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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 김승희 베네치아 산문집
김승희 지음 / 문학판 / 2020년 11월
평점 :
너무 오래 되서 가만히 손가락으로 햇수를 세어 보았던 이탈리아 여행.. 이것이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 이였고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 이였다 (다행히 현지에 친구가족은 있었다). 한정된 자금과 기한에 가는 이 떠남은 나에게 과감히 경유경로의 해외항공사를 선택하게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베짱이였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파편과 느낌, 추억으로 남아있는 이 여행을 소집한 것은 바로 이 책이다.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김승희 베네치아 산문집 이다. 교수를 정년퇴임으로 정리하고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훌쩍 베네치아로 가서 석 달을 머물렀다고 한다. 33세에 <33세의 팡세>라는 책을 썼는데 30년 뒤에 60대 여인이 되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그 석 달 동안의 베네치아 생활과 편린을 담고 있다 (다른 장소들도 몇몇 있다).
내가 베네치아를 갔을 때는 베네치아로 가는 수상버스가 오고가는 물 가 근처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몇일을 묵으면서 수상버스로 오고 갔었다. 공용 세탁실이며, 샤워장, 취사장 등이 무척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는 곳이여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 때 들었던 얘기는 베네치아의 숙소들은 비싸기도 하고, 생활용수가 부족하다는 것이였다.
저자는 그런 불편함에도 베네치아에서 온전히 시간을 보냈는데, 생활을 함께 연명하며 그 공간을 지내는 내용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자고로 완전한 여행법이란 현지의 삶에 잘 섞여야 하는 법이다.
_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수상버스의 역 이름이 카도로, 즉 황금의 집이라는 말이란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그 골목에 바로 ‘카도로’ 라는 아름다운 건물이 있다. _ p94
이 책을 읽다보니, 새삼 물 위에 떠있는 그 이상한 도시, 베네치아가 무척 넓은 곳이다 싶어진다. 잠깐 들르는 관광객들의 짧은 동선이 아니라 ‘가 보고 싶다’ 싶은 몰랐던 또는 관심 없었던 장소들까지 이야기를 곁들여 공유하고 있다.
_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보기 위해 아드리아 바다 쪽으로 나간다. 대운하 쪽이 아니라 바포레토 5번 노선이 다니는 곳으로 가야 바다가 있다. 거기서 부라노 섬이나 무라노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때문에 산 미카엘 묘지섬을 알게 되었다.
바다 갈매기 소리가 끼룩끼룩 울면서 날개를 치면 아침 바다가 열리기 시작함을 느낀다. _ p234
그렇다고 여행지 소개책은 아니다. 제목그대로 ‘팡세’.... 본인 생각과 감정, 느낌의 뻗침이 곳곳에 있고, 글의 끝은 한국사회 문화로도 갔다가, 역사 속으로도 갔다가, 예술작품 끝으로 이르기도 한다. ‘저자의 <33세의 팡세> 는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한편 그것을 찾아보기에는 나도 너무 나이를 먹어버렸다.
그저 이제 나의 팡세도 정리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처럼 수년, 아니 더 많은 간극의 뒤에 적은 나의 말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땐, 이 저자처럼 잘 정리된 나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본문에 수록된, 영화 <길>의 주제곡 가사 중에서:
_ 태양이 비쳐도, 비가 와도, 언제나 너는 미친 소리를 지껄여야 한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