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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지옥
도이 다카요시 지음, 신현정 옮김 / 새움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 : 친구지옥
지은이:
저자 도이 다카요시 土井隆義는 1960년 야마구치 현
출생. 오사카대학 대학원 인간과학연구 과 박사과정 중퇴. 현재 츠쿠바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과학연 구과 교수. 저서로는 『비행 소년의 소멸-개성
신화와 소년 범죄非行少年の消?個性神話と少年犯罪』, 『개성을 강요당하는 아이들?친권의 변용을 생각하다個性を煽られる子どもたち?
親密?の?容を考える』, 『친구지옥?분위기를 읽는 세대의 서바이벌友だち地獄?‘空?を?む’世代のサバイバル』이 있다.
기획 및 번역 신현정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생활상담협회 대회협력위 원장,
한국일본교육학회 총무이사 그리고 한국진로진학연구회 부회장을 맡아 청소년과 대학생들을 위한 진로교육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는 일본
가나가와치과대학 특임교수와 중부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일본어 능력시험의 달인이 되는 법』, 『간바레 일본어 능력시험』,
『파트별 파워풀 일본어 단어장』이 있으며, 역서로는 『기적의 대학?국제교양대학은 어떻게 인재를 키워내는가』, 『샐러드 기념일』, 『F4
선언일기(성공하는 사람들의 언어습관)』 등이 있다.
출처: 교보문고
http://book.naver.com/product/go.nhn?bid=10336968&cpName=kyobo&url=http%3A%2F%2Fwww.kyobobook.co.kr%2Fcooper%2Fredirect_over.jsp%3FLINK%3DNVB%26next_url%3Dhttp%3A%2F%2Fwww.kyobobook.co.kr%2Fproduct%2FdetailViewKor.laf%3FmallGb%3DKOR%26ejkGb%3DKOR%26linkClass%3D%26barcode%3D9791187192046
내용:
책은 모두 5장으로 1장. 이지메를 잉태하는 ‘친절한
관계’ , 2장. 자해 소녀들을 통해 본 ‘고통’의 계보 , 3장. 은둔형 외톨이와 모바일 소설 , 4장. 자기 내비게이션화되는 휴대전화 ,
5장. 인터넷 자살의 뒤틀린 실제성. 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에게 나타나는 인간관계에서의 문제점과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중압감의 문제 그로인한 고통스런 삶을 ‘친절한 관계’를 주제로 실제 사례와 함께 설득력 있게 설명한 책입니다. 책에서는
“오늘날 인간관계의 문제는 단절이 아닌 과잉에 있다.”고 주장하며 그로인해 이지메, 자살, 인간관계 단절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 구절만큼은 꼭 기억해두고 싶어. 라는
마음이 든 부분을 정리해 뒀다가 후에 찾아 보렵니다.
P11
[노부타를 프로듀스]에 묘사된 것처럼 '대립의 회피'를 최우선으로 하는 젊은이들의 인간관계를
본고에서는 '친절한 관계'로 지칭하고자 한다.
p13
평론가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일찍이 설파했듯 일본인에게 '분위기'라는 것은 '절대성을 가진
괴물이다.특히 요즘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분위기'는 '친절한 관계'를 매개로 그 절대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급속하게 첨예화되고 있다. '친절한
관계'가 성립된 곳에서 분위기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은 그곳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 분위기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리러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친절한 관게', 그 자체가 분위기의 흐름을 결정하는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거군요. 미쳐 날뛰더라도
말입니다.
P15
순수한 관계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실제 관계에 만연해 있는 허구적 감정과 같은 인간관계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휴대전화라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연결함으로써 '자기승인'을 휴대하고 '자기안정'을 도모한다. 따라서 휴대전화는 위태로운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GPS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 in the pool ]이라는
소설에 보면 "이라부"라는 명의인지? 바보인지 헷갈리는 정신과의사를 찾아와서 치유를 받는 현대인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야기 마다 현대인들이
모두 조금씩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이 나옵니다. "도우미" 편중 외모에 집착하는 레이싱걸 출신의 연예인 지망생 "히로미"는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제 모습을, 핸드폰 문자에 집착하는 고등학생 "유타"에게서는 블러그에 신경쓰는 제모습을, 화재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는 르포작가
"요시오"의 모습에서는 진짜로 가스불,전기불 걱정하는 제 모습을 봤던 기억이 나네요.
