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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평전
송우혜 지음 / 서정시학 / 2014년 5월
평점 :

1.
낮게 깔린 회색 구름 밑으로 밝아오는 푸른 새벽, 윤동주 평전을 읽습니다. 딸아이와 아내는 아직 거실에서 잠들어 있는 시간, 천둥번개 속에 무섭게 쏟아지던 비도 그친 새벽, 창문 열고 비릿 상큼한 봄비 내음을 깊게 들이 마시고 들어와 그의 마지막 시 앞에 앉았습니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쓴 마지막 2편의 시를 읽습니다.
《쉽게 씌여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차가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을 참아 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4시간 동안 계속된 독서로 눈이 침침하고 흐려집니다. 책을 놓고 눈을 감습니다. 책은 격랑의 역사 속 윤동주와 송몽규를 이야기하지만, 내 감긴 눈앞엔 찬란한 봄을 노래하고 사랑의 향기에 피가 끊어야 마땅했을 한 청춘이 어두운 남의 나라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그 아름다움을 송두리 짓밟힌 채, 차가운 감옥에서 원한에 스러지는 모습만이 어른거립니다. 너무 감상적으로 민족 시인을 대한다고 나무라지는 마시길... 청춘에서 한참 멀어진 나이에 접어든 나에게 아름다워야 할 윤동주와 송몽규의 청춘은 그렇게 아프게 다가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잠깐 그의 마음에 들어왔던 어느 처녀로 인해 그의 마지막 시《봄》에는 그나마 흐ㅡ릿한 연둣빛이 배어있습니다. 오히려 그 엷디엷은 연두가 가슴에 사무칩니다. 아~ 윤동주!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당신을, 그때 태어나지 않은 당신의 청춘을 상상합니다.
2.
일요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내려 갔습니다. 제9장과 10장은 가슴이 메이고 눈물이 흘러내려 몇 번을 쉬었다 읽고, 책 표지 사진을 쓰다듬다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감옥에 수감된 후, 한 달에 한 번씩 허락된 엽서로 주고받던 편지 속에서 동생 윤일주가 쓴 "붓 끝을 따라온 귀뚜라미 소리에도 벌써 가을을 느낍니다."라는 고향소식에 "너의 귀뚜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준다. 고마운 일이다."라고 답장하는 대목에서 평전의 필자처럼 목이 메어 읽어 내리질 못 했습니다.
평전의 저자인 '송우혜'는 말합니다. "아아! 고마운 일이라니! 읽어 내리기에 그저 목이 메인다. 그 간악한 일제 감옥의 인간 이하의 취급도 그의 관유하고 고결한 인품에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못했음을 이 구절은 통렬히 증언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고 한 그 정신은, 그가 처한 처참한 상황을 그토록 맑고 지순한 모습으로 견디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윤동주는 일제의 특고 경찰에 체포되어 19개월 2일이 지난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에 복강의 차가운 감옥에서 생체 실험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주사 받다가 절명합니다. 그의 운명을 지켜보았던 젊은 일본 간수는 "윤동주가 외마디 소리를 높게 지르며 운명했다"라는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평전의 저자는 이렇게 가슴을 칩니다. "운명의 순간 윤동주가 지른 외마디 높은 비명..., 그 소리에 담긴 것은 무엇일까! 그의 생애 전부, 그의 마음 전부, 그의 기쁨과 슬픔 전부, 그가 원한 것, 그가 괴로워한 것, 그가 사랑한 것, 그의 그리움과 애통함, 그의 모든 것, 모든 것..... 그것이 모두 하나로 합쳐져서 외마디 비명이 되어 세상을 향해 외쳐진 것이다. 그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지 않으면 운명조차 할 수 없도록 임종의 자리에 누운 그의 마음에 아프게 쌓여 있던 것!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에 소름이 돋는다. 그는 그렇게 비통하게 갔다."
고종사촌이자 영혼의 친구로 일생을 함께 한 송몽규의 죽음은 또 어떤가. 1945년 3월 7일 윤동주의 장례식이 용정에서 치러진 다음날 송몽규도 복강 형무소에서 통한에 겨워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절명합니다. 독립운동가, 민족시인, 촉망받던 문사(文士)이기 이전에 그들은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으로 키워 낸 어느 부모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주검 앞에선 부모, 특히 두 어머니의 모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비명처럼 울음이 터져 나옵니다.
3.
그의 시 <참회록>을 다시 읽습니다. 예언시처럼 아프게 읽힙니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얼골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순 깃븜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거러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욕되다니요, 참회라니요, 부끄럽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욕됨과 참회와 부끄러움은 남겨진 자들의 욕됨과 참회이고 우리의 부끄러움이어야 합니다. 민족의 혼을 살리고, 풍습을 보전하고, 언어를 지키고 삶의 터전을 지키려던 그 맑은 영혼의 청춘에게 참회라니요. 밤이면 밤마다 마음의 거울을 온몸으로 닦고 또 닦자던 그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에게 욕됨이라니요, 부끄럼이라니요.
지금까지 내가 읽은 모든 책 중에서 이 평전처럼 가슴을 메이게 한 책은 몇 안됩니다. 아니, 기억에 없습니다. 이 절절함은 오래갈 듯합니다. 이 평전의 저자 송우혜는 송몽규의 친족이라고 하니 남다른 감회를 안고 평전을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평전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가 서문에 나옵니다. 윤동주의 어릴 적 친구이자 인척이기도 문익환 목사와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그녀가 취재 차 자주 문익환 목사를 찾았는데, 문 목사는 그때마다 자신이 윤동주 시인의 평전을 직접 쓰겠다고 거듭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평전이 출판되자 곧 읽어 보고는 자신의 평전 집필 계획을 철회하셨다는군요. "윤동주 평전은 송우혜가 쓴 것으로 충분하다. 정말 잘 썼다. 나는 안 쓰겠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만큼 철저한 고증과 균형감을 가진 평전이기에 문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이 책 두 권을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문 목사가 처음 북한 땅에 발을 딛고 한 일은 윤동주의 '서시'를 낭독하는 것이었는데, 이 낭송을 들은 북한 주민들이 윤동주 시인을 궁금해할 때 그를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가져가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이 평전은 탁월합니다. 저에게도 최고 평전이 됐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오늘이 용정에서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이 있던 71년 전 그날입니다. 내일은 송몽규 문사의 기일이고요.
http://blog.naver.com/cjdtks9848/220647253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