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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크릭 - 유전 부호의 발견자
매트 리들리 지음, 김명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어른이 되었을 때 세상의 모든 비밀이 모두 밝혀져 자신이 해결할 문제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떻하나 걱정했다는 아이, 수학적 구조를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 물리학을 전공했고 2차 대전 중에는 어뢰를 연구하여 이름을 날린 사람, 전쟁 후 30 세가 넘어 물리학의 따분한 실험에 싫증을 느껴 생물학으로 전향한 사람, 그리고 7년 후에 박사 학위도 없이 거의 독학으로 DNA의 구조를 밝혀내 노벨상을 받은 사람, 노벨상을 학문의 완성으로 보지 않고 시작으로 삼았던 과학자, 생명과학 책의 7개 단원 중에서 두 단원의 내용을 완전하게 알아내는 데 중심에 있었던 사람, 생명의 시작(DNA 암호와 유전 부호)을 밝혀 냈고 생명의 끝(의식의 구조)을 연구한 사람, 동료 학자들과 대화를 통해 자신을 자극하고 학문을 탐구한 소크라테스와 같은 유형의 과학자, 학문적 명성보다는 철저한 과학자의 길을 고집한 실무형 과학자, 죽기 전날까지 메모하고 논문을 수정한 성실한 사람, 다윈 이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 놓은 사람.

그가 바로 프랜시스 크릭이다. 많은 사람들은 DNA의 구조를 밝혀낸 과학자를 이야기하면 우선 제임스 왓슨을 떠올린다. 프랜시스 크릭은 제임스 왓슨이라는 이름에 살짝 가려져 있다. 약 900 단어로 이루어진 두 쪽 짜리의 그 유명한 논문에 누구 이름을 먼저 쓸 건지 동전 던지기로 결정한 영향 때문이다. 그리고 왓슨이 쓴 '이중나선'이라는 대중과학서도 왓슨의 명성이 크릭 보다 널리 알려지는 데 한 몫을 했다. DNA구조를 밝히는 과정을 다룬 '이중나선'은 일반인들에게 DNA하면 왓슨이라는 이름이 기억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과학자로서는 왓슨보다 크릭이 훨씬 더 흥미로운 인물이다.
과학적인 재능을 측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복잡한 사실들에서 일정한 패턴을 인식하고 구조화 시키는 능력과 핵심 문제에 대해 통찰력 있는 해석의 틀을 구축하는 능력에 있다. 수학적인 관찰의 자료를 읽고 그것을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능력, 수 많은 논문을 읽고 그 논문들에서 새로운 이론적 틀을 만들어내는 통합 능력, 대화를 통해 생물학자들을 자극하고 그들의 연구를 조율하며 소통 시키는 통섭 능력, 현상에 대한 해석의 틀을 마련하는 상상력과 직관력, 프랜시스 크릭은 이 부분에서 탁월했다.
자신들의 위대한 발견이 행운과 우연만 있으면 누구나 이룰 수 있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 때문에 크릭은 왓슨이 쓴 '이중나선'의 출판을 반대했다. 크릭은 DNA 구조 발견이 우연과 행운의 결과가 아니라 엄격한 과학적 탐구 과정을 통해 이룬 성과임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왓슨은 과학자도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왓슨의 의도는 과학이 과학자들만의 리그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크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책을 출판했다. '이중나선'은 왓슨이 의도했던 목적을 충분히 성취해 냈다. 그 책은 과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이끌어 냈으며 과학 탐구에 필요한 돈을 주머니에서 끌어 냈다. 하지만 크릭은 철저한 과학자의 입장에 있었다. 노벨상 수상 이후 두 사람의 행보는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의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왓슨은 과학 행정가로 진출했고 크릭은 영원한 실무 과학자로 남았다.
이 책은 영원한 현역이었던 크릭의 탐구 정신에 초점을 맞춘다. 크릭은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DNA의 암호가 해독 되어 단백질 합성으로 이어지는지 전과정을 완전하게 밝혀냈다. 유전부호의 해독은 DNA 이중나선의 발견과 비견되는 중대한 발견이다. 크릭은 실험 과학자들을 자극하고 독려하며 이 위대한 일을 중심에서 이끌고 나갔다. 실험에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직관력과 연구방향의 설정은 크릭의 몫이었다. 그는 엄청난 양의 논문을 경이적인 능력으로 소화해 냈고, 그것으로부터 위대한 원리를 걸러냈다. 메트 리들리는 그가 어떻게 그 일을 해냈는지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에서 분자생물학의 완전한 정의와 원리를 끌어냈다고 말한다. 이 원리의 선언은 모두 옳고 완전한 추측이었다. 이러한 통찰은 그의 직관 능력에서 나왔지만 이 직관의 실체는 설명하기 어렵다. 자크 모노의 말처럼 크릭은 분자생물학 전 분야를 장악한 사람이고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많이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DNA의 위대한 단순성을 직감으로 이해한 첫 번째 사람이고 그것을 눈에 보이는 영상으로 만들어 우리 앞에 보여준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암호가 해독되는 전 과정을 밝혀 낸 사람이다. 그는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을 바꿔 놓았다. 다윈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을 주었고 크릭은 정밀하게 볼 수 있는 현미경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굉장히 사교적이고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과학자로서는 독특한 캐릭터였던 모양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통의 과학자 이미지는 자기 세계에 들어 앉아 있는 과묵함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상대가 견디기 어려워 할 만큼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많은 수다를 견뎌낸 사람은 몇 명밖에 없다. 크릭의 대화 상대는 모두 훌륭한 업적을 이룬 과학자가 되었다. 그 첫 번째 파트너는 왓슨이었다. 아마도 그는 토론을 통해 자신의 논리가 정리되는 사람이었고, 말을 하는 과정에서 위대한 영감을 얻었던 사람인 것 같다. 우리들도 말을 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혼란스럽던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크릭은 아마도 이런 능력을 충분히 이용한 과학자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수다스러움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특히 남자들의 수다스러움은 치명적인 약점으로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수다는 관계 지향적인 행위로 치환 될 수 있다. 과학자의 수다는 끝없이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무형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낸다. 이 공간에는 말의 공허한 파동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공간 안에서는 무수한 말들이 서로 부딪쳐 영감이라는 빛이 만들어지고, 그 빛으로 통찰과 직관이 싹을 틔운다. 우리가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원인 중에 하나에는 수다스러움을 경멸하는 문화적 특성도 한 몫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의 과학자들이여, 우리의 과학 발전을 위해 조금 더 수다스러워지길!! 우리는 당신들의 요란한 수다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