P22
그러나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의 생각 차가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상대의
판단에 관여하고 싶지 않고, 애당초 대립의 씨앗이 될 만한 것은 피하고 싶다 하더라도 "그렇구나."라는 식의 애매한 수긍만 존재하는 대화에는
자연히 한계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에 대해 신문기자 오리이 유카는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빈말이다.'라고 말한다.
- 상대방의 말에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좋은
대화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그 후에 대화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매하게 대답을 하고 대화를 끝낸다면 오리이 유카가
말한대로 대화가 아니라 공허한 빈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영림씨의 저서[내 아이의 자신감 자존감]중에 " 민주적 양육 방식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되 부모의 의견도 똑같이 존중한다" 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상대방의 의견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도 중요한 것이지요.
P32
사람들은 아무리 처참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도 자신이 명백히 관여한 것이 아니라면 좀처럼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기 힘들다. 더욱이 실제로 이지메를 수행하는 악역은 특정 학생들이 떠맡고 있다. 그들의 존재 덕분에 무관심층 학생들은
"이지메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책임이란 단어가 응답하다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볼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상황을 눈앞에 두고도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 자체가 실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조직 속의 개인에 대해 이야기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아이히만]이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에서 초점을 비인간적인 제도속에서 개인이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반성의 촉구에
두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살펴보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하기만 하는 것은 평범한 삶에서 범할수 있는 악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스스로 그 질문을 포기하면서 기능적으로만 삶에 응대함으로써 악이 된것 입니다. 방관자나 무관심도 "악" 이라고
생각합니다.
P38-39
이런 이유로 '친절한 관계'를 영위하는 학생들은 이지메를 당해도 웃고, 이지메를 해도 웃는다.
방관자들 역시 그것을 지켜보며 웃는다..............
오히려 이지메의 의미를 놀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시켜 적당히 웃어넘김으로써 삐걱거리는 자신의
인간관계를 은페하고 , 용납하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려 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농담처럼 대하는 태도는 비참한 경우에 놓인 사람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행동 방식으로 ,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의 하나이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일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하고 말입니다.
P47
그런데 획일적인 지식의 전달과 달리 '살아가는 힘', '생각하는 힘' 또는 '개성의 중시'에는
도대체 어떤 과제를 어디까지 달성하면 좋을지에 대한 명확한 평가 기준과 판단 자료가 없다. 필연적으로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방법도 제시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자신의 잠재적인 가능성과 적성을 주체적으로 발견하고 각각의 개성에 맞게 그것들을 신장시켜야만 한다. 바꿔 말하면 1980년대
이후의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 아이들에게 너무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잘 적응해 나가는 아이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P54-55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일에 깊이 개입하려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강요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친절한 관계'는 최대한 자신이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자신에게 친절한 관계'이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친철한 관계'의 규범에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거센 반발이 일어난다. 이지메의 대상도 그 속에서 선택되는
것이다.
-오리떼 속에 백조가 구박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요.
자신과 다른 타자에 대해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합니다.
P60-61
이지메는 너무 비대해진 개인과 개인의 충돌이 아니라, 사회학자 D. 리스먼이 [고독한 군중]에서
명명한 '타인 지향형'의 인간관계, 즉 개개의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확인조차 어려운 사람들의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그 관계 자체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어버린 사회병리현상에 기인한 것이다.
-왕따가 점점 바뀌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니
단순히 부적응자가 약한 아이를 찾아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기존의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P67
일상의 사건들은 나열할 뿐, 사유가 들어 있지 않으면 비망록은 될 수 있어도 일기는 될 수 없다.
