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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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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달만 더 버티면 혹독한 7년간의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마무리할 무렵, 그는 폐암 진단을 받습니다. 수련 기간 동안 어려운 신경외과 수술을 대부분 익혔고, 전국 규모의 권위 있는 상도 받아 여러 일류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은 36살의 젊은 그에게 폐암은 그동안의 모든 것과 앞으로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선고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최정상의 의사 신분에서 환자의 신분으로 바뀐 그는 절망하지만, 사려 깊게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폐암에 걸린 건 특별한 일도 아니며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배웠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가진 문학도였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사와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학문이 바로 의학이라고 판단하고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원에 진학합니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째째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학부에서 공부한 분야와 의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에서 이미 그는 인간과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소명의식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전공을 선택하는 대학원 4학년 때, 대부분의 의과대학 학생들이 근무 조건이 더 좋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라고. 그는 인간을 더 이해할 수 있고 도전적이며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소명의식에 이끌려 신경외과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명의식도 일주일에 100시간 넘게 근무하는 혹독함으로 희미해질 때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격무에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동료가 9시간 동안 수술실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환자의 암이 손 쓸 수 없는 상황까지 전이되어 수술없이 그냥 덮어 버리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본격적인 수술을 하기 전에 확인해보니 그가 기도했던 것처럼 심각한 전이가 확인되어 15분 만에 수술을 포기하는 상황이 되자 그녀는 수술실을 나와 수치심에 눈물을 흘립니다. 저자도 자신의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 하며 의사라는 고된 길은 도덕적으로 나아지기는 커녕 퇴보하는게 아닌가 반성합니다.

 

그는 의사로서의 소명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실패하면 괴로웠고, 기술적인 탁월함이 곧 도덕적 요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내 기술에 정말 많은 게 걸려 있거나, 불과 1~2밀리 차이로 비극과 성공이 갈릴 때에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가치를 조언해 주었지만, 막상 자신에게 죽음과 싸우는 상황이 찾아 왔을 때, 그도 죽음을 앞에 두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의사인 그도 자신을 치료하는 주치의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에마(주치의)의 도움이 필요했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고민하고,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습니다. 그는 다시 신경외과로 복귀를 결심합니다. 죽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외치며. 그리고는 마지막 남은 레지던트 과정을 초인적인 의지로 마무리합니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마지막은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불안과 항암 치료의 힘든 상황에서 그는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전념합니다. 책을 쓰는 이유를 친구인 루빈에게 말합니다.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라고.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고. 죽음 없는 삶은 없다고.

 

자신은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을 이야기 합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그에게 문학이란 모든 학문이 그렇듯 인간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는 일련의 도구, 즉 어휘를 만들어 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문학도가 혹독한 수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과학 분야로 옮겨갔었지만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코 앞에 실체로서 죽음을 경험하면서 다시 문학에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과학이 지니는 한계와 의학이 어찌하지 못하는 무력한 지점을 경험한 그는 문학에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죽음의 단조로운 황무지에서 방황하던 나는 수많은 과학연구들, 세포 내 분자 통로, 생존 통계의 끝없는 곡선에 아무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결국 문학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중략) 죽음에 관한 글이라면 뭐든지 읽었다. 죽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어휘를 찾고 싶었다. (중략)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이 필요했다.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한 젊은 의사가 죽어가며 쓴 글은 숙연하지만 의연함을 잃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시간과 싸우는 절박함은 독자를 안타깝게 만듭니다.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는 이 책을 마무리하는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딸 케이티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정도까지만 삶의 시간이 허락되길 희망합니다. 그 아이는 죽음을 앞두고 체외수정으로 얻은 아이였습니다. 그 딸을 향한 마지막 말로 글은 끝납니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죽음을 깊이 생각하는 이유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겠지요. "좋은 죽음"이란 결국 "좋은 삶"을 말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의미 있는 삶에 대해 끝까지 성찰하고 행동한 작가에게 경의와 존경을 바침니다. 

 

http://blog.naver.com/cjdtks9848/22089870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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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가, 뭉클 - 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의 기록
이기주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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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에서 감성이 잘 정리된 사람이란 느낌을 받는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다감하다.

