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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의 노래 - 사라진 새 도도가 들려주는 진화와 멸종 이야기 ㅣ 김영사 모던&클래식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신현철 해제 / 김영사 / 2012년 10월
평점 :
856쪽의 두툼한 책이다. 집중해서 읽지 못하고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읽다 보니 보름 동안 읽었다. 900쪽에 달하는 책이지만 읽는 내내 지루함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널리 알려져 조금은 진부할 수 있는 진화 이야기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멸종과 생태계 붕괴 문제를 경고하는 학구적인 진지함을 유지하면서, 독자에게 책 읽는 즐거움과 지적 희열을 동시에 안겨주는 저자의 역량에 감탄하며 읽었다.
저자는 섬 생물지리학의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가 과학자들의 치열한 탐구 과정을 하나하나 훑어 내리면서, 자연에서 읽어 낸 패턴에 대한 정교한 이론들을 소개하고 진화에 얽힌 복잡하고도 미묘한 사실들을 알기 쉽게 풀어낸다. 또한 과학자들이 모든 것을 바쳐 연구했던 그 섬과 지금도 열대의 정글에서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의 생각과 연구내용을 소개한다.
섬은 제한된 공간과 격리라는 두 가지 특성이 결합해서 진화의 패턴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진화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려주는 진화의 축소 현장이다. 진화는 탄생과 멸종의 이야기며, 그 이야기는 섬이란 제한된 공간에 압축되어 있다. 이를 연구하는 것이 섬 생물지리학이다.
섬은 종의 분화(종의 탄생)와 멸종이 동적 평형을 이루며 진화해 왔으나 이제는 멸종의 상징이 됐다. 수만 년의 시간을 두고 진행하던 탄생과 멸종의 동적 평형은 깨졌다. 도도새는 그 상징이다. 평형이 깨진 원인을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책에 상세히 소개된 그 원인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 때문이다. 인간 말이다. 그들에 의해 더 이상의 종 분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고, 멸종은 가속도 붙은 소용돌이 속에 이미 한쪽 발이 빠져있다. 멸종으로 향하는 불길한 소용돌이에.
섬 생물지리학 이론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에서 출발했지만, 그 이론은 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 때문에 조작 난 육지의 고립된 생태 현장은 또 다른 섬이다. 우리가 설정한 자연보호 구역이나 보존 지역은 육지의 섬일 뿐이다. 섬의 생태를 설명하는 섬 생물 지리학은 이제 전 지구적인 생태를 설명하는 이론이 됐다.
수십억 년 동안 계속되어 지금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든 진화의 경이를 인간 종이 끝내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절망과 좌절의 깊이는 진화의 경이로움이 끌어 올린 높이 만큼 더 깊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은 처방이 아니라 진단을 위한 책이라고 말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이런 사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질문은 간단하지만, 그 대답은 불행히도 간단하지 않다고.
저자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의 첫걸음을 제시하고 있다. ˝ 만약 여러분이 정말로 뭔가를 하고자 한다면, 건전한 첫걸음은 희생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낳고 싶은 자녀의 수, 자동차를 모는 주행거리, 전원주택을 갖고 싶은 욕구 ( 온대지역에 있는 부유한 나라에서는 소로처럼 야생 자연으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서식지 상실과 분열의 심각한 원인이 된다)는? 모두 위험에 처한 다른 종들의 개체군과 생태계의 응집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전체 상황에 절망을 느끼는 것 역시 합리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나는 절망은 무익할뿐더러, 아무리 실낱같다 하더라도 희망을 품는 편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품자는 문구가 이렇게 절망적이고 슬프게 들리는 경험은 처음이다. 특히 야생 자연으로 탈출하고 싶은 욕망 또한 멸종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나를 포함한 전원생활을 꿈꾸던 많은 사람의 뒤통수에 떨어지는 죽비다. 정신이 번쩍 든다.
과학저술가이며 작가인 데이비드 쾀멘의 재능을 맘껏 즐길 수 있고, 진화의 종말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절절히 실감할 수 있는 책이다. 1996년 푸른숲에서 2권으로 출판됐던 책을 2012년에 김영사에서 합본으로 재출간했다. 이런 책은 절판 없이 계속 출판되어야.
http://blog.naver.com/cjdtks9848/22077635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