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위로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주관적 서평임.



📚다람쥐의 위로라는 책이다.동화책처럼 읽으면 동화와 같아 보일 것이고,철학이나 어떤 물음을 던진다면..깊이가 있는 책이 될 것 같은 양면성을 가진 책이다.

얼마나 깊게 들여다 보는가?의 문제인 듯 하다.
한줄을 적어서 다람쥐의 위로나 느낌을 적을 확률이 많아 보인다...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그렇게 보인다는 뜻이다.

📚책의 내용은 다람쥐에게 위로는 받는 동물,곤충들과의 대화가 글의 내용이다.

🔹왜가리는 넘어지는 법을 모르는 어쩌면 한번도 절대로 해 본적이 없는 자신이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밧디와 지렁이는 서로 다름을 인식함으로 자신을 아는 존재들이 된다.

🔹다람쥐와 개미의 대화가 처음부터 좀 인위적이게 느껴졌다..이유는 끝에서 나의 느낌을 적도록 하겠다.
다람쥐는 현실적이고 직관적이기에 위로를 현실적으로 진구들에게 해 준다.그러므로 친구들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해결해 준다.

🔹코끼리는 자신을 계속 시험하는 존재다.나무 위에서 떨어지고 멀리서의 모습이 궁금하다.

🔹거북이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존재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에 불안한 존재....원하지 않는 시선이나 물음에 흔들린다.

🔹다람쥐가 가지고 있는 꿀단지는 항상 친구들을 대접하고 같이 먹는 행복을 나타내는 존재로 보인다.
끝에서는 다람쥐의 이상향...또는 안전함과 편안함을 가지게 해 주는 소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람쥐나 동물들이 쓰는 이상한 편지는 "자아와 현실의 오고감"인 듯 보인다.
전하지 못하는 마음...또는 자신을 위한 위로의 글이다.


📚이런 동물들과 내용을 보면 다람쥐의 주변의 동물들과 곤충들은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다.그 중에서 다람쥐는 위로를 해 주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은 "개미"라는 자아를 만들어 내어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즉,다람쥐의 위로가 주는 책의 내용이 아니라고 보인다.
나의 눈에는...다람쥐가 받아야 하는 위로로 보인다.

정작 자신은 누군가에게 위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자신의 내면의 "개미"라는 허상과 대화하고 있는 어쩌면 지금의 우리 인간들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다람쥐의 위로는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인 동시에 자신에게도 주어야 하는 위로라고 적으며...독서노트를 덮는다.


🔖진짜는 다람쥐가 주는 위로가 아니다...다람쥐에게 우리가 주어야 하는 우리의 위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주관적 서평입니다.


소크라테스의변명 이후로 만나는 아리스토텔레의 수학사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이 지성들의
생각의 깊이를 또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1.먼저 수학사의 배경을 알고 수학이 왜 필요했는지를 따라 가보는 것이 책의 핵심이라고 난 이해했고 그 길을 나의 생각으로 적어본다.

수학사의 배경은 그 당시에 수백,수천의 이르는 도시국의 탄생으로 직접민주주의는 참여 정치로 이어진다.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여 "논쟁과 토론"을 거쳐 다수결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결정은 시민들의 결정이 재판관의 결정과 같았다
그 예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이런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대중을 설득할 기술이 필요했고 그 필요가 수학의
기본이다.즉 설득의 기술이다.
수사의 정의는 말이나 문장의 꾸밈,더 묘하고 아름답게 하는
일,또는 기술이다.
기술이기에 그 설득의 원리와 방법이 필요하여 탄생한 연구와 학문이다라고 이해했다.


2.소피스트의 등장
소피스트는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전통신념의 거부를 통하여 수사학은 도덕이나 종교의 속박에서벗어난 독자적인 원리를 추구하는 과학적인 기술로 발전한다.

