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존 프럼 지음 / 래빗홀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 상상력이 만든  미래사회의 모습"



존 프럼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 돌리면>를 읽고 




"우주 너머의 상상력의 세계인존 프럼 테마파크가 펼쳐진다."





-한국과학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문윤성SF문학상 가작 수상작 수록
-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되고 있고 실제로  챗GPT, 가상현실(VR), 메타버스 등의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있다. 또한 작가들도 SF 상상력을 발휘하여 앞으로 다가올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 중에서 존 프럼 작가가 그리는 미래 사회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에 수록된 7편의 이야기들 속에서 우작가는 인간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복제인간을 다루면서 인간의 자아를 어디까지 한정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서 영생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 우주는 결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가 등 쉽게 답하기는 힘들지만, 우리로 하여금 철학적 사유를 하게 하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하고 있다. 



 

[노아의 어머니들]



아프간 사태로 인해 아프간 어머니들로부터 미군에게 건너진 아기인 노아가 성인이 된 후,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그 과정 속에서 아프간이 처한 비극과 모성애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두 어머니인 하디아, 아렐라가 노아의 얼굴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어땠을까. 만약 노아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어머니들의 기분을 어땠을까. 진짜 노아의 어머니는 누구일까. 하디아일까. 아렐라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면서 정말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다. 



"결과절망할 지 모르지만, 잃어버린 자식을 애도할 권리를 앗아가지 말라" 라는 아델라의 말을 통해 죽은 사람을 충분히 애도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함을 알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인 <노아의 어머니들>은 다른 단편들과 달리 SF적인 요소가 보이지 않아서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좋았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성경 속 솔로몬의 재판이 생각이 났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모성애와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를 말하고 싶었을까.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지고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았다.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표제작이기도 한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모두가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최첨단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오로지 죽음을 위해 도망가는 복제인간의 이야기이다. 미래 세계 속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 인간은 권태롭고 나태한 삶을 살게 된다. 이런 권태, 나태로 점철된 삶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영생을 포기하고 '게토'로 망명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삶의 희로애락, 노동의 보람, 죽음에 대한 경험하게 된다.



원본과 똑같은 의식과 신체를 가진 복제인간은 원본과 함께 존재할 수 없어서 죽음을 향한 소멸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 또한 소멸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어쩌면 실험용 쥐에 불과하지만 엄연히 의식과 신체를 지닌 복제인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또한 우리는 존엄성과 인권을 가진 존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가 진짜 인간이고 누가 복제인간인지 혼동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에게 영생이란 무엇이며, 나는 과연 영생을 원하는가에 대해 질문해보았다.



나의 대답은 "No"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시간의 유한성이 있기에 우리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만약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우리도 이야기 속 사람들처럼 권태롭고 나태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똑같은 의식과 신체를 가진 복제인간이지만, 엄연히 진짜 인간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고 인간이 가진 존엄성과 고유성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통해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만 권태로운 현실 속 삶과 고통스럽지만 보람있는 가상현실 속 삶 속에서 사는 것 중 어느 삶이 더 나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너무 부유하고 풍요로운 권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다소 고통스럽고 사는 게 힘들지만, 사는 보람이 있는 가상 현실 속 삶을 동경하여 영구 로그인하여 가상 현실 속 삶을 선택하게 된다. 만약 반대로 현실 속 삶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고 가상현실 속 삶은 너무 풍요롭고 살기 좋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가상현실을 선택할까. 그 게임속 가상세계가 좋아서 영구 로그인을 하게 될까. 



물론 현실의 삶이 힘들땐 나는 지금까지 살아보지 않은 삶들이 펼쳐지고 다양한 삶을 경험해볼 수 있는 가상현실을 꿈꾸곤 한다. 현실 속 삶과는 다른 나만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어쩌면 가짜의 삶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 세계 속 삶이 잔짜 나의 삶이다. 나의 선택과 자유의지에 의해 내가 만들어서 쌓아올린 나의 삶인 것이다. 비록 힘들긴 하더라도 그런 나의 진짜의 삶이 더 좋다.




영생의 요람에서는 유한한 삶에 속박된 게토를 꿈꾸지만, 정작 게토에 내던져지면 영생을 갈구하게 되는 역설. 인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는 역설의 굴레 안에서 끝없이 맴도는 저주에 걸린 존재인지도 모른다.  



