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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그림의 문화사 1 - 민족의 정체성 ㅣ 한국문학과 그림의 문화사 1
권정은 지음 / 소명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_문학과 그림의 감상은 각기 다른 발판에서 출발하는 것 같지만, 문자든 이미지든 깊이 있게 몰입하기 위해서는 읽기가 필요하고, 이때 읽기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관조라는 보기와 다르지 않다. 결국에 심도 있는 감상과 사유의 세계에 이르면 문학과 그림, 읽기와 보기라는 구별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_p38
다른 분야로 여겨지는 요소들을 함께 감상하고 깊게 짚어보는 일은 여행처럼 설레는 일이다. ‘문학과 그림’의 조합도 그러할 텐데, 시와 그림들, 등으로 꽤 접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고전 문학부터 다루고 있었던 #한국문학과그림의문화사 는 그동안 만나보았던 것들과 많이 다르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역사와 신화, 사회분위기, 종교 등 영향을 줬을법한 많은 요소들이 함께 다뤄져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문학과 그림에 대한 이해와 시각언어와 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기초지식을 다지게 하고, 암각화로 시작하는 고대는 잘 몰랐었던 한국 무속신화의 창세가를 만날 수 있어서 동화책 읽듯이 재미있었다. 문자가 등장하는 3장에서는 많은 비석으로 드러나는 당시의 정치과 위상을 다시금 알아볼 수 있었고, ‘불교의 도상과 인쇄의 혁명’ 편에서는 점점 풍부해지는 시각작품들과 담겨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_...‘도솔래의’의 세 장면은 [월인석보] 권2에 잘 나타난다. 즉 “흰 코끼리를 타시고 해의 광명을 타시고” 천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마야의 꿈 안에 오른쪽 겨드랑이로 들어가시니”라는 내용은 그림과 정확하게 부합한다._p155
5장에서는 영웅적 인물들의 설화도 재미있었지만 시서화 비평의 등장편이 기억에 남는다. _... 한편 고려 후기에는 가전체와 마찬가지로 온갖 만물과 지식을 다루되, 그야말로 무목적의 무형식을 지향하는 글이 등장하면서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바로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그리고 이제현의 [역옹패설]이 그것인데, 특히 이 문헌들은 무엇보다도 한국 예술 비평의 원조라는 점에서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_p200
제대로 문학과 그림의 풍취에 빠질 수 있었던 시와 그림에 관한 내용을 넘어, 왕조의 위엄을 위해 나왔다는 팔준에 관한 내용들과 팔준도, 뜻밖에 나왔던 함흥의 재발견도 기억에 남는다.
_<북새선은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청록으로 표현된 칠보산의 거친 산세와 북쪽 설산의 모습이 장엄하고, 관아를 둘러싼 성벽 가운데 화려한 기가 휘날리는 넓은 관아에서 과거를 치르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설경산수화이자 기록화로도 손색이 없는 이 그림은 춥고 험한 함경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_p358
서양문학과 그림에 관한 것들은 종종 접했었는데, 이렇게 한국문학과 그림의 역사를 상세하게 고대부터 한번에 읽은 것은 처음인 듯하다. 이 책의 부제가 #민족의정체성 인데, 그렇게 심오하게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읽어가는 재미, 수록된 삽화들을 감사하는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고 충만한 시간이였다. 문학, 그림, 역사, 옛이야기 등에 관심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픈 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