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도시인들이 전원생활, 시골생활이란 단어에서 느끼는 여유, 휴식, 소박, 치유, 사색 같은 이미지를 철저하고 비정하게 부숴버립니다. 그는 환상과 낭만을 걷어내고 시골의 민낯을 보라고 말합니다. 미디어에 현혹되고, 시골 생활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에 현혹되지 말고 철저히 생활터전으로서 시골을 알아야 하며, 그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 후에 시골생활을 계획하라고 권합니다. 현실을 똑바로 보라는 직언을 너무 냉정하게 말하는 통에 정나미가 좀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지만 읽어볼 만 합니다.
그가 이렇게 냉정한 참견과 걱정을 하는 이유는 시골 생활에 대해 누구도, 어느 언론매체에서도 충분히 설명하거나 충고하지 않고 나른한 환상만 심어주어, 결국 많은 사람이 현실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시골생활을 시작하고, 자기 분석과 반성없이 시골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시골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도 시골에서 생활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시골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을 겁니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접고 인생의 2막을 시골에서 보내려는 사람에게 하는 작가의 충고를 요약하면 대강 이렇습니다.
"시골은 오히려 도시보다 더 이기적이며 개인의 자유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곳일 뿐 아니라, 도시적인 교양과 상식과 합리가 통용되지 않는 곳일 수 있다. 가면 어떻게든 되는 곳이 시골은 아니며 시골에도 당신을 지치게 하는 삶은 따라온다. 삶을 피하고자 선택한 곳이 시골이라면 당신의 판단력은 어린아이 판단보다 못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 당신이 여행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던 그 아름다운 자연도 그곳에 정주하는 순간부터는 더는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당신을 괴롭히는 존재로 변하고,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 줄 것만 같던 그곳이 때때로 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돌변하기도 한다. 여행객 입장에서 보는 풍경과 생활인 처지에서 보는 풍경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은 환경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뜻이다.
농부가 하는 일이 쉬워 보이고 낭만적으로 보이는가? 여행객에게 풍경으로 보이는 농부의 일은 도시인이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는 고단한 노동이다. 나약한 도시인이 등산꽤나 했다는 자신감으로 덤벼들 그런 성격이 아니다. 수십 년간 몸에 배었기 때문에 그들의 노동이 쉬워 보일 뿐이다. 농촌은 노년을 보내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다. 의료시설은 부족하고 외로움을 함께 나눌 친구도 없다. 고독을 이겨내지 못힌다면 고독이 당신의 노년을 잡아먹을 것이다. 우리는 도시의 삭막함과 비정함에 대비해서 시골의 따뜻함과 인간미를 말한다. 하지만 그건 위장된 모습이거나 아니면 도시 생활인의 눈에 비친 환상에 불과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오히려 시골 인심이 도시보다 더 각박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할 때 더 몰인정하고 탐욕적인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이다. 가난한 그들에게 여유와 아량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시골의 정은 옛말이다."
그는 시골 생활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갈 자신에 대해도 냉정히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강변하지만, 당신의 그 인생 마당은 자신의 의지로 다진 것이 아니라 직장이라는 배경이 만들어 줬을 뿐이고 그 조직이 마련해준 직급이니 직위이니 하는 이름에 안주한 것이 전부였다고. 그런 뜨뜻미지근한 물에 있다가 밖으로 내던져지면 금방 감기에 걸리기 쉽다. 당신은 스스로 일어서고 견디는 훈련을 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고, 나이 들어 직장에서 내쳐진 자신의 처지를 세상의 냉혹함과 도시의 비정함 탓으로 돌리며 자기변호를 꾀하다가 마침내 시골 생활이라는 충동적인 도피 행각에서 구원을 찾고자 한 것은 아니냐"고 묻습니다. 냉정한 비판입니다.
도농간의 문화 차이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소개합니다. "당신은 전 반생을 통해 프라이버시의 경계선을 함부로 넘지 않는, 억제된 교류 쪽이 인간적이라는 해답을 내렸고 그렇게 행동해 왔다. 가끔 그것이 냉정하게 느껴지더라도, 몇십 년이고 그런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은 그편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집과 다른 집을 그리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아, 상대방 사정 따위는 개의치 않고 아무 때나 찾아와서는 부르는 동시에 서슴없이 방으로 들어오는 깔끔치 못한 왕래에 피로를 느낄 것이다. 게다가 성장 과정, 직장 경력, 가족 구성, 친척 관계, 지병 유무 등을 캐물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예금 잔액이 얼마인지까지 파고드는 통에 진절머리가 난다. 결국에는 논두렁길 저 너머에서 오는 모습만 봐도 몸이 오싹해진다."
시골 사람들의 이런 행동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촌사회의 특징 때문입니다. 농사일에서 왕따는 치명적인 일이지요. 그래서 시골 생활은 도시생활과는 달리 개인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습니다. 시시콜콜 노출되지 않으면 동질감 형성에 장애가 되고 결국 그들과 단단히 연결하는 고리를 만들지 못해 왕따 되기 쉽습니다. 시골생활을 하려면 받아들여야 하는 가치와 지금까지 지켜 온 도시인으로서의 가치가 충돌합니다.
그가 충고 하고 싶은 말은 "안주의 땅, 마지막 거처, 별천지, 지상낙원 같은 이상적인 공간을 발 벗고 나서서 찾으려는 것은 수백 년 전 보물을 찾으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무릉도원 같은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토피아는 신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애틋한 동경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골생활이 나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피곤한 육체를 품어 주리란 환상은 버리라고 마루야마 겐지는 말합니다.
도시를 피해 시골로 옮겨 살고 싶게 하였던 그 모든 원인이 모습만 바꾼 채 똑같은 양과 무게로 기다리고 있는 곳이 시골입니다. 삶을 피해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겠지요. 필자는 확실한 목표의 여부가 시골생활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합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모든 걸 잊고 전념할 것이 있을 때 시골행을 하라고 권합니다. 다른 일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의 강한 목적이 없으면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결국,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굳건히 세우는가에 달려 있겠지요. 부모와 아내와 직장에 기대어 살아온 의타적인 삶에서 벗어나 제2의 인생을 살겠다는 신념과 의지가 있다면 사는 곳이 어디든 상관없겠지요. 체질과 성향에 맞지 않는다면 시골을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골과 도시라는 공간적 요소는 행복한 노후를 위한 작은 선택 옵션에 불과합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어디에 살든 삶을 진지하게 살아내는 자세, 눈빛이 살아 있는 삶, 세상의 유혹에 흔들림 없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귀농이나 귀촌에 뒤따르는 문제에 있어 우리와 일본은 똑같더군요. 그가 제기한 모든 충고와 해법은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지라 그가 지적하는 모든 사항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골로 이주한 범죄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침실을 요새화하라는 황당한 충고만 빼고 말입니다. 몇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200페이지의 얇은 책이니 시골생활을 꿈꾸는 사람이면 일독을 권합니다. 특히 도시 출신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