하지만 소피스트들의 사실증명의 소홀,청중,배심원의 감정만을 부추기겨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점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비판한다.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기존의 민주정치의 토대로 올바른 설득의 기술 수학사을 통해 정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길을 추구하게 된다.


3.수사학의 변증학은 짝을 이룬다.

■변증학은:기존의 참에서 밝혀진 명제를 전제로 사용해 결론이 참이라고 받아 들이게 하는 기술이다.즉 변증학은 절대적인 참과 거짓이라는 점이다.
■수사학은:개연적인 참과 거짓을 다룬다.
만일 수사학은 절대적인 확실한 증거가 있는 문제는 연설가가 할 일이 없다는 말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즉 수사학은 개연성을 찾는다는 점이다.


4.수사학의 개연성과 쓰임

수사학은 변증학에서 사용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즉,개연성을 증명하는데 동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한다.●
연설가의 성격,청중의 심리,연설의 문체와 전달법등이 포함된다.
수사학은 여러사례를 들어 개연성을 밝히는 예증이 되고 삼단논법,생략삼단논법이 변증학에서는 절대적인 참인 증거가 수사학에서는 "개연성을 가진" "설득력이 있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사학의 증명은 단지 개연성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증명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또한 어떤 개연성 있는 결론을 도출해내고자 사용되는 전제들은 엄밀하게 명제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미묘한 수사학적인 용어들은 아리스토텔레스도 표현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변증학에서 통용되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게 된 원인이라 나는 이해했다.

☞그렇기에 연설자는 언제나 이러한 차이점을 알고 있어야 하며 에토스,파토스,로고스..
즉,관습,관용,감성,논증을 이용하여 청중을 설득하는 기술이 필요하며,선전을 위한 연설과 법정연설,조언을 위한 연설로 구별 된다.

5.연설자와 대중의 중요성
수사학은 이렇게 설득을 하는 기술이다.연설자의 기술임과 동시에 듣는 대중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나의 생각은 연설자와 대중이 수사학이라는 기본적인 정의와 맥락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크라테스의변명에서 소크라테스가 보여 준 설득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텍스트는 쓰고 지울 수 있지만 말이란 생각의 집약체로써 뱉고 나면 지울수 없기에 말로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소크라테스의변명을 수사학의 설득의 기술과 대조하며 다시 읽어 보면 어떨까?라고 독서노트에 적으며 마무리한다.

옛 지성의 책을 보름동안 읽어가면서 느낌점은 한번은 읽어보고 깊게 생각에 빠져 보는 시간도
지금의 나에게 현자의 돌을 찾아 가는 시간임을 느낀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과연 어떤 것을 볼지...궁금한다...내가읽어 보는 인친분들의 서평도..나에게는 그런 의미임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오리지널 커버 에디션)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주관적 서평입니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2009년 초판 발생되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사랑받는 책이다.
나 또한 15년 전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을 적은 독서노트를 찾아 보게 된다.

마음 아팠나 보다...15년 전 그 때 당시에도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 제제에게 이렇게 적어 놓은 글이 있다.

🌟너의 아픔을 아는 사람들이 커서 어른이 되는 세상을 지켜 보겠다...라고 나의 독서노트에 쓰여져 있다.

하지만 15년의 지난 세상이 내가 보기에는 제제가 바라본 세상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무섭다고...
✅무서워서 피한다고...

그 아이들이 만드는 미래의 우리 사회는 무섭고 두려운 사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아이들은 누가 키운 것인가?
그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아닌가?
지금의 기성세대가 키운 아이들이 무섭고, 피하고 싶은 존재로 만든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들이다.

무섭고,피하게 만든 우리의 잘못은 없는 것이고
아이들에게 책임을 넘기는 모습은...

이 책에 나오는 제제를 악마라고 말하고,제제 자신이 악마라고 믿게 만드는 인물들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난 생각이 든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제제가 마음에 품어 온
순수함이며,그만의 쉼터였다.
세상이 자신을 악마라고 취부할 때 유일하게 자신을 위로해 주는 자신의 거울이었다.