-p. 130,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중에서




[회귀]



만약 우리의 우주와 동일한 역사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소우주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앞으로 우리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를 소우주 밖의 관찰자가 미래를 관측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우주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면 어떨까.




미래를 알면서도 똑같은 선택을 한 주인공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주는 결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결과인 것인가.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결정론적 입장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목표도 세울 필요도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선택과 자유의지에 상관없이 어차피 우리의 운명과 미래는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나의 삶이 그러하듯이, 앞으로 나의 미래 또한 나의 자유의지와 선택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이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지금의 모습이듯이 말이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했듯 자유의지란, 사실은 환상에 불과할까. 물리적 인과의 연쇄 작용은 자유의지가 끼어들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걸까. 설령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이 끔찍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정말로 자유로운 것일까.



(…) 어쩌면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자유의지라는 것은 인간이 짊어지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은 아닐까.



p. 207, 「회귀」 중에서




[나의 디지털 호스피스]



디지털 세계로 이주한 인류의 기이한 죽음을 통해 나의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죽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내가 원하는 영면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육체적인 종의 끝을 맞이한 정신을 디지털화해서 연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에 대한 집착일까. 종의 보존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읽어보았다. 



특히 인간의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사유와 함께 어떤 죽음이 과연 나을 것인가. 육체는 죽었지만 정신은 디지털화해서 영생하는 삶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정말 과학기술이 더욱더 발전하면 우리의 죽음조차도 디지털화해서 시나리오를 선택해서 죽을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이제는 죽음조차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레이첼은 나의 진짜 인생이 시나리오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주었다. 시나리오 속에서 나는 숱한 명곡을 히트시킨 거물이었지만, 현실의 나는 〈뷰티풀 어스〉 단 한 곡만을 성공시킨 ‘원 히트 원더’였다. 그녀가 몇몇 기사를 인용하며 들려준 나의 일대기는 형편없는 실패로 점철되어 있었다.

-「나의 디지털 호스피스」중에서


 

[신의 소스코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위에 더 높은 상위 차원이 존재할 수 있을까. 가장 상위 차원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할까. <신의 소스코드>애서 세계가 상위 차원이 만든 시뮬레이션이고 그 시뮬레아션은 디지털화된 '신의 소스코드'를 사용하여 프로그래밍화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주인공 안나는 프로그래머이며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활용한 게임을 개발해서 백만장자가 된다. 그런데 안나는 연인 쥬시를 찾아서 상위 차원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과연 안나는 연인 쥬시를 만날 수 있을까. 안나의 연인 '쥬시'는 어떤 존재일까. 



 

정말 세계가 상위 차원이 만든 시뮬레이션이고 상위 차원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면 나는 상위 차원으로 이동할 것인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누군가 프로그래밍한대로 살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우리는 지금과 변함없이 살 수 있을까. 



<신의 소스코드>를 통해 우리는 상위 차원, 시뮬레이션, 프로그래밍, 결정론적 관점 등곽 같은 용어를 중심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콧수염 배관공을 위한 찬가]



우리는 얼마나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는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나르의 이야기를 통해 실패의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우리에게도 슈퍼 마리오 게임과 같은 '실패해도 안전한 공간'을 통같은 '실패해도 괜찮다'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 있는가. 



과연 나는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는 편인가. 나르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나에게는 그런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공간은 책인 것 같다. 책을 통해 '나만 실패하는 것이 아니고, 실패해도 괜찮다' 라고 생각하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덧니가 난 걸어 다니는 버섯과 부딪혀 죽고, 거북이 등껍질에 맞아 죽고, 파이프에서 미끄러져 구멍에 빠져 죽고, 시간제한에 걸려 죽었어. 실패하고 또 실패했지.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다음에 조금만 더 잘하면 된다고, 아니 다음에 더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고 꾸준히 도전하다 보면 어느새 다 잘 풀릴 거라고 말씀해주셨어.”



-「콧수염 배관공을 위한 찬가」중에서




이 책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을 읽으며 인간의 본질, 죽음의 문제, 인간의 자유의지 등 미래사회 도래와 함께 발생하게 될 철학적인 문제들에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양자역학, 원자와 우주,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 곰둥이 외계인의 정신문명까지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전문용어가 나와서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충분히 앞으로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흥미로웠다. 또한 인간에 대한 철학적 문제까지 함께 다루어주어서 깊이는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