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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토피아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
조영주 지음 / 요다 / 2023년 12월
평점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
조영주의 <크로노토피아> 를 읽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1222/pimg_7526911564127354.jpg)
"소원은 본래 세계로 돌아가 엄마, 아빠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제 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우수상 등을 수상한 조영주의 장편소설-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로 여행하면 어떨까? 당신이 만약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가장 과거를 바꾸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
항상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흥미로운 소재였다. 예지자가 되어 미래에서 과거 시간으로 돌아가 과거의 사건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치 신이 된 듯한 착각에도 빠지게 한다.
과거는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과거의 비극을 막아도 일어나야 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는 것일까?
이 책 『크로노토피아』 속 주인공 아홉살 소원이 또한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붕괴를 막고 엄마, 아빠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소원이 살고 있는 지금 현재에서는 앞으로 다가오는 아파트 붕괴로 인한 비극으로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가 아파트 붕괴를 막으면 다가올 미래에서는 행복하게 가족들과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과연 소원이의 꿈은 이루어질까?
이 책에서 소원이가 과거로 돌아가는 수단은 타임머신같은 시간 여행 기계가 아닌 아파트 엘리베이터이다. '이세계로 가는 법' 괴담처럼 섬뜩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이세계가 저승의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아파트 주민들의 과거였다.
이세계로 가는 법
1.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탄다.
2. 4층-2층-6층-2층-10층 순서대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사이 아무도 타면 안 된다.
3. 5층으로 간다. 젊은 여성이 엘리베이터에 탄다. 1층을 누른다. 어떤 대화도 하면 안 된다.
4. 엘리베이터는 1층으로 가지 않고 10층으로 올라간다. (젊은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 9층을 지나면 거의 성공한 것이다.
5. 이세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 p.10
보통 이 방법이 성공하기는 힘든데 소원은 다행히 성공하게 된다. 각각의 문을 통해 다른 삶, 인생을 살게 된 소원, 그 세계에는 엄마가 소원이를 학대하지도 폭행하지도 않는다.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소원이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되기도 하고,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 이세계의 삶이 거짓이라고 할지라도 소원은 계속 머무르고 싶을만큼 너무 행복하다.
하지만, 2023년 7월 17일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지진으로 인한 아파트가 붕괴되어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게 되는 그 날이 말이다. 매번 소원은 아파트 붕괴를 막기 위해, 과거를 바꾸고자 노력을 한다. 건축학과 교수가 되기도 하고, 돈을 많이 벌어 아파트를 다 사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여러가지 방법들을 사용해서 수십번의 다른 인생들을 살면서 아파트 붕괴를 막기도 하지만 여전히 소원은 자신의 본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무한루프처럼 거듭되는 삶,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삶, 수십 번의 다른 인생을 살아도 소원은 돌아가지 못하고 이세계에 머물러있다. 어떻게하면 소원이는 본래 자신이 있던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소원은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저 산다는 말이 왜 이렇게 충격적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소원은 임례와 '그저 산다'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나누고 싶어졌다.
-p. 248
'그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작품 속 표현처럼 '대충대충 적당히 적당히'라는 말의 의미에 공감하게 된다. 삶이란 것은 결국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구원의 메시지를 소원의 무한히 반복되는 삶을 통해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은 못 하겠어요. 이 소설에서 저는 주인공이 결국 본래 세계로 돌아간다고 적었으니까요. 이게 올바른 결론이라고 느껴서 적었는데, 사실 제가 원한 건 이게 아니니까요. 제가 알고 싶은 건 그 모든 일의 끝에 왜 이 다른 세계로 오게 되었는가니까요.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어요. 저는 제가 왜 이런 일을 겪었는지, 이 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알아내고 말 거예요.”
- p.290
또한 소원의 삶을 통해 우리는 '시뮬레이션 우주론'에 대해 생각헤보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사실은 거대한 시뮬레이션이라는 가설을 통해 어쩌면 소원이가 다양한 삶을 살았던 것조차 시뮬레이션된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의 제목인 '크로토피아' 의 의미와도 관련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책의 맨 앞 페이지에 이 용어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한다.
크로노토피아
시간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용도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같은 공간이지만 낮에는 교실로, 밤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크로노토피아'를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 여행 속에 시뮬레이션 우주론의 심오한 사상까지 결합해서 다소 그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엘리베이터를 통한 이세계로의 여행과 시뮬레이션화된 삶과 인생 속에서 인간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파트 붕괴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며 읽었는데, 그 속에 이렇게 심오한 인생의 진리를 숨겨놓았다니,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그 덕분에 인상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1222/pimg_752691156412735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