그림 기법만이 아닌 그리는 사람의 일상이 글로 잘 그려진 책이다. 목차만 읽어도 그 장이 어떤 주제의 글 모음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을 배우거나 그리는 사람이면 느끼는 생각들을 색깔별로 묶었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지만 표현이 각기 다른 것은 그림이나 글쓰기나 같다. 작가는 그림만큼 글 표현도 능숙하고 글맛 또한 참 좋다. 그림보다 글이 더 좋다 말하면 실례인가? 어제저녁에 배달된 책을 아침에 일어나 후루룩 읽는다.

A5 크기의 판형 책이다. 컬러 그림을 실었지만, 종이는 컬러 그림 인쇄에 많이 사용하는 아트지가 아니다. 일반 용지에 컬러 그림을 올렸다. 광택 많은 아트지에 올린 그림과는 다른 맛이다. 그림들이 차분히 가라앉아 작가 글과 잘 어우러진다.

책에서 오래 떨어져 있던 사람이 가을에 다시 책을 손에 들고 싶을 때, 그 손에 들리면 딱 좋을 책으로 강추~~

https://m.blog.naver.com/cjdtks9848/223598315695

202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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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 숲속의 우드 와이드 웹
수잔 시마드 지음, 김다히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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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이 매끄럽지 않다. 몇번을 다시 읽어야 하는 문장이 많았다. 개정판에서는 매끄럽게 수정됐으면 좋겠다. 번역은 맘에 안들지만 책 내용이 좋아 별점은 4개로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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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 옥스퍼드대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가 바라보는 세상
데이비드 도이치 지음, 김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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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1장을 읽었다. 나의 이해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님 문장 해석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많다. 진입부가 어려운 책이다. 뒤는 어떨지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하고 번역한 책은 아닌 듯... 암튼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간다. 큰 주제는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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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하다. 예술평론가로서의 뛰어난 안목과 해석,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솜씨는 가히 일품입니다. 평론가로서 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일반대중을 상대로 자신이 느끼고 해석한 감상을 글과 말로 표현하는 재주는 최고입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그림이 그의 설명을 통하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림은 붓으로만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붓없이 그리는 그림... 손철주가 말과 글로 그리는 그림이 바로 그런 그림입니다.

이번 책은 2015년 여름 두 달 동안 재계 CEO를 상대로 강의한 내용을 묶은 것이라 합니다. 옛 그림속에 나타난 음악적 요소를 소재로, 그것에 얽힌 사연을 풀어내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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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음악은 정이 깊습니다. 음악은 '소리가 그리는 그림'이요, 그림은 '붓이 퉁기는 음악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림 속에 박자와 가락이 있고, 음악 속에 묘법과 추상이 있습니다. 게다가 둘 다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지요. 우리 옛 그림과 옛 소리는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다운 정서의 산물입니다. 서로 통해서 어울리고, 어울려서 신명을 빚어 내지요. 붓질이 끝나도 이야기와 뜻은 이어지고, 소리가 멈춰도 여운은 남습니다. 모름지기 흥이 나야 신이 나지요."

"자, 지 괴상한돌 하나 그린 그림에 여기저기 찍어놓은 도장들을 가지고 제가 지금 너무 수다스럽게 말이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작품 하나를 봐도 이렇게 포를 뜨듯이, 하나하나 찢어발기듯이 해집어봐야, 이 그림이 정말 가지고 있는 궁극적 가치와 때로는 뜻밖의 메시지를 알아먹을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는 저건 그저 괴상한 돌 하나 그려놓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모아 봐야 작은 도장 하나에서 화가의 생각을 찾아낼 수 있고, 찾아낸 그것을 같은 취향의 친구들과 함께 궁구하고, 그 순간 그 앎이 주는 충격에 모공의 털이 바짝 서는 전율을 느끼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카타르시스죠. 우리가 그런 도반들을 많이 찾아내고 서로 북돋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이 너 무나 황잡하고 모조가 득세하니까 우리는 점점 더 그렇지 않은 아취를 찾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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