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피아노 - 지나간 사랑은 모두 아프다
박종훈 지음 / 포북(for book)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악의 최대 장점은 무엇일까. ‘정답’이 없다는 점 아닐까. 음악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음악의 역사적 배경, 이론적 지식 같은 객관적인 진실 이외에는 듣는 이의 주관적 감정이 우선한다. 애초 작곡가가 기쁜 마음을 담아 작곡한 곳도 듣는 이에 따라서는 슬픈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자유로운 해석과 감상이 가능하기에 음악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만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새드피아노>에 담긴 여러 스토리들은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감정을 담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땐 일반 가요와 달리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리기가 힘들다. ‘가사’가 없기 때문. 하지만 그 음악을 ‘특정 상황’에서 듣거나 ‘특정 상황’을 상상하며 듣는다면 해당 음악과의 깊은 교감을 이룰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특별한 음악감상’ 기법을 몸소 소개하고 있다.

 

나도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다. 물론 취미이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피아노를 꾸준히 치고 있다. 이런 연유로 ‘피아노’ 관련 곡들이 눈에 띄었다. 책의 제목과도 같은 ‘새드피아노’란 곡을 들으며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있었다. 슬픔을 간직한 피아노가 있었는데 왜 그 피아노가 슬픔을 간직했는지 가상 스토리가 소개돼 있다. 과거 주인의 사랑을 받던 피아노에서 피아노 가게에 버림받은 신세로 전락한 ‘새드피아노’. 그 피아노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 건드려줘야 도레미 소리라도 낼 수 있는 나’, ‘피아노 소리가 안 나도 좋아, 그 아이만 날 찾아와준다면’ 말 못하는 피아노지만 슬픈 스토리를 머금게 되니 물상에도 감정이입이 됐다. 우리 집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치던 키보드가 있다. 그 키보드는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추억이 묻어있는 키보드가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이다. 종소리가 나오는데 의미 없던 이 울림이 마음을 녹이는 선율이 됐다는 표현이 공감이 됐다. 듣는 이의 감정을 녹여버리면 종소리도 의미있는 선율이 되는 것. 복잡한 기교를 배워야 소화할 수 있는 피아노 곡들이 있다. 이 곡도 그 중에 하나인데 그 복잡한 기교를 포기해야 비로소 연주 자격이 있다는 말도 울림을 준다. 인간관계도 사랑도 이와 비슷하다. 가식을 버려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에. 그냥 들으면 단순한 종소리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인생의 심오한 진리가 보인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작곡가의 사연이 담긴 곡들도 스토리를 들으니 음악이 깊이 다가왔다. 쇼팽의 ‘즉흥 환상곡’은 폰타나라는 동료 피아니스트에게 헌정된 곡이다. 출판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쇼팽의 부탁과 함께 헌정됐지만 결국 그 비밀스런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비밀스런 말이 실제로 지켜졌다면 사람들은 이처럼 값진 음악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밀이 지켜졌더라도 쇼팽과 폰타나만 만끽할 수 있는 값진 비밀로 남았을 것이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들으면서는 저자와 다른 감상에 젖었다. 저자는 리스트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라는 시에 붙인 이 곡을 이렇게 해석했다. 이탈리아를 사랑한 리스트가 정열적, 원초적인 사랑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난 오히려 순수하고 조심스러우며 플라토닉한 사랑이 느껴졌다. 정답은 없다. 같은 곡 다른 감상이 재미있을 따름이다.

 

이 책을 통해 음악의 좋은 감상법을 배웠다. 음악에 나만의 스토리를 담으면 음악을 더 깊이 느끼고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 대중가요는 자연스레 가사를 통해 음악을 느끼고 몰입한다. 반면 클래식 음악은 가사 없이 멜로디만 들을 수 있기에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정답 맞히기’에 익숙한 우리는 클래식을 좀 어려운 분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클래식 음악에는 정답이 확실히 없으며 음악 앞에서는 인간의 어떤 논리도 한없이 빈약할 수 있음을 배웠다. 이제는 클래식 음악도 즐기며 마음껏 감상하리라.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가식을 한꺼풀 벗겨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