제제가 천사라고 불리는 경우는 제제가 자신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줄때 뿐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지금의 우리의 아아들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과 지금의 현실이 교차 되어진다.

한 그루의 나무가 성장할 때 햇빛,물,공기도 필요하지만,관심과 사랑을 받은 나무가 더 건강하고 뿌리깊게 성장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아는 것은 실천을 하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고 고민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로 삼아 인생의 길을 선택한다.

☀그 선택지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 하여 태어난 존재들이 아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나는 것이라면, 조금의 책임을 희석 시킬 수는 있을 것이지만,그 아이들은 그냥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래서 소중하게 키워나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누구의 아빠,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존재는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끝까지 지켜주고 사랑을 주며,충실하게 키우겠다는 약속이자 의무가 아닌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죽음은 의무나 책임 따위는 없다.
게임에 빠져 아이를 굶겨 죽이고,자신의 부족함을 폭력과 무책임으로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아이들이 악마인가? 사회나 성인들,부모들이 악마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저자의 자전적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지금도 커가는 우리의 아이들의 모습이다.
과연 지금의 우리 사회를 저자가 본다면 어떤 나무를 심게 될까?라고 독서노트에 적으며, 마무리한다.

🌟제제가 만난 뽀르뚜가라는 나무를 지겨주는
영혼의 천사들이 많은 세상을 꿈꾸어 본다.

지금의 우리가 누군가의 뽀르뚜가임을 잊지 말기를 빌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개인적,주관적 서평입니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터부시 하는 부분의 소재를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영혼의 파괴
✅의미없는 나쁜 죽음

두가지를 가지고 글을 전개해 나간다.
이 글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의 집에는 이러한 인간들이 살고 있다.

한마리의 하이에나로 불리는 동물같은 아버지.
동물에게 길들여진 아무생각 없는 아메바로 불리는 어머니.그리고 아직 짐승이 되지 않은 순수한 동생 질...그리고 주인공인 "나".....

짐승같은 아버지는 사냥을 해서 죽음을 집으로 가지고 들어온다.동물들의 박제된 시체를...

✅그리고 주인공의 집을 죽음의 방주로 만든다.

주인공이 말하는 우리집에는 시체는 있어도 나쁜냄새는 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역설적인 문장이다.살아가는 집에 냄새가 없다는 것은 죽은 공간이라고 난 생각한다.

아버지의 짐승같은 폭력에 굴복한 어머니는 주인공은 아메바로 인식한다.아무 생각이 없고,동생과 자신에게 어떠한 사랑과 애정도 주지 않는다.

주인공의 희망은 오직 순수한 영혼의 눈빛을 가진 동생 "질"을 지키는 것이다.여기서 의미없는 나쁜 죽음이 주인공과 동생 질의 눈앞에서 일어나면서 책은 또 다른 짐승을 한마리를 만들어 낸다.

✅동생 "질"의 순수함이 짐승의 냄새와 눈빛으로 변해 간다.

아버지와 같은 "큰놈들이 작은 놈들을 먹어 치우는 정글의 법"에 물들어 간다.
그런 동생을 곁에서 지켜 보는 주인공인 "나"는
아직 영혼의 불씨를 가진 소녀로써 물들지 않은체 세상과 죽음의 집에서 희망을 키워 간다.

하지만 그 불꽃의 크기가 점점 줄어 들어간다.
엄마의 방관과 아버지의 짐승같은 눈빛과 동생이 보여주는 폭력성으로...

이 소설은 가족의 붕괴가 어떤식으로 어린 영혼들을 죽이고,폭력을 되물림하는가?라는 주제와 큰 뜻을 같이 한다.

난 최근 읽은 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에서
어린시절의트라우마,폭력,부모의무관심,
사랑없는 보살핌이 살인자를 만들고 그 시초가 동물의 학대와 살인임을 보았다.
이 책에서 나오는 동생 "질"또한 작은 동물에서 큰 동물들을 죽여 나가면 그 잔혹성을 키워간다.

