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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 채영신 소설집
채영신 지음 / 강 / 2020년 11월
평점 :
채영신 소설집 ‘소풍’ 은 4인용 식탁, 나는 이야기다, 말의 미소, 맘스터, 소풍, 여보세요, 이렇게 6개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산뜻한 표지와는 달리, 필체는 다소 묵직했는데, 특히 2편이 유독 남아서 이 2편 위주의 후기를 적어본다.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아내를 다치게 한 뒤로 그는 밤마다 칼을 신문지에 말아 서랍장 깊숙이 넣어놓고야 잠들 수 있었다.
그는 신문지를 벗겼다.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나.... 방금 전에 아내가 중얼거렸던 말이 떠올랐다.“ -4인용 식탁 중에서-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를 찾아 집 밖을 헤매다가 평생이란 것의 끝에 이르러서야 집에 돌아와 아내를 바라보고 있는 거였다. 그는 늙은 눈으로 게슴츠레 뜨고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
평생이라면... 의사 앞에서 아내가 끝맺지 못했던 말이 떠올랐다.
평생이란 시간을 견딘 건 그도 아내도 아닌, 이 집에 남아 홀로 그들을 기다린 식탁이란 걸 비로소.“ -4인용 식탁 중에서-
어떤 소설은 ‘감상’ 이라는 이름으로 내 속을 다 내보이기 힘들기도 하다, 이 ‘4인용 식탁’ 이 그랬다. 책의 맨처음을 차지하고선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추게 했다. 부부라는 이름의 둘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과정이 메마른 표현으로 그려진다. 타인 두 사람을 함께 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내 속에서는 마무리 되었는데, 섬뜩한 추측을 하게 되는 글의 끝은 지금도 서늘하다. (문득 ‘보기왕이 온다’ 가 생각났다)
_ “소풍 가자.”
엄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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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우리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낱말이 소풍이란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
휴일에도 게으름은 안 된다는 게 아빠의 철칙이였다. 일곱 식구였던 우리는 6인용 식탁에 2인용 식탁을 덧붙여 사용했는데, 6인용 식탁만으로도 맞춤해진 지금도 엄마는 2인용 식탁을 치우지 않았다. _ -소풍 중에서
아빠의 죽음이후 처음으로 간 소풍, 아빠 생전에는 주말마다 도시락을 싸서 나가 먹는 소박한 소풍을 갔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느 날, 엄마의 제안으로 처음으로 한 사람을 공백으로 가족은 소풍을 나간다.
왜 동물원 이였을까? 억지로 의미를 부여해 본다면 산 사람은 산다는.. 그런 뜻인가? 나 나름대로 궤변을 늘어놓아 본다.
어색한 간만의 소풍을 준비하며 느끼는 주인공의 독백이 잔잔하다. 동물원에 가서 깔깔 거리며 가족사를 얘기하다가 드러나는 잊고 싶었던 가족의 기억이 서로를 생채기 낸다..... ‘가족’ 은 무엇일까? .....
이윽고 모두 귀가하는 차에 올라탔지만, 모두 안다.
_“분명한 건 이게 우리의 마지막 소풍이 되리라는 것이었다.”_ -소풍 중에서
덧붙임: 확실한 건, 이 작가의 글들을 찾아보게 될 것 같다는 거다.... ‘작품 해설’ 챕터에서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채영신은 근원적인 언어를 통하여 현실과 인간의 가장 어둡고도 무시무시한 차원을 형상화하는데 일가를 이룬 독보적인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