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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평점 :
고등학교때 전혜린 앓이를 지독하게 했었다. 한참 후, 전혜린을 생각하면 왠지 같이 떠오르는 #전경린 작가.... 이번에 #장편소설, ‘ #엄마의집 ’이 출간 18년 만에 개정판 #자기만의집 으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기억되어왔던 이 소설은 나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였다.
소설 속 주요 인물은 3명의 여성이다. 어느날 21살 대학생 호은에게 아빠가 불쑥 찾아온다. 그것도 이복동생 중학생 승지를 데리고... 승지를 엄마 윤선에게 맡겨달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승지와 엄마의 집에 가게 되고, 그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호은은 그곳에서 엄마의 삶이 어떠했을지...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이혼을 하고, 마지막 희망처럼 아파트 하나를 장만하기 위해서 얼마나 필사적으로 일했을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꾹꾹 접으면서 어떤 시간을 버텨냈을지... 또한 불과 몇 달 전에 친엄마를 떠나보낸 승지는 어떨지, 얼마나 춥고 외로울지를 생각하며 호은은 단 둘이 남은 방에서 동생과 대화를 이어간다.
_외가에서 사 년 가까이 얹혀 지내는 동안 나는 트렁크를 들고 엄마를 찾아가는 상상을 자주 했다. 표면적으로 엄마에게 냉담했는데도, 끼니를 놓쳐 배가 고픈 것처럼 본능적으로 늘 엄마가 그리웠다. 내 마음은 달이 비치는 어두운 밤에 몸통과 꼬리를 펄럭펄럭 흔들며 홀로 나는 연같이 늘 외로웠다. 나는 실을 돌돌돌 감고 감아 실 꾸러미 같은 엄마의 가슴에 가 닿고 싶었다._p23
이렇게 한 집에 셋이 살게 되면서, 호은은 엄마와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소환되는 기억 속의 호은은 엄마 아빠 아저씨들과의 추억이 있었고, 현재에서는 모녀간의 비워진 소소한 시간들을 채워나가게 된다. 승지도 나름 적응 중이다.
이 모든 과정 중에, 정착하지 못했었던 호은은 자신만의 미래를 조금씩 세워나간다. 그녀는 공허함에 초라해보였던 엄마에게서는 고유한 모습을 발견해나가고, 의지할 데 없이 늙어만 가는 아빠에게는 동정심에 가슴이 아프다.
웃음을 찾아가는 승지는 이 집에서 편안해 보인다. 우리에게 ‘집’ 이란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영어에 보면 ‘house' 와 ’home' 이 확연히 다르게 쓰인다. 이 소설에서의 집이란 바로 ‘home' 이다. ’엄마의 집‘에서 찾은 인물들의 ’자기만의 집‘ 은 어쩌면 홀로 설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 에게 삶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며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답들이 긍정적이지 않더라도, 가능성을 잃지 않는 희망이, 불현듯 찾아오는 공허함을 물리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읽으면서 잔잔하게 스며듦이 느껴졌던 소설이였고, 지리멸렬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들이 참 좋았던 독서였다. 여운이 긴 소설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많이 있었지만, 특히 아래 문단을 꼭 기억하며 살고 싶다.
_“살기 위해, 생활비를 버느라 일러스트를 그리지만 전과 달리 초조하지 않아. 묵묵히 삶에 복무하는 거지. 언젠가 때가 되어서 다시 그림을 그리면, 예전과는 아주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될 거 같아.”
엄마는, 어디에도 메인 데 없는 사람처럼 선선한 태도로 말했다.
..... 스스로 잠의 넝쿨이면서, 스스로 칼날이 되어 백 년의 잠을 깨우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제 사람이 어떻게 자유로워지는지 알 것 같아.”
엄마의 말은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내 몸이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이해 이전에 그냥 흡수했다..... 엄마는 삶을 직접 통찰하는 자유롭고 예지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백 살 할머니가 되어도 영원히 미스 엔일 것 같다. .....
적어도 엄마가 꿈에서 깼으니, 난 그 꿈 바깥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_p162
“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