크레마루나 다운받는 거 다리다가 집어들게 됐는데, 내용이 넘나 쏙쏙 잘 들어오는 게 아니건가. 그렇게 스피디하게 한 30여 페이지까지 읽고 있다가 다운로드 다 돼서 좀 미루고, 다시 읽고, 미루고, 읽고 하다가 근 일주일에 걸쳐 읽었다. 오늘 200페이지 넘게 읽었으니까 사실상 오늘 다 읽은 셈이다. 뭔가 강박적으로 독서력의 향상을 바라고는 있는 습관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딘가 싶기도 하고.
3부에서부터, 그러니까 그르누이가 그라스에 도착했을 무렵부터의 문장들을 읽을 때는 4년 전에 읽었을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땐 좀이 쑤신 사람처럼 계속 보고 또 보아도 집중하기 어려웠던 문장들이(학생부에 적을 독후감 내용 때문에 읽었던 거 같다) 굉장히 쉬이 읽혀졌다. 별 문제 없이. 내가 독서할 때 느끼곤 하는 그 특유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는데 그게 점차 줄어드는 거 같아 기부니 좋다. 아무튼 뭐든 꾸준히 하면 는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재밌기도 하고.
개인적 감상을 좀 더하자면, 그르누이를 구태여 그렇게 악마의 자식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했다. 뭔가 설명력이 좀 부족하기도 하고. 읽다보면 주세페 발디니나 에스피나스 후작 같은 사람들한테는 일말의 정이 들법도 한데, 다들 그렇게 막 비극적으로 죽으니까 좀 안타까왔다. 정감이 들려고 할 때 나타나는 그 악마적인 징후가 사실은 좀 짜증나는 부분이었다. 그저 증오, 냉소, 경멸 ... 아무튼 그르누이는 가련하기 그지 없는 인물이라는 걸 잘 알겠다.
또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들이 좀처럼 그 위대함을 실감하지 못하는 후각이라는 영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냄새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기 그지 없는데 이렇게 개발이 덜 되어서야! 이런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 라는 식으로, 아마 작가는 이런 '인간들의 무지함'에서 비롯한 감정을 세련되게 파고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르누이처럼 약간의 경멸감도 가졌겠지 싶다. 그런데 막 그렇게 어리석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나. 이것은 인간종의 천성적인 한계 아닌가. 코는 제일 빨리 피로해지는 감각기관이고, 그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특질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고독은 천재의 운명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르누이는 분명 인간종의 한계를 거스르는 천재이자 '초인간'이었지만 그 역시 평생에 걸친 고독과 오직 자신만이 특별한 존재라는 그 운명을 거스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많은 인간들이 자신의 평범함을 거스르지 못하듯 그렇게..
뭐 역시 재밌었다. 한때 역사덕후였던 내게 18세기 유럽의 분위기를 여실히 자아내어줬다는 점에서도 후한 평을 주기 충분하다. (이번 기회에 대항해시대나 다시 할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