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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단편선 ㅣ 소담 클래식 6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9월
평점 :
"인간의 광기와 죽음의 그림자"
애드거 앨런 포의<포 단편선> 을 읽고

"인간의 내면은 왜 이렇게나 기괴한가"
-호러와 미스터리의 대가
불운의 천재 애드거 앨런 포의 음산하고 기괴한 단편 7선-
"공포가 당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공포에 다가서고 있다"
무척 눈을 뜨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눈을 뜨면 주위가 어떤 모습일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무엇인가 끔찍한 게 보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보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더욱 무서울 것 같았다. 마침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눈을 번쩍 떠 보았다. 정말 두려워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만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았다. 짙은 어둠이 무겁게 내리누르며 숨통을 죄는 듯했다. 들이쉬는 공기마저도 숨을 턱턱 막았다.
-<함정과 시계추> 중에서-
눈을 감으면 무엇이 보이는가? 오히려 눈을 뜬 것보다 눈을 감았을 때 더 무섭다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눈을 떠서 보이는 공포보다 눈을 감고 보이지 않을 때, 상상 속의 공포가 더 무섭다는 것을...
끝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음산하게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비명 소리!
보이지 않는 상상 속의 공포, 인간의 내면의 기괴한 심리, 인간의 미친 듯한 광기 이 모든 것이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속에는 모두 담겨 있다. 공포 소설, 추리 소설의 대가 답게 기괴하고 음산한 7편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럽고 무서운 존재가 인간이라는 말처럼, 인간의 내면은 얼마나 기괴한지, 인간의 광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인간이 광기에 미치면 얼마나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괴물 같은 존재가 되는지 등 인간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파헤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함과 악함과 같은 인간의 양면성,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폭력성, 인간의 시기와 질투 등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탐구하고 있다.
에드거 알렌 포의 공포는 숨겨져 있지 않다. 그의 작품 속 공포는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공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포 속으로 다가가고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일곱 편의 단편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어둠, 죽음 그리고 음산함이다. 이 세가지 요소가 잘 결합하여 기괴하고 음산한 공포 소설로 탄생하는 것이다.
<검은 고양이>의 결말 부분에 보여주는 심하게 부패하고 핏덩이가 말라붙은 시체와 시체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시뻘건 입을 크게 벌린 채 이글 이글 타오르는 듯한 한쪽 눈을 크게 뜨고 끔찍한 모습의 검은 고양이의 모습은 정말 긴장되어 가는 불안감과 공포감에 최고를 찍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고양이를 자신의 광기에 미쳐 고양이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내까지 끔찍하게 살해하고 벽 속에 넣어 시멘트로 발라버린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면의 기괴한 심리와 인간의 악한 본성 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어셔가의 몰락>에서 작가는 사랑과 죽음을 다룬 기괴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침울한 분위기의 어셔가 저택과 어셔가를 중심으로 해서 벌어지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몰락해가는 한 집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하는 여동생을 생매장한 것 또한 인간의 광기에 의한 것일까? 왜 이렇게나 인간의 내면은 기괴한 것일까? 이성으로서는 설명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본능과 무의식, 그것 자체가 바로 공포이자 두려움이 아닐까? 작가는 인간이 광기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음산하고 기괴한 배경 속에서 제시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수많은 파도가 부딪치며 외쳐 대는 고함 같은 것이 길게 들려오더니만, 발 아래의 깊고 어둠침침한 늪지가 어셔가의 무너져 내리는 파편들을 음흉한 모습으로 소리 없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p. 65, <어셔가의 몰락>
<적사병의 가면>에서는 적사병이라는 무시무시하고 치명적인 역병이 오랫동안 나라를 휩쓸고 사람들을 시뻘건 공포의 피로 물들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사람들을 공포와 죽음으로 몰아가는 존재처럼 적사병을 의인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온몸에 갑작스러운 고통이 덮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입과 코 등 온몸의 구멍으로 피를 펑펑 쏟다가 결국엔 숨이 끊어지는 모습의 병의 발작과 진행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하다.
다만 죽음과 같은 암흑과 시체 썪는 냄새와 적사병만이 연회장을 가득 채운 채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있었다.
-p. 79
<모르그가의 살인>과 <도둑맞은 편지>는 마치 셜록 홈즈의 단편들과 같이 느껴질만큼 추리와 미스터리적 요소가 가득하다. 셜록 홈즈의 원형이자 안락의자 탐정의 효시인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하는데 마치 과거의 셜록 홈즈를 보는 것 같다. 나의 독서의 시작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냉철한 판단력과 날카로운 관찰력을 보여주며 미스터리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셜록 홈즈의 탐정 소설로부터였다. 그런데 오귀스트 뒤팽이 셜록 홈즈의 원형이라니,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들이 마치 셜록 홈즈 탐정 소설들을 읽는 것처럼 친숙하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파리의 몰락한 귀족인 뒤팽이 뛰어난 지성으로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살인 사건들을 해결하고 숨겨진 범인의 트릭을 밝혀내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스릴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함정과 시계추>에서 작가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점점 아래로 다가오는 섬뜩한 시계추의 흔들림을 통해 느끼게 한다. 한 번씩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려오는 시계추의 공포, 그것보다 더 두렵고 섬뜩하고 피말리게 하는 공포가 어디 있을까?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통 머릿 속에서 펼쳐지는 불안하고 두려운 상상과 생각들이 더 큰 공포로 만들고 있다. 죽음 자체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더 큰 공포와 불안이 있음을 보여준다.
점점 아래로 다가오는 섬뜩한 시계추의 흔들림을 세어 보던, 그 죽음보다도 길고 긴 공포의 시간을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한 번씩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 수 없는 정도로 아주 조금씩, 시계추는 나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함정과 시계추」 중에서
빛나는 재능으로 불멸의 족적을 남겼으나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을 산 에드가 앨런 포 작가!
비록 그의 인생은 불행했으나, 그가 작품 속에서 그린 인간의 광기의 그림자 속에 담긴 희망의 빛은 오랜 시간을 건너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소담 출판사의 소담 클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난 포 단편선 덕분에 짜릿하고 스릴 만점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