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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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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도시인들이 전원생활, 시골생활이란 단어에서 느끼는 여유, 휴식, 소박, 치유, 사색 같은 이미지를 철저하고 비정하게 부숴버립니다. 그는 환상과 낭만을 걷어내고 시골의 민낯을 보라고 말합니다. 미디어에 현혹되고, 시골 생활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에 현혹되지 말고 철저히 생활터전으로서 시골을 알아야 하며, 그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 후에 시골생활을 계획하라고 권합니다. 현실을 똑바로 보라는 직언을 너무 냉정하게 말하는 통에 정나미가 좀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지만 읽어볼 만 합니다.


그가 이렇게 냉정한 참견과 걱정을 하는 이유는 시골 생활에 대해 누구도, 어느 언론매체에서도 충분히 설명하거나 충고하지 않고 나른한 환상만 심어주어, 결국 많은 사람이 현실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시골생활을 시작하고, 자기 분석과 반성없이 시골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시골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도 시골에서 생활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시골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을 겁니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접고 인생의 2막을 시골에서 보내려는 사람에게 하는 작가의 충고를 요약하면 대강 이렇습니다.


"시골은 오히려 도시보다 더 이기적이며 개인의 자유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곳일 뿐 아니라, 도시적인 교양과 상식과 합리가 통용되지 않는 곳일 수 있다. 가면 어떻게든 되는 곳이 시골은 아니며 시골에도 당신을 지치게 하는 삶은 따라온다. 삶을 피하고자 선택한 곳이 시골이라면 당신의 판단력은 어린아이 판단보다 못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 당신이 여행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던 그 아름다운 자연도 그곳에 정주하는 순간부터는 더는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당신을 괴롭히는 존재로 변하고,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 줄 것만 같던 그곳이 때때로 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돌변하기도 한다. 여행객 입장에서 보는 풍경과 생활인 처지에서 보는 풍경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은 환경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뜻이다.


농부가 하는 일이 쉬워 보이고 낭만적으로 보이는가? 여행객에게 풍경으로 보이는 농부의 일은 도시인이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는 고단한 노동이다. 나약한 도시인이 등산꽤나 했다는 자신감으로 덤벼들 그런 성격이 아니다. 수십 년간 몸에 배었기 때문에 그들의 노동이 쉬워 보일 뿐이다. 농촌은 노년을 보내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다. 의료시설은 부족하고 외로움을 함께 나눌 친구도 없다. 고독을 이겨내지 못힌다면 고독이 당신의 노년을 잡아먹을 것이다. 우리는 도시의 삭막함과 비정함에 대비해서 시골의 따뜻함과 인간미를 말한다. 하지만 그건 위장된 모습이거나 아니면 도시 생활인의 눈에 비친 환상에 불과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오히려 시골 인심이 도시보다 더 각박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할 때 더 몰인정하고 탐욕적인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이다. 가난한 그들에게 여유와 아량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시골의 정은 옛말이다."


그​는 시골 생활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갈 자신에 대해도 냉정히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강변하지만, 당신의 그 인생 마당은 자신의 의지로 다진 것이 아니라 직장이라는 배경이 만들어 줬을 뿐이고 그 조직이 마련해준 직급이니 직위이니 하는 이름에 안주한 것이 전부였다고. 그런 뜨뜻미지근한 물에 있다가 밖으로 내던져지면 금방 감기에 걸리기 쉽다. 당신은 스스로 일어서고 견디는 훈련을 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고, 나이 들어 직장에서 내쳐진 자신의 처지를 세상의 냉혹함과 도시의 비정함 탓으로 돌리며 자기변호를 꾀하다가 마침내 시골 생활이라는 충동적인 도피 행각에서 구원을 찾고자 한 것은 아니냐"고 묻습니다. 냉정한 비판입니다.


