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학실록
이성규 지음 / 여운(주)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조선과학실록] 역사 커피와 과학 아이스크림의 만남.

 

이제 특정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면 성공하던 시대는 지났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다른 분야와 융합해야 새로운 창조물이 나온다. 저자는 이 책을 ‘비엔나 커피’에 비유한다. 뜨거운 커피와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합쳐 융합의 가치를 잘 보여준 것이 ‘비엔나 커피’란다. 뜨거운 커피는 ‘조선왕조실록’을, 차가운 아이스크림은 ‘과학’을 닮았다며 ‘조선과학실록’의 탄생배경을 설명한다. 조선의 역사사전인 ‘조선왕조실록’과 저자의 전문분야인 과학을 융합한 것. 이 책은 역사와 과학의 산물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다양한 분야의 역사가 과학과 만났다. 역사적 사실을 듣는 것만으로는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고리타분할 것만 같은 역사가 과학과 연결되면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마치 과학과 관련된 신문 칼럼을 읽는 것 같이 재미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자연의 현상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 대신 주술적 의미를 담던 시대였다. 예를 들어 자연이 이상기후를 보이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보던 시대였다. 하늘이 벌을 줬다고 순수하게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왜 이상기후가 일어났는지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시대다. 그러니 역사를 과학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나아가 역사에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불빛기운에 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기록돼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로라’. 지금은 한국에서 오로라를 구경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자기장의 영향으로 조선에서도 오로라를 구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재이사상’이라고 자연의 이상 현상을 하늘의 꾸지람으로 여겨 인간의 잘못을 반성하던 시대다. 오로라도 ‘불빛기운’으로 묘사되며 임금이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했다.

 

요즘 봄철 황사는 거의 재앙 수준인데, 조선시대에도 황사가 심했던 기록이 있다. 흙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임사홍이라는 사람이 흙비에 대해 ‘재이가 아니다’는 용감한 발언을 했다는 것. 그는 “흙비는 재이가 아니다. 운수가 마침 그렇게 된 것이다”는 소신있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런 발언은 정치적으로 해석돼 사림파를 자극했고 결국 그를 유배가게 한 발언이 됐다. 소신있는 훈신을 간신으로 만든 흙비 발언. 재미있는 역사적 스토리다.

 

창경원은 아픈 역사를 가진 동물원이다. 순종은 즉위 동시에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일제는 ‘한일 신협약’으로 조선을 지배했고 일본은 순종을 위로한다는 구실로 창덕궁 바로 옆인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세웠다. 치욕스런 상황이지만 순종의 뜻으로 이름을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바꿨다. 이름을 바꿔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을 찾게 한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동물원은 여러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찾는 동물원과 달리 군주들은 개인 동물원인 ‘미네저리’를 가졌다. 소유자의 부를 과시하고 식민지의 지배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전쟁이 나면 이 동물원에 살았던 동물들은 다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데 이를 대비해 처리 규칙이 생길 정도. 전쟁은 동물들에게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전쟁 후 창경원에서 남은 동물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1983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창경원은 문을 닫았다. 치욕스런 과거가 담겨있었다는 것을 알게 돼 가슴이 아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임금의 덕은 평가를 달리하게 된다.

 

메뚜기가 조선의 논밭을 뒤덮었던 적도 있다. 성경에도 메뚜기 떼가 이집트 사람들을 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동양에서도 메뚜기 떼로 하늘이 인간을 벌한다는 사상이 있었다. 중국 당태종은 메뚜기의 일종인 황충을 날 것으로 삼키며 재앙이 그치기를 빌었다고 한다. 백성들에겐 잘못이 없으니 자신의 심장을 먹으라는 의미였다. 황충은 사막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메뚜기인데 연두색의 메뚜기와 달리 흑갈색을 띄고 집단성, 공격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떼지어 다니며 농작물을 먹어치운다. 어떻게 황충이 조선 땅까지 왔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를 하늘의 벌로 여기고 자신들의 잘못을 되돌아봤다고 한다. 현대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의식과 많이 차이나지만 당시엔 딱히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근거도 없었을 것이란 추측도 든다.

 

조선의 역사를 과학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은 아주 잘 만들어진 음식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전문성이 심화되는 시대에 역사라고 해서 두루뭉술하게 외우던 시대는 지났다. 역사도 과학, 예술, 수학 등 특정 분야의 지식을 동원해 해석해보는 시도가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자연의 재앙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을 돌아보는 선조들의 순수함이 오히려 자연을 지배하고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보다 결과론적으로는 덜 위험하고 자연 친화적인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너무 원리원칙에 얽매여 자연을 마음대로 개발하고 훼손하는 현대인간들에게 역설적인 교훈이 되기도 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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