그리고 아버지와 사냥을 다니며,죽일 수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것들,떠돌아 다니는 어떤 것으로 규정 할 수 없는 "악"이라는 것은 그렇게 인간을 짐승으로 만든다.

그 짐승을 풀어 놓지 않은 주인공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며 인간성을 유지한다.
단 짐승들이 모르게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사랑과세상의 지식을 동생을 위해 흡수한다.
스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하게는 적지 않겠다.

이러한 노력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희망과 좌절속에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주인공의 내면에는 다른 짐승이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와 동생이 가지고 있지 않은 "날카로운 발톱과 인간 위에 있는 짐승" 전설속의 동물...

주인공의 짐승과 아버지의 짐승의 싸움에서 주인공은 체력과 크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그리고 포기하는 순간...자신이 가진 미래의 자신이 보낸 메세지...

🔖"미래가 너를 지켜 보고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총한자루로 구원 받게 된다.

아버지를 제외 한 자신과 동생...어머니까지..

이 책은 엔딩에 짐승의 죽음을 넣어 놓았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짐승이다.그래서 잔인하다.
하지만 잔인하다고 다 죽여 버린다면 죽이는 자의 폭력성은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을 만났다.

충실한 마음,따스한 마음을 가진 짐승들도 많다.하지만 그 짐승이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없애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짐슴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할까?라는 의문과 어린영혼을 지키는 어린영혼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으며,그 영혼의 외침을 충실하게 바라보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라는 걱정과 짐승같은 부모 밑에서 짐승이 되어 가는 어린 영혼들이 얼마나 많을까?라고 독서노트에 적으며 이 씁쓸함을 마무리한다.

🌟인간은 왜 두가지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 나게 만들었고,저런 짐승들과는 어떻게 싸워야 하나?라는 질문을 저 위에 있는 큰 분이라고 불리는 존재에게 물어 보고 싶은 하루다....

🙏충실한 마음뿐인가?🙏...해답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적인 식탁 -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 서평입니다.


난 집에서 딸같은 아들이고,나의 누나는 아들같은 딸이었다고 말씀 하신 어머니의 말을 이 책을 읽고 나면 가족의 식탁...즉 음식을 하는 사람,하지 않는 사람의 구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밥을 한 자리에서 같이 먹는다는 것은 귀한 인연이다.아무나와 그 자리를 함께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자리에 식탁을 지배하는 사람이 있다면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고역이며,권력의 자리가 된다.회사의 회식에서 보면 잘 알 수 있다.
제일 신입사원은 제대로 밥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숟가락부터 술까지 식당의 종업원과 닮아있다.

그러므로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어떻게,왜,누가,어디서,언제,먹었는지에 대해 인간의 이야기는 먹기와 관련되어 있다.

사회에서 성차별은 성역할의 거부가 여성의 의무 불이행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된장녀,스시녀,김치녀 등의 단어는 여성의 밥과 말이 억압당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또한 여성의 먹기는 인사말이 된다.

"살 쪘네" "살 빠졌다"의 인사는 어떤 의미인가?
지금의 사회에서 살이란 숨막히는 기준이 된다.
먹기는 숫자화 된다.몸무게로 그리고 숫자는 스트레스가 되고 인간관계에서...여성의 살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된다.

게으르다,둔하다,자기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개념으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자존감의 기만이다.

이러한 개념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가볍게 취급된다.계집애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관념으로 개인을 규정한다.
이러한 관념은 가부장제란? 유교 사상을 만나 어머니의 밥으로 아버지 법을 굴러가게 하는 제도..

즉 밥만 남기고 육신이 쌓는 침묵의 무덤이 된다.속된 말로 밥만 하다가 평생을 산다는 말이다.