도농간의 문화 차이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소개합니다. "당신은 전 반생을 통해 프라이버시의 경계선을 함부로 넘지 않는, 억제된 교류 쪽이 인간적이라는 해답을 내렸고 그렇게 행동해 왔다. 가끔 그것이 냉정하게 느껴지더라도, 몇십 년이고 그런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은 그편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집과 다른 집을 그리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아, 상대방 사정 따위는 개의치 않고 아무 때나 찾아와서는 부르는 동시에 서슴없이 방으로 들어오는 깔끔치 못한 왕래에 피로를 느낄 것이다. 게다가 성장 과정, 직장 경력, 가족 구성, 친척 관계, 지병 유무 등을 캐물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예금 잔액이 얼마인지까지 파고드는 통에 진절머리가 난다. 결국에는 논두렁길 저 너머에서 오는 모습만 봐도 몸이 오싹해진다."


시골 사람들의 이런 행동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촌사회의 특징 때문입니다. 농사일에서 왕따는 치명적인 일이지요. 그래서 시골 생활은 도시생활과는 달리 개인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습니다. 시시콜콜 노출되지 않으면 동질감 형성에 장애가 되고 결국 그들과 단단히 연결하는 고리를 만들지 못해 왕따 되기 쉽습니다. 시골생활을 하려면 받아들여야 하는 가치와 지금까지 지켜 온 도시인으로서의 가치가 충돌합니다.


그가 충고 하고 싶은 말은 "안주의 땅, 마지막 거처, 별천지, 지상낙원 같은 이상적인 공간을 발 벗고 나서서 찾으려는 것은 수백 년 전 보물을 찾으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무릉도원 같은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토피아는 신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애틋한 동경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골생활이 나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피곤한 육체를 품어 주리란 환상은 버리라고 마루야마 겐지는 말합니다.


도시를 피해 시골로 옮겨 살고 싶게 하였던 그 모든 원인이 모습만 바꾼 채 똑같은 양과 무게로 기다리고 있는 곳이 시골입니다. 삶을 피해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겠지요. 필자는 확실한 목표의 여부가 시골생활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합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모든 걸 잊고 전념할 것이 있을 때 시골행을 하라고 권합니다. 다른 일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의 강한 목적이 없으면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결국,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굳건히 세우는가에 달려 있겠지요. 부모와 아내와 직장에 기대어 살아온 의타적인 삶에서 벗어나 제2의 인생을 살겠다는 신념과 의지가 있다면 사는 곳이 어디든 상관없겠지요. 체질과 성향에 맞지 않는다면 시골을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골과 도시라는 공간적 요소는 행복한 노후를 위한 작은 선택 옵션에 불과합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어디에 살든 삶을 진지하게 살아내는 자세, 눈빛이 살아 있는 삶, 세상의 유혹에 흔들림 없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귀농이나 귀촌에 뒤따르는 문제에 있어 우리와 일본은 똑같더군요. 그가 제기한 모든 충고와 해법은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지라 그가 지적하는 모든 사항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골로 이주한 범죄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침실을 요새화하라는 황당한 충고만 빼고 말입니다. 몇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200페이지의 얇은 책이니 시골생활을 꿈꾸는 사람이면 일독을 권합니다. 특히 도시 출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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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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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달만 더 버티면 혹독한 7년간의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마무리할 무렵, 그는 폐암 진단을 받습니다. 수련 기간 동안 어려운 신경외과 수술을 대부분 익혔고, 전국 규모의 권위 있는 상도 받아 여러 일류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은 36살의 젊은 그에게 폐암은 그동안의 모든 것과 앞으로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선고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최정상의 의사 신분에서 환자의 신분으로 바뀐 그는 절망하지만, 사려 깊게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폐암에 걸린 건 특별한 일도 아니며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배웠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가진 문학도였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사와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학문이 바로 의학이라고 판단하고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원에 진학합니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째째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학부에서 공부한 분야와 의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에서 이미 그는 인간과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소명의식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전공을 선택하는 대학원 4학년 때, 대부분의 의과대학 학생들이 근무 조건이 더 좋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라고. 그는 인간을 더 이해할 수 있고 도전적이며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소명의식에 이끌려 신경외과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명의식도 일주일에 100시간 넘게 근무하는 혹독함으로 희미해질 때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격무에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동료가 9시간 동안 수술실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환자의 암이 손 쓸 수 없는 상황까지 전이되어 수술없이 그냥 덮어 버리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본격적인 수술을 하기 전에 확인해보니 그가 기도했던 것처럼 심각한 전이가 확인되어 15분 만에 수술을 포기하는 상황이 되자 그녀는 수술실을 나와 수치심에 눈물을 흘립니다. 저자도 자신의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 하며 의사라는 고된 길은 도덕적으로 나아지기는 커녕 퇴보하는게 아닌가 반성합니다.

