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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표지와 제목부터 각종 상을 휩쓴 이력들 까지 정말 읽고 싶었던 이 책을 받아들고 행복했다. 그냥 들고만 있어도 떨렸다. 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오롯이 이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주말에 읽었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두 작가의 이력을 신경 써서 읽었는데, 아말 엘모흐타르에 대한 안내 중에서, ‘베이루트에 살던 무렵 J.R.R.톨킨의 <호빗>과 SF드라마 <닥터 후>의 소설판을 통해 상상과 문자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을 펼치면서 그 세계에 눌러앉았다. 주로 지도, 책에 미친 여성, 아랍어 문자, 노래하는 물고기, 다마스커스의 꿈 공예가 등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하는 대목이 스토리를 이해해 나가는 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특히 ‘호빗’과 ‘닥터 후’는 나도 정말 좋아하는 내 인생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추측이지만, ‘시간전쟁’이라는 용어는 닥터 후에서 가져온 것 아닐까 싶다.
레드와 블루의 행적을 쫓아가는 글쓰기에서, 서로의 흔적을 파악하면서 발견된 편지를 통한 소통을 담고 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각자의 관점에서 합당한 시간을 바로잡는(?) 일을 하는 이 둘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야 되는 소설이였다... ㅎㅎ 글에 담긴 풍경들을 열심히 상상하며 쫓아가야 한다.
_.... 역사는 계속 그 방향으로 풀려 갈 것이다. 돌멩이 한 개를 굴리면 3세기 후에 산사태가 일어나는 식으로. 이런 임무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기에 저항도 적다. 레드가 계획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그렇다. 심지어 앞길을 막고 서서 비웃는 자 한 명 나오지 않는다.
레드의 적은, 그러니까 블루는, 레드가 남긴 편지를 읽었을까? 레드는 편지를 쓰는 일이 즐거웠다. 승리의 맛은 달콤했지만 개선 행진을 하며 약을 올리는 맛은 그보다 훨씬 더 감미로웠다. 보복해 보라며 도발하는 맛 또한._
레드와 블루의 각 서신은 빨강과 파랑 색깔로 구분해주고 있어서 읽는 이들을 도와주고 있다. 이 둘의 필체도 사뭇 다른데, 개인적으로는 호방함이 느껴지는 블루의 편지와 레드를 쫓는 블루의 시선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_“네가 놓은 함정에 하마터면 걸릴 뻔했다는 생각은 어찌나 달콤한지(시간이라는 실로 내 발을 묶으려고 했겠지, 아마도? 이거 참, 안 미안해서 어떡한담), 나도 모르게 압도되고 말았다는 걸 고백해야겠어.
.....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서로의 숨통을 더욱 모질게 물고 늘어질 거야’라니. 아아, 나의 꽃잎. 넌 그게 꼭 나쁜 일인 것처럼 말하지._[블루 편지 중 하나, ‘나의 완벽한 빨강에게’에서]
이 둘, 어떡하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전개는.....
역사 속에서 피튀기는 경쟁을 하는 이 두 스파이는 어쩌면 예술가 같다. SF로 읽었으나, 이 둘의 냉혹하고 달콤한 감성에 사랑으로 여운이 남는 이 이야기....
스펙타클 심리극에 더 가까웠고, ‘시간전쟁’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등장하는 역사적, 공간적 배경들, 인용문구들도 모두 챙겨 읽어야 하는 소설이였다. 한 번 독서로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