만드는 여자는 역사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내고 있을까?
루터를 예를 들어보자.루터의 뒤에는 그의 부인 가타리나 폰보라다의 식탁이 있었다.
루터의 집의 모든 손님과 경제적인 활동은 부인의 식탁에서
시작된 영광이다.그런 부인의 헌신과 삶은 희석되어 사라진다.

현재에서는 복잡한 얼굴로 그 양상을 달리 보여준다.아들의 여자에게 "되바라진"며느리는 걱정의 대상이 된다.이유는 아들이 밥도 못 얻어 먹을 걱정을 하는 것이다.그렇게 아들의 엄마는 시어머니가 된다...

마치 자신은 여성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여성에게 보상받고,여성에게 화풀이하고여성들에게 위로 받으려는 모든 착취 행위를 여성이 감수해야 도리를 다한 샘이 된다....
명절의 음식과 생일상....그리고 명절증후근으로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영부인 통하여 퍼스트키친으로 묘사된다.

"주부9단" "장보는영부인"의 묘사는 내조라는 말로 포장되어 언론이나 이미지를 만든다.

일상에서는 여성이 음식으로 대상화된다.
앵두같은 입술,작은가슴(건포도),조개(성기)등으로 먹는 음식으로 불린다.꽃뱀도 되었다가 골뱅이도 된다.

즉,무의식적으로 먹는다는 대상으로 표현된다.
여성의 몸은 고기이자 꽃이다.

살로 비유되는 사물화는 성희롱부터 살인까지 연결되어 있다.

반대로 남성은 대상화가 아닌 소망하는 이미지로
불린다.바나나,소세지등 그리고 공구나 기계에 비유된다.총,카메라의 물건으로..

그렇기에 지금의 몰래카메라는 남성의 성기와 눈을 합친 범죄다 라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대상화는 젠더의 문제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노동을 통하여 음식을 사고 먹는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이러한 음식을 먹는 시간 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빈곤의 실체는 먹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닌 먹을 시간이 없다는 타임푸어이다.

남의 먹는 시간까지 제 시간으로 끌어오는 사람이 권력자이며,지금의 정치인들,상위 포식자들이라고 난 생각한다.

가난하고 배고픔 사람이라고 해서 욕망마저 가난해질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최근에 읽은 우리의 시간은 공평 할까라는 책이 떠오른다.전혀 공평하지 않다..먹는시간조차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그렇게 음식도 계급이 되어 가는 것일지도 모르다.최근에 본 책에서 빈곤층이 더 비만으로 인한 질병률이 높아 수명이 짧다는 내용을 보았다.
또한 나는 아버지를 통하여 암 환자의 죽음은 먹지 못하여 죽는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먹는다는 것은 나의 식탁에 죽음을 가져 와서 나를 채우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차별에는 관습으로 위장한 것도 있다.
그러한 관습은 산업이 되어 차별을 더 부추기는 경우로도 생겨 날 수 있다.
결혼식의 신부를 장인어른이 손을 잡고 하얀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넘겨 주는 모습에서...

하지만 인간은 인간에게 상처받고 인간에게 극적인 순간에 구출되는 존재이기도 하기에 살아 나가는 힘을 얻는다.

그 힘을 난 나의 소박한 식탁에서 찾고 싶다.

주방이라는 공간이 여성의 자리가 아닌 가족 구성원의 전체의 자리이기를 소망한다.
더 이상 먹는 입,말하는 입,사랑하는 입의 권리를 생각하는 정치적인 식탁이 아닌 타인과 온전히 관계 맺을 수 있는 그러한 소박하고 따스한 식탁을 생각나게 하는 책을 만났다.

개개인의 식탁의 작은 행복이 구속된 개인의 권력 구조를 흔들 것임을 저자와 같이 소망하며
독서노트에 기록하며 마무리한다.

오늘의 우리집 식탁은 내가 만든 닭백숙이다.
나만의 주방이며 젠더와 권력의 차이는 없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