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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력 (양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3년 5월
평점 :
문장을 읽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경한 단어는 집중하지 않다보니 어휘력이 늘기는 커녕 점점 줄어든다. 그 뿐인가 각종 자극적인 미디어에 노출되어 재미만을 추구하다보니 어느덧 '그거 있잖아-' 라고 말하는 지경에 놓였다. 정돈되지 않는 말들이 쏟아지고 언어적 직관이 떨어짐에 따라 책 한 권을 꺼내 읽으니, 어휘 공부라고 하는 것이 더 어렵게 여겨진다. 일상 언어가 낡았고 평범하며 닳고 닳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 배우고자 하지 않는 것은 말과 글에 대한 관심 부족 현상이다. 관성적으로 보고 타성적으로 쓰고 말하는 지금 말이 통하니 정확한 어휘를 구사해야 할 필요성을 놓치고 산다.
생각이 언어를 바꾸기도 하지만 언어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어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 영혼을 베는 말과 일으키는 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p101
어휘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말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뜻이 비슷해도 말맛을 살리는 표현법에 따라 재미가 배가 되고, 더 큰 울림으로 나타난다. 이 책은 낱말을 양적으로 많이 아는 것 못지 않게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해내는 데 있다. 뜻이 통하는 것을 넘어 말의 멋을 담아내는 일은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치 밖에 있는 상대의 언어를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 감각인식이나 지적 수준의 차이 일 수도 있지만 각자 통과하는 시간이 달라서다. -p29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에 대해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지워낸 듯 자국만 남긴 채 떠오르지 않는 낱말을 애써 풀어본다. 곁가지로 서술하다보면 쓸데없이 말이 길어지고 지루해지는데 저자는 지시대명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활용범위가 넓은 낱말을 남용하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습관처럼 말이 늘어지는 것을 단번에 고치기란 쉽지 않다. 말로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의 차이, 표준어와 사투리,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어렵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 책에는 주석으로 소개 된 낱말들이 가득하다. 익히 아는 표현이었는가 하면, 생소한 어휘를 담아 냈을 때 의미나 어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 유용했다. 그럼에도 입에 착 감기지 않는 탓에 한 번 본 것으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휘발되고 마는 것은 낱말 뿐이겠냐만서도 꾸준히 익히고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겉볼안'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겉을 보면 속을 안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 명사로 줄임말이다. 신조어 같지만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표제어다. 경험치가 늘면 겉볼안이 맞을 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겉볼안이 다 맞았다고 다음에 맞힐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다 틀렸다고 다음에도 틀릴 확률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p119
매순간 적절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지만 때론 놓치고 만다. 책을 읽는 동안 그간 써오던 언어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무심코 쓰는 말들이 오염되었음을 깨달았다. '이적료'라는 표현 대신 '몸값'이라 지칭하는 것, 성별이나 외모 등에 대한 칭찬이 편견을 심어주고 남을 평가하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뼈때리듯 눈을 뜨게 만든 저자의 다음 문장을 소개한다.
많은 속어나 욕설 등이 가축과 관련한 어휘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때는 가축이 흔했고 지금은 물건이 흔하다. 이 대목에서 "존중할 만해야 존중하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악머구리 끓듯(많은 사람이 시끄럽게 떠드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악한과 파렴치한이 적지 않으니 심정이야 이해하나 경계한다. 그 옛날 양반이 백정과 노비에게, 백인이 흑인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부자가 빈자에게, 어른이 어린이에게 같은 말을 했다. -p102
어른스럽다, 존경스럽다가 한데 묶이기 위해서는 어떤 어휘를 고르고 순서에 맞게 이야기해야하는걸까? 책장을 덮고 나면 더욱 복잡하게 여겨진다. 이 책은 다정한 말이 아닌, 똑부러지기 위해 내가 부단히도 애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감정을 뭉뚱그려서 표현하지 않고 풍성해지려면 어휘력의 연습이 필요하다. 낱말의 해방감을 느끼고 자유로워지기에 앞서 큰 숙제 하나를 받은 기분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다. 오늘의 커피처럼, 오늘의 예쁜 낱말을 찾아 사용하려고 애써야겠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믿는, 생의 유한성이 필연적으로 끌고 오는 허무함에 질식당하지 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방식이다. '아름다움은 발견해야 한다'는 말은 생텍쥐페리가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라고 한 말과 통하고, 발견할 수 있는 비결은 장욱진 화백이 큰딸에게 자주 들려주었다는 이 말에 있다. "모든 사물을 데면데면 보지 말고 친절하게 봐라."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