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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월
평점 :
_어느 날 아침을 먹던 아빠가 말했다. “C로 시작하는 단어들은 수많은countless 증명할certifiable 수 있는 경우들이cases 계속 생겨났다는kept coming 사실을 고려할 때considering 틀림없이certainly 사람들을 경악consternation하게 만들cause 것이다.” 내가 답을 알아내는 데는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_ p49
고대부터 지금까지 언어와 문자는 그 시대를 대변하는 수단 이였다. 주로 지배계층의 특권이였고 지배수단이기도 했다. '핍윌리엄스' 장편소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도 그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 향상에 대한 움직임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옥스퍼스 영어 사전에 실리는 단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남성중심사회는 단어의 선별과정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이른바 ‘읽어버린 단어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배경처럼 살아야 했던 많은 여성들과 하급계층 구성원들을 떠올리게 한다.
공간적 배경은 옥스퍼드 대학교 뒤뜰에 세워진 창고, ‘스크립토리엄’, 바로 저 선별과정이 이루어지는 작업소 이다. 주인공은 이 곳의 책임자 머리 박사의 딸로 어려서부터 아빠를 도와 이 작업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어린 나이임에도, 아빠와 언어유희를 즐겨할 정도로 똑똑하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 단어 ‘여자노예: Bondmaid'. 중후반에 펼쳐지는 변혁의 시작점에 바로 이 단어가 있다.
_“서프러제트 몇 명이 시청 벽에 페인트로 구호를 쓰다가 붙잡혔다는데, ....”
“서프러제트?” 리지가 말했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요.”
....
스트럽토리엄에서 나는 분류함을 찾아보았다. '참정권Suffrage' 은 거기 있었고, '참정권 확장론자Suffragist'도 있었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없었다. 나는 <타임즈 오브 런던> <옥스퍼드 타임즈>, 그리고 <옥스퍼드 크로니클>의 최신호를 찾아내 책상으로 가져왔다. 각각의 지면에는 모두 서프러제트들을 언급하는 기사가 있었는데, 한 신문은 ‘참정권 확대론자들Suffragents’이라는 말을 썼고, 또 다른 신문은 그 단어를 동사로 써서 ‘여성의 참정권에 동의하기Suffragetting’ 라고 적었다._ p231
이야기는 당시 강요된 여성의 삶과는 다른 선택들을 한 주인공 에즈미의 인생과 맞물러서 전개가 된다.
_‘사생아Lie-child’. 산파가 내 딸아이를 부르던 말이다. 하지만 그 단어는 <한가함Leisureness부터 기꺼이Lief까지>에는 실려 있지 않았다. 나는 분류함을 뒤졌다. 다섯 장의 쪽지가 대표 쪽지에 핀으로 꽂혀 있었다. 정의되어 있는 단어였다. [혼인 외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 서출.]
그 단어는 사전에서 제외되었다. 대표 쪽지에는 메모 하나가 적혀 있었다. [혼외자Love-child와 같음. 삭제할 것].
하지만 그랬나? 내가 빌을 사랑했던가? 내가 그를 그리워했던가?
아니었다. 난 그냥 그와 잤을 뿐이었다.
하지만 난 내 딸을 사랑했다. 딸이 그리웠다. 내가 찾아낸 어떤 단어로도 그 아이는 정의될 수 없었고,..._p298
어떤 언어든 각 단어, 표현들의 기원을 찾아보고 알게 되는 것은 굉장한 지적쾌감을 준다. 이 책에서도 문장 속에 언급하고 있는 단어들의 쓰임새며, 시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단어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저자 핍 윌리암스는 이 작품이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풍부한 표현들로 역사소설을 완성했으며, 시대를 변혁시키는 다양한 여성캐릭터들을 작품 속에서 잘 살려 놓았다. 언어의 재미와 이야기의 힘에 빠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_“선생님, 선생님은 지식의 판관이 아니십니다. 지식을 관리하는 사서이시죠.”
나는 [여성들의 단어]를 데스크 위로 밀었다.
“선생님이 하실 일은 이 단어들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이 그 평가를 할 수 있게 허락하는 일입니다.”_ p526
_스크립토리엄은 추웠고, 분류 테이블을 빼고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여자 노예’ 쪽지들은 정확히 리지와 내가 놓아둔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
리지는 그 단어들을 읽을 수 없었지만, 나보다 잘 이해했다......
연결된 여자BONDMAID
사랑, 헌신 혹은 의무에 의해 평생 동안 연결된 여성.
“나는 아가씨가 어릴 때부터 아가씨와 연결된 여자였어요, 에시메이. 그리고 난 그 매일매일이 기뻤어요.”
-리지 레스터, 1915년
_p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