일기의 본질은 자기와의 대화에 있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러한 일기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다. (베이컨 수필집.1968) "신기하게도
인간은 바다를 여행하면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늘과 바다 뿐인데도 일기를 쓴다. 그러나 육지를 여행할 때는 보이는 것이 매우 많은데도 대개 그것을
기록하지 않는다."외부의 자극에 사로잡힌 나머지 ,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을 때 사람들은 일기 같은 것을 쓰지 않는다.그런 의미에서
일기는 자기의 분신과도 같다."
- 블러그를 하는 블러거로써 블러그는 일기와 비망록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군요. 익명성이 어느정도 보장되지만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고 나의 이야기지만 누군가 독자를 전제한다는 것도 그렇고요.
P80
다카노와 난조가 느끼는 사고의 차이는 이러한 사태의 추이를 대변한다. 사상은 이질적인 세계를
입력시키는 수단이다.존재의 근거를 사상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견해를 쉽게
받아들입니다.그리고 자기 안에 흡수된 세계관은 자기의 상대화를 촉발한다. 이질적인 타자의 시점에서 자기의 모습이 재조명되기
때문입니다.
-고전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집니다. 고전 문학이나
철학서를 아이들에게 읽게 하는 것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112
'자기지옥'의 악몽
2004년 이바라키현의 미토시에서 19세의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집에서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청년의 상태와 이 사건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중첩되어
발생했기 때문에 , 은둔형 외톨이 자체가 근본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집에 은둔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있을 곳을 제공해주는 가족은
생명줄 같은 존재이므로 가족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에 가깝다.
결국 이 사건은 은둔 행위 자체가 직접적인 범행 동기가 되었다기보다는 , 은둔하던 청년이
불행하게도 더 이상 집에 있는 것조차 어려워지자 궁지에 몰린 자신을 비관한 나머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이 그만 은둔에서 벗어나
사회에 나가라고 그를 재촉하기 시작하자, 자신의 생명줄과 같은 그들을 죽여서라도 은둔에 집착하고자 했던 청년에게서 우리는 기이하리만치 강한
공포심을 읽어낼 수 있다.
-사실 이런 쪽으로는 깊게 생각해본적도 없고 접한적도
없어서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P119
문부과학성이 2006년 실시한 조사에서도 중학생이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 중 첫 번째로 꼽힌 것이
'친구관계의 실패'였다. 제1장에서 서술한 것처럼 "지금 이 집단에서 실패하면 나는 이제 끝이다."라고 여기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이탈하는 것은 그대로 사회생활에서 퇴출당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 조금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중학생이 됩니다. 지금 잘
안풀린다고 세상이 멸망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 아이들이 힘들 때 어떻게 하면 저에게 문제를 의논하게 할 수 있을까요? 엄격한 가부장적인
아버지상도 안된다하고, 친구같은 아버지상도 안된다하고 ... 좀 더 신경써서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P156
시선의 불만, 시선의 불안
과거의 청년들이 '나를 보지 마'라고 외쳤다면 요즘의 젊은이들은 '나를 바라봐.'라고 외치고
있다. 과거 청년기의 주요한 테마 중 하나는 부모를 비롯한 주위의 시선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에 있었다. 즉,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거북함 혹은 '불만'에서 어떻게 해방되는 가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무도 자신을 '안 보고 있을지 모른다.'
생각에서 비롯된 두려움 혹은 그러한 '불안'쪽이 강해지고 있다.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마음껏 받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고 있다. 요즘의 청년들에게는 그쪽이 훨씬 절실한 문제인 것이다.
- 요즘 청소년들은 불안합니다.
이후 4장. 자기 내비게이션화되는 휴대전화 ,
5장. 인터넷 자살의 뒤틀린 실제성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써 물론 중요하지만 1.2.3장에서 더 기억해둘 글귀들이 많아서 이정도만 정리해
둡니다.
감상:
각 장마다 실제 사례와 함께 문제와 원인이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어서 설득력 있게 다가 왔습니다. 책의 전반부는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뒤로 갈수록 현대인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껴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