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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의사와 미친 이웃들
니나 리케 지음, 장윤경 옮김 / 팩토리나인 / 2021년 10월
평점 :
_‘아, 정말 이러면 안 돼.’ 속으로 나는 생각한다. ‘지금 여기 누울 수 없어. 바깥에 환자들이 앉아 있잖아. 문을 안쪽으로 활짝 열어놓고 압박하고 있잖아. 진료기록을 새로 업데이트해야 해. 또 나는 당장.... 해야 해.’ 그리고 보통 이런 순간에 잠이 들어 버린다.
나는 지금 50이 넘었다. 그럼에도 이런 어린아이 같은 고집을 다시 부린다. 어린 자아의 일부가 내 안 어딘가에 깊이 잠자고 있는 것처럼. 이제 막 일어나 어른 자아를 한입에 삼키려는 것만 같다._
의사인 자신의 설명이나 조언은 통 제대로 듣는 것 같지 않는 환자들만 오고 가는 병원의 엘렌, 한 가정의 착실한 아내처럼 보이지만 진료실에서 생활한 지가 좀 되었다. 다른 직원들은 모른다.
엘렌은 병원에서든 가정에서든 지쳐 보인다. 시니컬해졌지만 한편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연히 SNS로 연락이 닿은 옛애인과 바람이 나는데, 이것이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미친 환자들과의 진료는 계속 된다....
전반적으로, 참 재미있고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북유럽 소설 특유의 유머와 시니컬함이 적절히 들어있는 것이, 얼마 전 읽은 ‘불안한 사람들’도 생각나게 하였다. 매력 있었다.
오랜 시간 성공적(?)으로 유지해온 삶이라 여겨지고 있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답답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그런 자신을 위해 돌파구를 찾아나선 그녀는, 한 번 이상은 느껴보았던 혹은 앞으로 꼭 한 번은 당면하게 될 수도 있는 각자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보편적인 인물일 것이다. 마침내 돌파구를 찾았다고 느꼈으나 또 그 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도 잘 그려져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물론, 주인공의 환경은 나와는 다르니까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매일을 살게 하는 에너지는 무엇일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등장하는 환자들은 진단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결핍 때문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며 읽게 된다. 더불어 의사라는 직업의 특징 덕분에 엿볼 수 있는 진료 상황들, 주인공의 내면은 소설을 더 풍성하게 하고 개연성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겐 ‘우리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소설이였다. 답은 명확하지만 알아내는 방법은 제각각일 것이다.
_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깨닫게 됐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다가 내가 모든 걸 악화시켰어. 아주 오래전부터 엄하게 호통쳤어야 했는데. 이제 너무 늦었지.
드물게나마 큰소리치면 그 사람은 그냥 웃기 시작해. 세상에, 당신 그렇게 소리 지를 때 얼마나 바보 같은 줄 아냐며 나가버려. 그녀는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어._ [‘어느 토요일 아침의 은밀한 재회’에서]
_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게 세상이지. 토레가 말한다. 그는 우리 어머니처럼 속담을 참 좋아한다._[‘흔들리는 진자의 세계’에서]
_“있잖아요. 갑자기 다 지긋지긋해졌어요. 온갖 약에 대기줄 그리고 늙은이들까지. 약국에서는 보행기끼리 부딪쳐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차라리 화장품 가게에 가기로 했어요. .... 저는 약국보다 화장품 가게가 더 마음에 들어요. 풍기는 냄새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거든요.”_ [‘24시간의 행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