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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ㅣ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평점 :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상괴담 "
정보라의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를 읽고
“욕망과 공포의 심연을 마주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보라월드의 서막”
-2023 전미도서상 최종후보 한국 최초 선정-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은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와 같은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심을 보이며 우리를 환상 괴담으로 초대해온 정보라 작가는 이 책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산 자와 죽음 자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그동안 작가는 전작인 『아무도 모를 것이다』를 통해 환상과 현실, 신화와 역사를 뒤섞인 기묘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이 책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호러와 판타지, 비현실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10개의 정보라 작가의 환상 괴담은 우리에게 공포를 주어 소름끼치게도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회한에 안타까움을 느끼게도 한다. 보통 귀신이나 유령이라고 하면 공포를 주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죽은 자인 그들의 존재는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표제작인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차로 치고도 도망쳐버리면서 최소한의 양심과 인륜을 버리는 사람들, 머리가 잘려서 허공 속을 떠도는 사람, 인간의 탐욕을 깨닫게 하는 죽은 자들의 대화 등을 통해 우리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마치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하듯이, 죄를 지은 산 자들은 죽은 자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심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죄를 지은 사람들은 평화와 안식도 없고 죽음조차 그들의 편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또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 이렇게 오래 죽은 채로 지냈지만 나도 그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알도록 허용된 일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아는 것은, 죽음은 우리와 오래 함께하며 오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오래 곁을 지켜준다는 사실뿐이다.
-p. 31, <죽은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던 <감염>을 통해 폭력의 본질과 전염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폭력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는 폭력에 물들고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지를 화자인 나와 기이한 부탁을 하는 남자와의 이야기를 통해 잘 보여준다. 인간의 본질 속에 잠재된 폭력성과 영향력을 깨닫게 된다.
마치 세균에 감염되듯이, 우리 또한 아무 이유없이 폭력에 감염되어 모르는 사이에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폭력이란 이상한 것이다. 처음에는 망설이면서 마지못해 툭툭 건드리는 정도에서 시작했지만, 주먹을 한 번 뻗을 때마다 그 강도는 점점 세졌다. 처음에는 몸통, 중에서도 맞아서 크게 다치지 않을 법한 부위를 생각해서 골라가며 때렸다. 그러나 몇 번 그렇게 때리다가 주먹이 두 번째로 명치를 가격하고, 남자가 다시 몸을 반으로 꺾었을 때 미처 손을 조절하지 못해 주먹이 뺨에 가서 맞고, 당황하는 나에게 남자가 ‘얼굴 때리셔도 됩니다’라고 속삭인 시점에서 이미 나는 통제력을 잃었던 것 같다. (중략)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아무리 부탁받았다고는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나는 왜 이 지경으로 때렸는가.
-p. 63, <감염>중에서
사이비 종교에 빠진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 손에 자란 화자와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인 <내일의 어스름>도 흥미로웠다. 어린 나이에도 전혀 병치레 없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는 정상적인 아이같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아이의 몸에 신이나 미지의 존재가 깃든 것 같다. 화자인 나를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고 아이에게 깃든 어스름의 순간을 막아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 죽은 자에 의해 지배받게 되는아이와 화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들의 운명과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푸스름한 어스름이 드리운 방 안에서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 앉아 나는 누구인지 모를 존재를 향해, 어딘지 모를 우주를 향해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다....그저 바라는 것 외에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스스로 도는 한 내일도 모레도 찾아올 어스름의 순간을 막아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진정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p. 244, <내일의 어스름>중에서
이 밖에도 죽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사흘>, 타의에 의해 행동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여 결국 행복했던 가정의 불화의 싸움의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오게 되는 이야기인 <죽은 팔> 또한 흥미로웠다.
또한 이승과 저승이 전화를 통해 연결되어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전화통화를 하는 이야기인 <전화>도 상당히 인상깊었다.
이처럼 이 작품들 속에서는 산 자뿐만 아니라 죽은 자가 등장하고 그들에 의해 운명이나 결말이 달라지기도 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처벌하고 응징하기도 한다. 또한 죽은 자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욕망과 회한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어지고 죽음 이후에도 산 자의 세상과 죽은 자의 세상이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계야말로 정보라 작가만이 선사할 수 있는 '보라월드' 일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10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환상적이고 기묘한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소 오싹하고 소름끼칠 수도 있지만 흥미롭고 기이한 체험이 될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