 

그는 의사로서의 소명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실패하면 괴로웠고, 기술적인 탁월함이 곧 도덕적 요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내 기술에 정말 많은 게 걸려 있거나, 불과 1~2밀리 차이로 비극과 성공이 갈릴 때에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가치를 조언해 주었지만, 막상 자신에게 죽음과 싸우는 상황이 찾아 왔을 때, 그도 죽음을 앞에 두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의사인 그도 자신을 치료하는 주치의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에마(주치의)의 도움이 필요했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고민하고,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습니다. 그는 다시 신경외과로 복귀를 결심합니다. 죽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외치며. 그리고는 마지막 남은 레지던트 과정을 초인적인 의지로 마무리합니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마지막은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불안과 항암 치료의 힘든 상황에서 그는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전념합니다. 책을 쓰는 이유를 친구인 루빈에게 말합니다.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라고.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고. 죽음 없는 삶은 없다고.

 

자신은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을 이야기 합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그에게 문학이란 모든 학문이 그렇듯 인간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는 일련의 도구, 즉 어휘를 만들어 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문학도가 혹독한 수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과학 분야로 옮겨갔었지만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코 앞에 실체로서 죽음을 경험하면서 다시 문학에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과학이 지니는 한계와 의학이 어찌하지 못하는 무력한 지점을 경험한 그는 문학에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죽음의 단조로운 황무지에서 방황하던 나는 수많은 과학연구들, 세포 내 분자 통로, 생존 통계의 끝없는 곡선에 아무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결국 문학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중략) 죽음에 관한 글이라면 뭐든지 읽었다. 죽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어휘를 찾고 싶었다. (중략)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이 필요했다.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한 젊은 의사가 죽어가며 쓴 글은 숙연하지만 의연함을 잃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시간과 싸우는 절박함은 독자를 안타깝게 만듭니다.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는 이 책을 마무리하는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딸 케이티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정도까지만 삶의 시간이 허락되길 희망합니다. 그 아이는 죽음을 앞두고 체외수정으로 얻은 아이였습니다. 그 딸을 향한 마지막 말로 글은 끝납니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죽음을 깊이 생각하는 이유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겠지요. "좋은 죽음"이란 결국 "좋은 삶"을 말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의미 있는 삶에 대해 끝까지 성찰하고 행동한 작가에게 경의와 존경을 바침니다. 

 

http://blog.naver.com/cjdtks9848/22089870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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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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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맛있게도 썼다. 글 쓰는 이들은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장중하게 쓰는 사람, 가볍고 재미있게 쓰는 사람, 스케일이 큰 사람, 작지만 정교하게 쓰는 사람, 빠르게 진행하는 사람, 차근차근 접근하는 사람, 논리적인 글로 무릎을 치게하는 사람, 구구절절 감성을 자극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 등등...

이 책의 저자는 두루두루 요소를 버무려 맛깔스런 글맛을 만들어내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자전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에 대한 간단한 문장은 큰 생각으로 이어지게 만들고, 간간히 섞인 유모어와 위트는 비빔밥에 떨어뜨린 몇 방울의 참기름처럼 고소하다. 여행책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http://blog.naver.com/cjdtks9848/22076351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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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의 노래 - 사라진 새 도도가 들려주는 진화와 멸종 이야기 김영사 모던&클래식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신현철 해제 / 김영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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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쪽의 두툼한 책이다. 집중해서 읽지 못하고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읽다 보니 보름 동안 읽었다. 900쪽에 달하는 책이지만 읽는 내내 지루함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널리 알려져 조금은 진부할 수 있는 진화 이야기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멸종과 생태계 붕괴 문제를 경고하는 학구적인 진지함을 유지하면서, 독자에게 책 읽는 즐거움과 지적 희열을 동시에 안겨주는 저자의 역량에 감탄하며 읽었다.

