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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_서울의 횡단보도는 신호등이 대부분 횡단보도 건너편 쪽에 멀찌감치 있다. 운전자에게 잘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것인데,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어서도 운전자가 볼 신호등은 여전히 잘 보이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다.
그에 비해 파리나 유럽의 신호등은 횡단보도 앞에 위치한다. 만약 정지선을 넘어가면 자신이 봐야 할 신호등이 보이지 않으니 위반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만든 것이다._p25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프랑스로 가서 20년 넘게 국립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 임우진의 <보이지 않는 도시>를 여러 날에 거쳐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었다.
그 시작은 한국과 프랑스의 교통문화(?) 비교를 통한 사회문화적인 차이였는데, 여행을 하거나 오랫동안 한 장소에 머문다 하더라도 타국의 신호등 위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내게는 적잖이 충격적인 내용이였다.
적당히 운전자를 고려한 위치에 설치해놓은 신호등, 그리고 양심을 지킬 것을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우리네 분위기, 아예 위반이 힘든 위치에 신호등을 설치함으로써 위법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프랑스의 인정 없는 장치들......
이런 것 하나에도 이렇듯 많은 스토리를 품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작부터 잘 알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숨어있는 도시의 이야기들을 사회문화적, 건축학적 관점으로 접근해서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제목이 ‘보이지 않는 도시’..
읽어가다 보면, 국회의사당, 극장, 장례문화 등을 프랑스와 한국을 비교해가면 넣어놓았고, 한국 전통 가옥의 특징과 지금 아파트 문화가 바꿔놓은 한국사회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고, 도시생성과 구성의 비교, 공동체, 광장의 형태, 심지어 교도소 비교를 통한 문화적 차이, 도시를 주도하는 주체의 문제, 빈부에 따른 주거지와 문화에 대한 사유와 희망지 등....
건축학적인 요소를 넘어 사회심리학, 문화, 전통, 역사 등을 아우르는 풍부한 내용은 내가 속해있는 공간, 도시를 의미있게 둘러보게 한다. 리뷰 시작에 언급했듯이, 공간이나 분위기, 정책적인 구조가 삶의 질에 무척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좋은 전통을 잃어버린 듯한 한국 도시 문화는 무척 안타까웠다.
전반적으로 학술적인 느낌을 주는 책이였는데,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았다. 전문성을 지닌 도서가 쉽게 읽히면서도 깊이까지 적절한 수위로 가지고 있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딱 그 적정선을 잘 지킨 듯하다.
여행기라고 저자는 스스로 지칭하고 있지만, 주관적으로는 적극 추천하고 싶은 건축인문학 도서이다. 가능하다면 누군가와 한 바탕 얘기 나누고 싶은 내용이였다.
_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경사가지거나 좁은 골목길에서는, 이 길에 면한 집들에 의해 공간 주도권이 행사되며 ‘사유화’가 시도된다. 외지인들의 통행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이 사유화라는 말은 ‘소유의 사유화’가 아닌, ‘사용의 사유화’를 뜻한다. 즉 길도 자기 집의 연장 공간인 것처럼 화초를 가꾸기도 하고, 테라스처럼 테이블과 의자를 내어놓고, 아이들도 자신의 앞마당처럼 이곳에서 이웃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한다._p249
_보잘것없긴 해도 천막 가설 건물이건 판잣집이건 그것이 자신이 직접 지어 자신의 집이라는 생각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든 페인트를 구해 대문을 예쁘게 칠하기도 하고 집 앞 길도 직접 청소하고 대문 앞에 화분을 기르는 등 삶의 의지를 보이던 사람들이, 콘크리트로 번듯하게 지어진 그러나 자신이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아파트에 살게 되자 집을 가꾸기는커녕 집 앞에 쓰레기 하나 줍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사는 건물에 냉담해지는 것이 아닌가._p286
_..... 나의 속마음을 고백하자면, 그 아쉬움이 가리키는 지점은 ‘사람이 먼저인 도시’이다._p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