​저자는 섬 생물지리학의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가 과학자들의 치열한 탐구 과정을 하나하나 훑어 내리면서, 자연에서 읽어 낸 패턴에 대한 정교한 이론들을 소개하고 진화에 얽힌 복잡하고도 미묘한 사실들을 알기 쉽게 풀어낸다. 또한 과학자들이 모든 것을 바쳐 연구했던 그 섬과 지금도 열대의 정글에서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의 생각과 연구내용을 소개한다.

섬은 제한된 공간과 격리라는 두 가지 특성이 결합해서 진화의 패턴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진화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려주는 진화의 축소 현장이다. 진화는 탄생과 멸종의 이야기며, 그 이야기는 섬이란 제한된 공간에 압축되어 있다. 이를 연구하는 것이 섬 생물지리학이다.

섬은 종의 분화(종의 탄생)와 멸종이 동적 평형을 이루며 진화해 왔으나 이제는 멸종의 상징이 됐다. 수만 년의 시간을 두고 진행하던 탄생과 멸종의 동적 평형은 깨졌다. 도도새는 그 상징이다. 평형이 깨진 원인을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책에 상세히 소개된 그 원인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 때문이다. 인간 말이다. 그들에 의해 더 이상의 종 분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고, 멸종은 가속도 붙은 소용돌이 속에 이미 한쪽 발이 빠져있다. 멸종으로 향하는 불길한 소용돌이에.


섬 생물지리학 이론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에서 출발했지만, 그 이론은 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 때문에 조작 난 육지의 고립된 생태 현장은 또 다른 섬이다. 우리가 설정한 자연보호 구역이나 보존 지역은 육지의 섬일 뿐이다. 섬의 생태를 설명하는 섬 생물 지리학은 이제 전 지구적인 생태를 설명하는 이론이 됐다.


수십억 년 동안 계속되어 지금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든 진화의 경이를 인간 종이 끝내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절망과 좌절의 깊이는 진화의 경이로움이 끌어 올린 높이 만큼 더 깊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은 처방이 아니라 진단을 위한 책이라고 말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이런 사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질문은 간단하지만, 그 대답은 불행히도 간단하지 않다고.

저자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의 첫걸음을 제시하고 있다. ˝ 만약 여러분이 정말로 뭔가를 하고자 한다면, 건전한 첫걸음은 희생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낳고 싶은 자녀의 수, 자동차를 모는 주행거리, 전원주택을 갖고 싶은 욕구 ( 온대지역에 있는 부유한 나라에서는 소로처럼 야생 자연으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서식지 상실과 분열의 심각한 원인이 된다)는? 모두 위험에 처한 다른 종들의 개체군과 생태계의 응집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전체 상황에 절망을 느끼는 것 역시 합리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나는 절망은 무익할뿐더러, 아무리 실낱같다 하더라도 희망을 품는 편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품자는 문구가 이렇게 절망적이고 슬프게 들리는 경험은 처음이다. 특히 야생 자연으로 탈출하고 싶은 욕망 또한 멸종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나를 포함한 전원생활을 꿈꾸던 많은 사람의 뒤통수에 떨어지는 죽비다. 정신이 번쩍 든다.

과학저술가이며 작가인 데이비드 쾀멘의 재능을 맘껏 즐길 수 있고, 진화의 종말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절절히 실감할 수 있는 책이다. 1996년 푸른숲에서 2권으로 출판됐던 책을 2012년에 김영사에서 합본으로 재출간했다. 이런 책은 절판 없이 계속 출판되어야.

http://blog.naver.com/cjdtks9848/22077635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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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사전-김소연

마음에 일어나는 심상을 표현하기에 언어의 해상도는 너무 낮습니다. 복잡미묘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목침 베개만 한 사전을 다 뒤져도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죄 없는 가슴이 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표현하기에 언어의 해상도가 턱없이 낮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직유, 은유, 제유, 환유, 풍유 등의 기술을 동원해 길고 길게 설명합니다...

http://m.blog.naver.com/cjdtks9848/22078465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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